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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올해의 CEO] 홀로 남은 벤처 1세대의 부활

[2005 올해의 CEO] 홀로 남은 벤처 1세대의 부활

한때 디지털위성방송수신기(셋톱박스)로 고성장을 구가했던 휴맥스는 3년 전부터 이익이 계속 줄어들며 “한계에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변대규 사장은 셋톱박스의 다음 단계인 디지털TV로 새 수익원을 만들어내며 전성시대가 아직 진행 중임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경인방송 인수전 참가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수년간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휴맥스는 올해 다시 부활을 노래한다. 벤처 1세대의 대명사로 꼽히며 늘 주목받았던 휴맥스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 휴맥스는 적잖은 내홍을 겪었다. 휴맥스는 2001년을 정점으로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매출은 해마다 늘었지만 이익 규모는 급격히 줄었다. 지난 2001년 880억원에 달했던 휴맥스의 이익규모는 2003년 375억원으로 곤두박질치더니 지난해에는 123억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신규사업으로 진출한 디지털TV사업이 호조를 보이고, 기존 캐시카우였던 셋톱박스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해낸 덕분이다. 휴맥스는 1989년 노래방용 영상가요반주기를 만드는 업체로 출발했다.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출발을 20여 년 만에 매출 1조원을 꿈꾸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은 바로 변대규(46) 사장이다. 변 사장은 “내년에는 반드시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매출 1조원은 세계적으로 어떤 회사와도 경쟁할 수 있는 기본 단위”라고 믿고 있다. 변 사장은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연간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는 중견 벤처기업이 10개 이상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1조 벤처기업론’이다. 수출로 버티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 내수시장은 이미 대기업의 독과점 시장이고, 새로 등장할 기업은 수출기업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중후장대형 기업은 더 이상 창업이 어렵다고 보면 ‘경박단소(輕薄單少)형’에서 새로운 기업이 나와야 한다”며 “고유 기술과 브랜드를 가진 기업과 경쟁력 있는 부품·소재기업 가운데 매출 1조원 기업이 5년 동안 10개 이상 나와야 우리 경제의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휴맥스는 코어로직·NHN·엠텍비젼 등과 함께 ‘1조원 도전 클럽’에 가입했다. 변 사장은 1조원 클럽 가입을 위해서는 벤처기업도 세계적으로 차별화된 제품 개발과 자체 브랜드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휴맥스의 기술력은 정평이 나 있다. 휴맥스는 본사 자체가 거대한 연구소다. 본사는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생산은 철저하게 아웃소싱한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지상 8층짜리 ‘휴맥스 벤처타워’에는 회사 간판 대신 ‘휴맥스 부설연구소’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300여 명 가운데 60%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변 사장은 다른 벤처 1세대들이 줄줄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벤처 리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외활동에 치중했던 다른 벤처인들과는 달리 한눈을 팔지 않은 덕분이다. 그가 기업활동 외에 다른 곳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잘나가는’ 벤처라도 세계 시장에 나가면 무명의 중소기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변 사장은 지난 97년 유럽에 처음으로 수출한 위성방송 수신기에서 결함이 발견돼 수출 물량의 절반이 반품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때 변 사장은 ‘변대규’의 유명세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그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버리고 휴맥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앞세웠다. 안팎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미래가 걸린 일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변 사장은 평소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대기업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기업성장 모델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대기업에 가까운 규모로 커지고 나니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들이 눈에 보였다. “지난 연말쯤이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를 둘러보다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낡은 조직이 돼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게 말로만 듣던 기업의 관료화구나’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벤처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위기의식은 줄어들고, 비효율은 커지고 있었죠.” 그는 새해가 되자마자 회사 내에 혁신팀이라는 새 조직을 만들었다. 중복 연구를 줄이고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 적게 일하고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혁신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변화 대상인 조직문화 자체가 무형(無形)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해 단위부터 달라진 휴맥스의 실적에서는 변 사장이 원했던 혁신의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3분기까지 휴맥스는 3,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던 2003년의 1년 매출액인 3,6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오그라들기만 하던 이익규모도 올해는 상승세가 완연하다. 3분기까지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07억원과 230억원. 영업이익은 지난 한 해 이익규모의 3배, 순이익은 2배에 이른다. 변 사장의 다음 전략은 방송사업 진출이다. 그는 최근 지상파 방송사업자인 경인방송 인수전 참가를 선언했다. 주변에서는 이번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방송사업 경험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변 사장은 여전히 “하나만 아는 소리”라고 답한다. “국내 업체 가운데 전 세계 방송사들을 상대로 거래를 하며 지상파·케이블·위성 등 다양한 환경을 경험해본 회사는 휴맥스밖에 없는 걸로 압니다. 휴맥스는 이 경험을 방송서비스에도 자연스럽게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방송 사업이 지금까지 휴맥스가 해왔던 비즈니스와 무관한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또 점점 다양해지는 방송 콘텐츠를 소화하기 위해서도 휴맥스처럼 단말기를 다루는 업체가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방송환경이 디지털화되면서 콘텐츠와 단말기의 연관성이 더욱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강화된 콘텐츠를 담아내려면 강력해진 단말기가 필요하다는 거죠. 이런 시너지는 한쪽 경험만 갖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경인방송 인수에 성공한다면 휴맥스는 시청자가 TV를 보는 전 과정에 관여하는 업체가 된다. 휴맥스가 만든 TV를 켜고, 휴맥스의 셋톱박스를 작동시킨 다음, 휴맥스가 제공하는 방송을 보는 식이다. 변 사장은 우연처럼 보이는 이 과정들을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그려두고 있었다. 그는 셋톱박스가 정점에 올랐을 때 디지털TV를 구상했고, 이미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지분도 인수해뒀다. 계획대로 경인방송 인수에도 성공한다면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임직원들도 알고 싶다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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