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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잣대로 보자Ⅰ- 회사법 개정안 논란] 기업 지배구조는 정답이 없다

[시장경제 잣대로 보자Ⅰ- 회사법 개정안 논란] 기업 지배구조는 정답이 없다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 이사회제도는 계속 유지하되, 미국식 집행임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회사법 개정안이 최근 확정됐다. 법무부는 당초 이사회제도를 없애고, 집행임원제도를 전격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경제계의 반대에 부닥쳐 논란을 겪어왔다. 회사법이란 회사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을 말한다. 즉 모든 회사에 관한 공통된 규율이다. 최근 확정된 집행임원제도는 경영·재무·기술 등 분야별 집행임원이 권한을 갖고 책임을 지는 제도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표이사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일본도 2004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했다. 법무부가 서둘러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배경이다. 집행임원제도는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정착돼 흔히 ‘미국식 지배구조’라고도 부른다. 회사는 그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선임한 이사가 경영했다. 대부분의 회사는 이사회의 대표인 지배주주 즉 대표이사에 의해 운영됐다. 반면 극히 일부 기업은 고용 사장인 전문경영인에 의해 운영됐다. 하지만 법무부 개정안이 도입되면 회사 경영을 실질적으로 수행했던 이사회는 집행임원을 감독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뀐다. 신주·회사채 발행 등 주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할 만큼 중요한 안건에만 결정권을 갖는다. 회사 경영 책임과 권한은 집행임원이 갖는다. 물론 현재 회사의 이사들이 상당 부분 집행임원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지는 셈이다. 법무부는 이 제도로 경영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대표이사의 전횡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이 제도가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인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또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사회와 집행임원 겸직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향후 증권거래법이나 은행법·보험업법·금융지주법 등에서는 겸직 금지 조항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이사회는 집행임원 감독 사실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하는 미국식 지배구조가 좋은지, 지배주주가 경영하는 지배구조가 좋은지는 알 수 없다. 하버드대 법대 교수인 마크 로 교수의 연구는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그는 유럽과 미국·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지배구조를 연구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 국가의 지배구조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독특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환경에 따라 진화·발전해 왔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제도적 환경이 서로 다른 나라에 미국식 지배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사실 소액주주들은 전문경영인이라는 집행임원이 회사를 운영하든, 현재와 같은 대표이사가 회사를 운영하든 큰 관심이 없다. 이들은 과연 회사가 얼마나 이윤을 많이 내 자신이 소유한 주식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경영진이 회사를 잘못 운영해 주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주주들은 회사의 주식을 시장에서 팔아버린다. 경영진을 교체할 수도 있다. 설령 지배주주가 회사의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지배주주들은 전문경영인에 비해 상당히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물론 지배주주가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대리인 비용은 발생할 수 있다. 즉 중요한 의사 결정을 둘러싸고 의견이 다른 소액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지배주주의 판단을 전횡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익 극대화가 중요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재량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사실 지배주주는 상당한 재산이 회사에 걸려 있기 때문에 전문경영인들보다 대리인 비용이 더 적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전문경영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소액주주, 기관투자가 등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하나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하면 반도체·자동차 등과 같은 위험이 크지만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경영인은 이런 사업을 하면 재무담당 집행임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재무담당 집행임원은 회사 재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위험한 사업 투자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경영인은 재무담당 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위험·고수익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전문경영인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따라서 전문경영인들은 고위험·고수익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이런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대리인 비용 증가할 수도 특히 집행임원제도가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나타나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을 증가시킬 수 있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대리인인 경영자의 상충된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다. 감사 비용이 좋은 예다. 이사회가 집행임원들을 감독하는 비용이 많다면 경영자들의 급여는 낮아질 것이다. 또 주주들은 그런 회사의 주식을 사려하지 않거나 사더라도 실제 주식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사려 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잘 발달된 경영자 시장, 주식시장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에 비해 경영자 시장, 경영권 시장, 주식시장 등이 미숙하거나 덜 발달되어 있었다. 즉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을 맡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회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에 지배주주가 대표이사로 직접 참여하는 것이었다. 회사란 흔히 주주·종업원·경영자·채권자 등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계약의 복합체라고 말한다. 이는 서로 자발적인 계약관계로 맺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도 계약자들에게 자본을 제공하라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라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자본이나 노동력, 경영능력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회사는 운영 규정을 담고 있는 정관을 갖고 있다. 회사 정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주들은 그 회사의 주식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관에서 정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계약이 완전하려면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정관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 누구도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또 세세한 사항까지 정관에 기재하기란 불가능하다. 회사법이란 바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표준계약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회사법은 그런 사건에 대해 투자자와 경영자가 사전에 협상을 했을 때 어떤 계약을 체결했을지를 법조문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와 투자자가 정관에 그런 사건에 대해 회사법과 다르게 규정했다면 정관이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회사법은 정관에서 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보완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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