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성으로 돌아온 빈 라덴, 그 속셈은?
Predator and Prey 위협적인 동시에 낭랑한 귀에 익은 그 목소리가 돌아왔다. 일부 미국 관리들이 공개적으로 그의 사망 가능성을 거론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늘 그랬듯 이번에도 느닷없이 나타나 합리적인 말투로 죽음의 위협을 포장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지대 어느 곳으로 추정되는 오지에 숨은 이 9·11 사태 지휘자의 말투는 추종자들보다 적들을 상대하는 듯했다. 테이프는 몇 주 전 녹음돼 평소대로 알자지라 방송국에 몰래 전달됐다. 색다른 내용도 담겨 있었으니 다름 아닌 평화 제스처. 미국의 전쟁 염증(특히 이라크)을 냉소적으로 이용하려는 듯 이 테러 지도자는 미국 국민의 전쟁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강조했다. “양측이 안전과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미국 국민에게 “공평한 조건으로 장기적 휴전”을 체결하자고 최초로 제의했다. 과거에 “먼 곳의 적”을 궤멸시키겠다는 다짐으로 명성을 구축했던 빈 라덴이 이제는 간극 좁히기에 나선 듯했다. 미국은 그저 아랍 땅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된다. 테이프가 공개되자 그 진의를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적들의 참회를 믿지 않는 편인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메시지가 “술수”라고 비난했다. 부시 정부의 다른 관리들은 빈 라덴 본인의 나약함이나 어쩌면 전쟁 염증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이 테이프는 CIA와 국방부가 파키스탄의 소수민족 거주지에 미사일 공격을 강화한 시점에서 나왔다. 많은 전문가는 빈 라덴과 그의 오른팔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그곳에 숨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만 해도 CIA의 유도를 받은 무인정찰기 프레데터가 알자와히리를 죽일 목적으로 다마돌라 마을의 여러 민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재까지 18명이 숨졌는데 알자와히리는 포함되지 않은 듯하다. 미국 관리들은 사망자 중에 알카에다의 일부 고위 요원들이 있다고 여전히 자신한다. 파키스탄 당국은 이번 미사일 공격으로 알카에다 요원 네댓 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슬라마바드의 한 고위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신원확인 중이다.” 이번 공격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사람들 중에는 폭발물과 독극물 전문가인 이집트인 미드하트 무르시 알사이드 우마르가 있다. 2000년 미함 콜호의 선원 17명을 죽인 자살폭탄 테러범들을 훈련시킨 장본인이라고 한다. 아부 카바브라는 별명도 있다. “만일 그가 죽었다면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는 큰 타격”이라고 알카에다와 관련있는 파키스탄의 이슬람주의자 샤리프 모하메드는 말했다. “그는 알카에다 서구 조직의 책임자였다.”(세균전과 화학전을 연구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아부 오바이다 알미스리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쿠나르 지방의 알카에다 책임자인데 미군과 아프간군은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미국의 대테러 담당자들은 숨진 테러리스트들의 신원을 끝내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들은 경우가 다르다. 프레데터 공격으로 몇몇 아녀자가 죽었다. 소수민족 거주지에서는 주로 ‘무테히다 마즐리스 아말’로 알려진 파키스탄 이슬람 동맹이 이끄는 시위가 일어났다. 급진세력은 이번 사태를 이용해 미국과 가까운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지지세력에 타격을 가하고자 했다. 무샤라프는 확실히 미묘한 상황에 처했다. 주말에 그곳을 방문한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미국은 파키스탄 국경선 안에서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밀 차원에서 익명을 요구한 전·현직 대테러 담당 관리들에 따르면 프레데터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은 백악관에서 CIA로 전달됐다. 정찰 담당자들이 공격 시 민간인이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발사 전 상급자와 협의하게 돼 있다. 이름 공개를 꺼린 한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다마돌라의 경우에는 CIA 관계자들이 직접 공격을 결정했다. 그러나 백악관을 포함해 행정부 고위직들에게 사전 통보했으며,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공격을 취소시킬 시간은 충분했다. 윤리적 문제와 홍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빈 라덴과 알자와히리 수색작전에 관여한 미 관리들은 프레데터 공격은 대가보다 이점이 훨씬 크다고 확신했다. 두 전직 관리의 말에 따르면 그 지역에는 미사일을 장착한 프레데터기 몇 개 편대가 주둔 중이다. 그중 일부는 레이저로 유도하는 중력탄을 장착했다. 정보에 정통한 한 파키스탄 관리는 이번 프레데터 공격은 2005년 5월 이래 파키스탄 국경 내에서 벌어진 네 번째 공격이라고 말했다(종전의 보도보다 두 건이 많다). 미군과 CIA는 1월 초부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첫 모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만m 상공에서 160㎞ 이상의 거리를 감시하며 저공 비행하는 프레데터기에 정밀폭격을 지시할 수 있다. 알자와히리가 숨었다고 알려진 소수민족 거주지는 중앙통제에 거세게 항의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인도 식민시대의 영국군과 이웃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던 소련군은 익히 그 맛을 봤다. 그러나 이 과거의 열강들은 하늘에서 땅을 샅샅이 훑으며 리모컨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기술 같은 것이 없었다. 민가 세 채를 파괴하고 몇몇 가족을 몰살한 다마돌라 공격의 큰 의미는 주민들이 생활규범을 재고할 필요가 생겼다는 점이다. 동족이나 손님을 무조건 환대하는 파슈툰왈리 규범에 따라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대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다.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하면 가족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는 말하면서 기밀이라는 이유로 이번 공격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절했다. 알자와히리의 부인은 그 지역 출신인 “모만드” 파슈툰으로 알려졌지만(알자와히리는 그 덕을 많이 보았다), CIA는 최근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도움 덕분에 그 지역에서 밀탐꾼들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일부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보기관은 대규모 “연락” 팀의 입국을 허용하고 상당 수준의 기술지원을 수락했다). CIA의 전 파키스탄 지부장 프랭크 앤더슨은 알카에다 1급 용의자들의 머리에 수백만 달러가 걸린 상황에서는 파슈툰왈리도 별 수 없다고 말했다. “의리를 중시하는 고결한 촌사람이란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짓궂게 말했다. 여러 해 동안 내부 갈등을 심하게 겪어온 미국 관리들도 이제는 마침내 전열을 정비해 테러와의 세계 전쟁을 수행하게 됐다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1년 전만 해도 언론에서는 국방부와 CIA의 권력 투쟁을 운운했지만 이제 두 기관은 현장에서 손을 잘 맞춘다고 미국의 대테러 당국자들은 말했다. CIA는 미군이 활동을 벌일 수 없는 파키스탄에서 사실상 주도권을 쥐었다(CIA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비밀활동을 수행 중이기에 “오리발”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호크와 프레데터 시스템은 워낙 정교해 고선명 사진이 위성을 통해 CIA 본부(버지니아주 랭리) 6층에 있는 “글로벌대응센터”라는 대형 지휘실로 생중계된다. 그곳에서 담당자들이 대형 화면으로 위성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는 동안 헤드폰을 낀 다른 관리들은 현장 요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한편 국경선 너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 특수작전팀들이 밤낮으로 활약하며 파키스탄에서 넘어오는 탈레반 반군들과 싸운다. “규모는 작아도 제법 치열한 전쟁”이라고 미군의 한 소식통은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빈 라덴이 평화를 호소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일부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다른 테러 분석가들은 빈 라덴의 경쟁자이자 때로는 협력자이기도 한 이라크의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잔인한 전술로 많은 무슬림의 인심을 잃은 시점에서, 빈 라덴의 연설 요지는 “내가 여전히 1인자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빈 라덴은 평화협상가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추종자들의 눈에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비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난주 시점에서 빈 라덴의 최대 과제는 미국인들이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4년이나 겪었으며 이제는 관심의 초점이 이라크로 이동한 미국인들 눈에 빈 라덴의 최근 메시지는 위협도 위협이지만 허세로 보였다(국토안보부 공무원들은 협박의 수준에 변화가 없다고 맥없이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전에는 코란을 인용하던 이 테러 지도자가 이번에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학대사건을 다룬 미국의 보도를 언급하고, 심지어 미국의 좌파 작가 윌리엄 블럼의 말을 인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을 떨어내 버리려면 “미국이 세계 각국에 개입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빈 라덴의 언급 덕분에 제국주의를 맹비난한 블럼의 역작 ‘불량국가’(Rogue Nation)는 아마존에서 20만 개 이상의 계단을 뛰어 17위로 올라섰다(“오프라가 됐건 오사마가 됐건 ‘오’로만 시작하면 된다”고 블럼은 뉴스위크에 농담했다). 알자지라 방송의 워싱턴 앵커맨 하페즈 알미라지는 블럼과 이스라엘 작가 나탄 샤란스키에게 자기 쇼에 함께 출연해 “부시와 빈 라덴이 총애하는 두 작가를 한자리에 모실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어떤 점에서는 빈 라덴이 순박하게도 조지 부시의 손에서 놀아나는 듯하다. 이라크 조기 철수론자들의 입을 막는 데는 9·11 사태 총지휘자의 지원보다 강력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비용이 2조 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는 새로운 분석이 나오고, 미국 경제가 기록적인 예산적자의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미국 국민은 끝없는 전쟁을 떠올리며 공감할지 모른다. “국력과 현대식 무기에 현혹되지 말라”고 빈 라덴은 말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은 비를 겁내지 않는 법이다.” 전에도 자주 그랬듯이 빈 라덴은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상대로 이긴 전쟁을 들먹이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들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 결과 이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들도 거기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인들은 그에게서 교훈을 듣고 싶지 않을 뿐이다. With JOHN BARRY in Washington and ZAHID HUSSAIN in Islamabad 최한림 parasol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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