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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낯설고도 낯익은…

너무나 낯설고도 낯익은…

1995년부터 98년까지 북한 사람 22만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99년 5월 북한 수해피해복구위원회의 공식 발표다. 국제사회의 비공식 집계는 백만 명 이상이었다. 모두 굶어 죽었다. 북한에서 말하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를 시절이었다. 최근 사진작가 리만근씨는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 97년부터 2003년까지 함경남도 일대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한 기록이다. 뉴스위크는 리씨의 미공개 사진을 덧붙여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전한다. 설날을 보내며 더욱 고향을 그리워했을 실향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한다. 그동안 북한을 담은 영상 기록은 극단으로 치우쳤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렌즈를 들이댔거나 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모습뿐이었다. 한쪽엔 북한 당국의 검열을 거친 이미지가, 다른 한쪽엔 반북단체들이 유통시키는 충격적인 영상이 보였다. 리만근씨의 기록은 자유롭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영상물과 차원을 달리한다. 7년간 북한을 들락거릴 기회를 가진 작가 혼자서 이뤄낸 작업이다. 도시와 농촌 여러 곳을 방문했다. 정치적 고려도, 공간적 제약도 없다. 그렇다고 북한 당국의 허락하에 찍은 사진은 아니다. 업무상 특수한 지위를 활용해 틈틈이 임의로 촬영했다. 북한에서는 외국인이 혼자서 장거리를 이동하지 못한다. 출장길 혹은 일터로 가는 길에 안내원의 눈을 피해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도 적지 않다. 가공되지 않은 북한 주민들의 숨소리는 일종의 몰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결과물들은 너무나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이다. 남한에서는 서구화나 국제화로 자취를 감춘 한국인의 원형질이라고나 할까. 리만근은 가명이다. 50대 사진작가 정도로만 알려지길 원한다. 더 이상 북한에 갈 일이 없지만 자신이 몸담은 회사는 아직도 북한과의 관계가 긴밀하다. 뜻하지 않은 분쟁이나 갈등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신원 밝히길 대단히 꺼린다. 고난의 행군은 원래 1938년 말에서 39년 초 항일독립투쟁을 벌이던 김일성이 일본군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100여 일간 벌였다는 행군에서 유래한다. 한국전쟁, 또 경제난과 자연재해가 겹친 95년부터 6년 동안도 고난의 행군 시기로 일컬어진다. 북한은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돌을 기해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김철주 사범대학의 정기풍 정치사학과 강좌장(학과장)은 지난해 미국 소재 온라인 매체인 민족통신과의 대담에서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더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한참 고생할 때는 남들이 업수이여길까봐 고생스럽다는 말도 못하고 참았는데 이제는 다 이겨냈다”고 말했다. 97년 11월 남한도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직, 가정 파탄, 잇따른 자살 등 서민들의 삶과 꿈이 일거에 무너졌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 그 상흔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남북한 공히 비슷한 시기에 다른 이유로 기나긴 고난의 터널을 지났던 셈이다.

취주악대(함경남도 ·1998): 김혁 청년돌격대와 취주악대가 붉은기를 앞세워 행군한다.노동당기 ·인공기 ·사로청기가 보인다.

평양거리(1998): 잘 차려 입은 여성들이 활보하는 평양거리.중국에서 생산된 의류들이 북한으로 유입되면서 평양 여성들은 쫑대 바지· 디스코바지 등을 좋아했다.과감한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다니기도 했다.이때부터 평양에서는 쌍꺼풀 수술과 눈썹 문신이 인기를 끈다.

풍양조씨 집성촌(함경남도 · 1998):마을 뒤 산등성이에 조상들의 묘가 밀집해 있다.모든 평토장으로 개조하라는 국통환경보호상의 지시가 있어지만 이곳의 무덤들은 원형 그대로다.제사나 조상 모시기는 여전하다.

이동수단 우차(함경남도 · 1998) 소와 우차는 북한에서 유용한 이동수단이다.북한에는 개인이 소유하는 소가 없으며 협동농장이나 우마차 사업소에서 관리한다.

시멘트 쌓기(함경남도·1997) : 곧 비가 올 듯한 날씨에 시멘트 가루를 창고에 쌓는다.부인들이 직접 재봉틀로 만든 팬티를 입었고,머리카락 사이에 시멘트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파마용 비닐모자를 썼다.

양어장 만들기(함경남도 ·1999) : 북한은 1990년대 후반 어획량이 떨어지자 식량난 극복을 위한 양어사업을 확대해왔다.

지방 도시의 아파트(함경남도 · 2002) : 평양의 일부 고층아파트를 제외하고 지방도시에서는 4~5층 아파트가 일반적이다.

철도 화물차와 트랙터(함경남도 ·2002) : 철도 화물차 앞에서 하치작업을 기다리는 사람들.북한에서 생산한 천리마호 트랙터도 보인다.

협동농장의 문화주택(함경남도 ·1997): 월동준비에 들어간 협동농장의 문화주택이다.가을걷이를 끝내고 집집마다 텃밭에서 일군 배추로 김장 준비에 한창이다.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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