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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잘하는 여성 CEO[전형일의 세상만사]

감정 내쏟거나, 달래거나…욕, 카타르시스의 미학
엔터업계 ‘삼마이’로 만든 민희진의 기자회견

지난 4월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하이브 경영권 탈취 관련 설명 기자회견장에서 민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사진 서병수 기자]
[전형일 칼럼니스트] 욕·욕설·육담·쌍소리·욕지거리·육두문자.

어떻게 부르든 사적(私的)이고 음지의 말이다. 욕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고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그럼에도 욕은 모든 문화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욕은 대개 성(性)과 동물 등에 비유하고 과장법을 사용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민족과 언어는 달라도 욕의 의미와 구성은 비슷하다.

사람은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 등 일곱 가지 감정(七情)을 갖는다. 

이 감정은 우리의 의식적인 통제 밖에 있다. 그것은 불현듯 느닷없이 갑자기 폭발하고 작렬한다. 주체하기 힘든 게 감정이다. 

욕과 쾌락, 그 어느 사이쯤

욕은 일반적인 상황이나 언어 체계와는 다른 문란(紊亂)과 반란(反亂) 현상이다. 실망, 좌절감과 더불어 분노, 증오, 원한 등에서 폭발하는 감정의 표현이다. 그래서 욕은 공격적이다. 이른바 갈 데까지 가는 것으로 다음은 폭력만 남는다. 

욕은 남에게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한다. 자학(自虐)이다.

또 욕은 꼭 화날 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 설움에 북받치고, 한스러움에 겨워 슬플 때도 욕을 한다. 기쁠 때나 힘들 때도 욕이 나온다. 

웃으면서도 욕을 하고 울면서도 욕하는 게 사람이다. 욕은 감정을 분출하는 방식인 동시에 감정의 달램이고 삭임이다. 사람은 감정을 내쏟기 위해서도 욕하지만, 감정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서도 욕을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김열규, 2018,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있다. 욕을 악의 없는 그저 추임새 정도로 생각한다. 손님도 알아서 응대한다. 주인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욕을 해댈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있다. 손님들은 욕을 고명이나 안주 삼아 먹는다. 아마도 욕먹으면서 피학대성 쾌락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이처럼 욕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통해 쾌락을 얻는 사디즘과 마조히즘 사이를 넘나든다. 

욕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또는 필요하기까지 하다.

욕은 삶에서 중요한 상징이자 소통 수단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저항의 의미로 욕을 한다. 체제 불만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게 욕이다. 이 또한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욕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욕을 한다. 인간관계가 그렇고 정치‧사회 현상이 욕을 하게 만든다. 갈수록 ‘욕 권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 욕은 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욕먹지 않기도 해야 한다. 

욕설 기자회견은 옳았을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욕 한 번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언어는 습관이다. 욕은 그 사람의 교양과 인품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최근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하이브와 갈등이 있는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거침없는 욕설과 막말을 쏟아냈다.

“죄송한데, 제 성격이 좀 이래요. 아니, 미안하지만 이 개저씨(개+아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발××들이 너무 많아서(웃음). 이 표현이 아니면 죄송해요. 저도 스트레스 풀어야죠.” 민 대표의 이날 ‘욕설 모음’이 별도도 만들어져 유튜브에서 공개됐다. 

이 밖에도 ‘맞다이, 지X, 양XX, 씨XXX’ 등을 남발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녀는 이날 열심히 일한 자신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직장인임을 호소했다. 또 강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약자를 대변하고,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이라는 구도로 여론의 동정과 지지를 얻는 게 목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연봉 외에 상여금으로만 20억 원을 받은 회사 대표가 ‘핍박받는 을(乙)’이라는 주장에는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정작 문제가 되는 의혹을 해소할 만한 자료나 증거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불리한 정황이다. 

“죄송한데, 제 성격이 좀 이래요”라는 민 대표는 평소에도 막말과 욕설을 생활화한다고 볼 수 있다. 혹시 민 대표는 ‘자기 성격’대로 직원은 물론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걸 그룹 뉴진스(NewJeans) 멤버에게도 수시로 욕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생긴다.

욕도 상대나 상황을 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수에게 쌍욕을 한 것이 만천하에 알려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공개적으로 욕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오만한 의사협회장들도 짜증 난 표정으로 재수 없이 말해도 육두문자는 섞지 않는다.

민 대표는 국민을 어떻게 보기에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욕을 했을까. 민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이 업을 하면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이 XXXX들이 너무 많아 가지고···”

민 대표는 다양한 욕을 알고 있으며 그것도 찰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자신의 수준을 거리낌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의 비즈니스 업종은 청소년을 교육하고 스타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해외에 알리는 문화(文化)사업이다. 

확실한 것은 이날 민 대표는 k-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삼마이(3류)’로 만들었다.

전형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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