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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은 ‘뜨거운 감자’

한국 원전은 ‘뜨거운 감자’

한국은 에너지 과소비 국가이자 에너지 소비 증가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2004년엔 에너지의 97%를 수입했다. 중국(7.6%), 미국(26%), 프랑스(50.3%), 독일(61.9%), 일본 (80.1%)보다 높다. 1990~2000년 10년 동안의 국가별 에너지 탄성치(에너지 소비 증가율÷경제성장률)를 보면 영국(0.37), 프랑스(0.68), 미국(0.56)에 비해 한국은 그보다 훨씬 높은 1.22였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률보다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더 컸다는 얘기다. 에너지 효율성을 더욱 높이거나 값싸고 경제성이 높은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늘려야만 할 처지다. 정부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전원(電源) 탈피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1978년 원자력 발전을 시작할 당시 70%에 달하던 석유발전 비중은 지금 6.5%대로 줄었다. 1989년엔 전체 발전량의 절반(50.1%)을 원자력발전이 책임졌다. 1990년대 초반 삼천포, 보령 등지에 대용량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원자력발전 비중이 1997년 34.3%까지 떨어졌지만 고유가 바람을 타고 다시 40.3%에 이른다. 산업자원부의 ‘2차 전력수급 기본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46.7%까지 상승한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0기에 신규원전 8기가 2017년까지 예정대로 건설된다면 말이다. 많은 나라들이 고유가, 온실가스 규제 등에 자극받아 원전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학계나 원자력발전 관련 기관에서 보다 적극적인 원자력 활용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자력 관련 국가 정책 목표와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연구책임자인 장순흥 한국과학기술원 부총장은 2월 2일 한 토론회에서 원자력 산업 육성 필요성을 역설했다. 장 부총장은 “신규원전 건설의 지속적 추진으로 핵심기술 능력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과 같은 과학자들은 적어도 한국의 원자력 발전 비중이 70%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장 고문은 “가장 현실적인 정답은 자원이 아닌 두뇌로써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일이다. 정부가 과감하게 원자력 최우선 정책을 세워 후손들에게 에너지 부국을 물려줘야 한다”고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문제에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지난해 9월 고유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제3차 국가에너지자문회의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렸다. 그러나 원유와 LNG 등 해외자원 수급 혁신 방안만이 강조됐을 뿐 원전 활용은 원론적인 언급에 머물렀다. 에너지 정책 주무부서인 산자부가 원전의 경제성이나 필요성을 모를 리 없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인 원자력발전 전략이 있다. 다만 현 단계에서 밝히지 못할 뿐”이라고 했다. 왜 못 밝히느냐고? 원전의 안전성에 회의적이고 생태계 파괴를 걱정하는 환경단체와 일부 반대여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은 경제와 정치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다. 정부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당사자들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옴짝달싹 못한다. 그런 사실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사례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산자부 원전기획단의 강경성 서기관은 “원자력 발전문제는 경제성만 따져서는 안 되며 환경적 측면과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전 문제에 너무 신중하다 못해 자신감마저 상실하지 않았으냐고 우려한다. 원전을 둘러싼 논란과 물의를 의식해 관련 공무원들이 소신 발언을 안 하고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다. 황주호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정부도 이제 두고 보겠다(wait and see)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자력발전 비율을 40%로 끌어올린 주체들은 마치 죄라도 짓는 양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일해 왔다. 이제는 원전이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앞장서 그 같은 기여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원전은 수치만 따지면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 우선 발전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고 해외 에너지 가격 변동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우라늄 가격이 100% 상승하더라도 발전원가는 2.5% 인상한다”고 말했다. 연료비 비중이 원자력은 19%인 데 반해 수력 37%, 석탄 58%, 석유는 79%다. 판매단가도 저렴해 1kwh당 40원으로 석유(80원)의 절반, LNG(154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2004년의 경우 원자력발전을 석유로 전량 대체하려면 5조1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되며, 전기요금도 32.7% 인상돼야 한다고 한수원은 추정했다. LNG로 대체한다면 14조원의 추가 비용에다 92%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원자력 발전은 지난해 2월 발효된 기후변화협약에 대처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협약에 따르면 기존 화석연료를 이용한 전력생산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고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발전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발전원별 배출 계수를 보면 원자력은 석탄의 약 100분의 1배, 석유의 80분의 1배, 천연가스의 50분의 1배의 이산화탄소만 배출할 뿐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 세계 1위, 배출량은 세계 9위인 한국의 실정에서 보면 원자력발전은 더욱 매력적인 대안이다. 원전 반대론자들은 이런 단편적인 수치들이 실상을 호도한다고 반박한다. “원전 해체비용과 폐기물 처리비용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김종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주장한다. “대다수 원자력 경제성 분석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분 비용과 원전 해체 비용이 외국과 비교했을 때 매우 저평가돼 있어 민영화조차 난관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일본의 경우 110KW급 표준형 원자로 1기를 해체할 때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비용이 약 550억 엔(45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원전추진론자들은 불분명한 장래의 비용보다는 현재의 이익에 더 무게를 둔다. 강희동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1983년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가 156% 상승하는 동안 전기요금이 불과 3% 인상된 이유는 원전 때문이었다는 입장이다. 원전의 안전성도 시빗거리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환경정치경제학)는 “핵사고는 천장이 무너지거나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당하는 정도와 비교할 성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 한 기의 사고만으로도 광대한 생태계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후유증은 수대에 걸쳐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또 “방사성에 의한 암이나 유전장애는 증상 확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해하다는 주장을 편다”고 원전추진론자들을 공박했다. 따라서 원전 주변지역의 암 발생 빈도는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음에도 이런 객관적인 데이터는 무시되기 일쑤라는 말이다. 원전추진론에 선 사람들은 이미 20년 이상의 원전 운전 경험과 기술 축적으로 한국의 원전 안전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반박한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측은 “우리나라의 원자로는 원자력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해 발전소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재가 상실된다 하더라도 연쇄적으로 일어나던 핵분열이 저절로 중단돼 사고가 확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또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주변 지역에 산다고 해도 1년 동안 받는 방사선은 0.02밀리시버트로 자연방사선량의 12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에너지 수급문제에서 인식을 전환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에너지 수요 증가에만 집착하지 말고 절약이나 효율적 활용 방안 등 지속 가능한 에너지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핵발전을 동결하거나 포기해야만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2050년까지 50%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계획을 세운 독일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잠재적 활용가치는 크지만 당장 실용화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태양력이나 풍력은 집열판이나 풍차를 설치하려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1000MW급 원자력 1기 건설에 필요한 면적은 여의도의 17분의 1이면 충분하지만 태양광은 여의도 면적의 약 8배, 풍력은 30배의 부지를 필요로 한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한국이 ‘신재생에너지 보급 원년’으로 선포한 2004년 재생에너지 공급은 총 에너지 수요의 2.27%에 그쳤다”고 밝혔다. 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은 “재생에너지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10%도 얻기 어려워 나머지 90%를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반대론자들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원전 사후처리 사업을 든다. 녹색연합의 석광훈 정책위원은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 수명이 다 된 원자로 폐기 문제 등 핵심 쟁점은 뒤로 한 채 부지 확보에 성공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만 부각시키면서 여론을 호도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서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가 비용과 안전성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용후 핵연료(고준위폐기물)는 석탄발전소에서 타고난 석탄 찌꺼기와 연탄 아궁이에서 타고 난 연탄재와 비슷하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방사능을 걸러낸 필터나 방사능 처리과정에서 사용되는 비닐, 걸레와 같은 각종 도구를 말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2008년까지 경주에 들어서게 되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쌓으면 그만이지만 사용후 핵연료는 아직 영구적인 처분장이 없다. 임시로 원전 핵연료건물 안 수조에 저장해 왔지만 오는 2016년께엔 수조가 꽉 차게 된다. 김종달 경북대 교수는 “이때까지 폐기물저장소를 확보하지 않으면 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로 원전 운행을 멈춰야 한다”고 경고한다. 최소한 중간 처분시설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입지선정에서 보듯이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하리라 예상된다. 결국 난제인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원전 증설은 고사하고 기존의 원전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원전은 지금도 20기가 가동 중이고 사용후 핵연료는 계속 불어난다. 정부와 한수원은 2020년까지 기존 계획 말고 원전 1, 2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원자력발전을 지속하려면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건설의 로드맵 수립을 공개적으로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계획을 명백히 공개하고 국내외 검증을 받아 정부 불신을 불식해야 한다”고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하거나 줄이는 기술 연구도 필수적이다. 황주호 경희대 교수는 재활용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서는 원전 증설 계획이 정치적 반대파의 거센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자부 대외협력과가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원자력 수용 의식이 한층 개선됐음을 보여준다.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신뢰도 95%)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거주지 내 원전 건설에 50.5%가 찬성했다. 1995년 이후 매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찬성이 절반을 넘어섰다. 산자부는 “님비현상이 크게 완화됐으며 원자력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태도가 많이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부가 원전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도 되지 않을까?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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