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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개혁 마지노선 당리당략 정쟁이 문제

올해가 개혁 마지노선 당리당략 정쟁이 문제

국민연금은 핵심적인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다. 노령·장애·사망으로 소득이 줄거나 없어질 경우 연금급여는 생활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로 과거처럼 자녀에 의한 부모 부양이 줄어들고,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 각종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어 국민연금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 커졌다. 1988년 도입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선진국들이 공적연금제도가 100년 이상 운영해온 것에 비해 아직 도입 초기단계에 있다. 자영업자의 불성실한 소득신고, 미납자와 납부예외자 과다 등 미숙한 제도 운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재정 불안정, 공무원연금 등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 등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제도를 수정·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연금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장기 재정 불안정이다. 그런데 국민의 우려는 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정 불안정은 근본적으로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채택한 데서 기인한다. 이는 국민연금제도 도입 초기 보험료 부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을 통해 가입자의 제도 순응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미국·독일·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제도 초기단계에서는 낮은 보험료에서 출발해 수십 년 후에야 현재 수준에 도달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은 1942년 2.0%의 부담률에서 시작해 2005년 현재 12.4%까지 올랐고, 독일 노동자연금은 1932년 5.0%에서 출발해 2005년 현재 19.5%에 달하고 있다. 아직 도입 초기단계에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 및 출산율 저하, 그리고 경제성장의 둔화 등 제도 도입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전개되는 사회·경제적인 여건 변화로 연금 재정의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됐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근로자 10명이 부양하는 노인 인구는 2002년 현재 1.2명이지만, 2030년 3.7명, 2060년 7.1명, 2070년 7.5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장기적인 재정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98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재정계산제도’를 도입했다. 5년마다 재정 전망과 필요한 보험료율을 추정해 급여수준과 보험료율을 조정, 국민연금제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3년에 첫 재정계산 결과, 현행 저부담-고급여의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할 경우 기금 적립률이 2010년 26.1%, 2030년 13.7%, 2040년 5.3%로 점차 줄어서 2047년에는 적립기금이 소진되고 적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전망됐다. 기금적립금(2005년 현재 150조원)이 2035년 1715조원까지 증가한 후 2036년 이후 기금 잠식이 급속히 진행돼 2047년에는 기금이 소진(2047년 보험료 수입은 총지출의 29.4%)되며, 기금 소진 이후 보험료율은 2050년 소득의 30%, 2070년 39.1%로 과중한 보험료를 납부해야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초 재정계산 결과 장기적인 재정 불안정과 후세대의 부담 문제가 대두됐고,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제도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안티(Anti) 국민연금’ 운동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국민연금제도 개선의 의무를 저버렸고, 제도 개선의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다. 특히 16대 국회는 김성순 의원과 김홍신 의원 등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주창했던 의원도 있었지만, 정치권은 노동계나 재계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눈치보기에 급급해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심의조차 기피하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책임하고 무성의했던 국회”

▶프랑스 파리에서도 2003년 연금 개혁에 항의해 시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국민연금제도 개선은 17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됐다. 하지만 17대 국회 또한 개원 후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연금제도 개선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은 대표 발의자를 중심으로 정부안과 열린우리당 소속 필자 장복심 의원안 및 유시민 의원안, 그리고 한나라당 소속 윤건영 의원안과 유승민 의원안, 이 밖에 보장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주노동당 소속 현애자 의원안 등이 있다. 정부안은 현행 40년 가입시 평균 소득자의 소득대체율 60%를 2008년부터 50%로 인하하되, 2007년까지는 55%를 적용하며, 현행 월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2010년부터 5년마다 1.38%씩 올려 2030년에 15.90%로 조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필자는 정부안의 문제점과 미비점을 개선한 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필자의 안과 유시민 의원안의 주요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기준(최저 53%)을 충족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55%로 유지하되, 보험료율은 정부안이 2010년부터 인상할 계획임을 감안해 2008년 재정재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조정하도록 유보하며,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을 법제화하고,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안은 연금 미납자와 납부 예외자 등의 과다 발생으로 인한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세부담 방식의 기초연금을 신설하는 것이 핵심이고, 유승민 의원안은 국민연금의 기금관리와 기금자산운용을 분리하고, 국민연금기금자산투자전문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담고 있다. 크게 구분하면 정부와 여당 개정안의 뼈대는 현재의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해 재정 안정화를 이루는 것이며,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현행 국민연금 체계를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고, 기금관리와 기금자산 운용을 분리하고 투자전문회사를 설립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제도 개선에 대한 여야 간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지난해 국민연금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국회 파행으로 표류하다 지난 2월 13일 석 달 만에 재개했지만, 특위 활동 시한이 이달 말로 끝나는 데다 여야 간 이견이 많아 합의안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 간 최대 쟁점은 기초연금제 도입 여부에 관한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달 신년연설에서 기초연금제 도입을 강조했으며, 국회 국민연금제도개선특위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은 2월 13일 성명을 내고 기초연금제 도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초연금제 도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회수당 성격의 기초연금제는 보충성의 원칙에 입각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에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조세부담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원 확보가 곤란하다는 이유다. 기초연금제 도입시 소요되는 재정 추계도 달리한다. 한나라당은 “2006년 기준으로 2조3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2006년 9조원, 2020년 67조원, 2030년 200조원, 2070년 1354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필자는 현행 국민연금제도를 유지·발전시키는 가운데 최초 재정계산 결과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과제이며, 기초연금제 도입과 같은 전면적인 구조개편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기초연금제를 실시하는 선진국의 경우도 재정부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스웨덴의 경우 지난 98년 개혁을 통해 기초연금제를 폐지하고 소득비례연금에 통합했으며, 덴마크는 99년 개혁을 통해 사회수당방식의 기초연금을 축소하고 개인의 기여를 강화하는 소득비례연금을 확대한 바 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초연금제 도입을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이 개혁의 적기 정부의 재정부담 능력을 고려하면서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행 경로연금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세대 노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발전의 주역임에도 자녀 양육에 모든 것을 다하여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세대임을 감안,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 대선 당시 경로연금 지급 대상자와 지급액을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로연금 수급 대상자가 2002년 61만 명에서 지난해 63만 명으로 2만 명 증가한 것에 불과했으나, 이를 200만 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기금관리와 기금자산 운용을 분리하는 방안도 논란이다. 거대 기금에 대한 기금운용의 독립성 제고를 통한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연금제도 운영과 기금운용의 분리 문제는 기금운용에 대한 책임성, 안전성을 약화시킴으로써 국민 불신 심화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기금 부실화를 초래할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기금조성·급여지급과 기금운용 시스템의 개별적인 이원관리체계는 재정 안정화 방안을 위한 연금 개혁시 조직 간 갈등, 책임전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보험료 징수-기금 운용-급여지급이라는 연계 고리가 단절돼 제도 운영에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연금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신년연설에서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고 있다”고 개탄했을까? OECD나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제도가 성숙하기 전에 개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연금제도가 성숙되면 많은 기득권자가 발생하고, 연금 개혁에 대한 조직적 반발로 제도개혁이 어려운 선진국들의 경험에 비추어, 가능한 한 빨리 개혁하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지난해 175만 명으로 늘었으며, 제2차 재정재계산 연도인 2008년 이후에는 본격적인 노령연금 개시로 연금 수급자가 300만 명 이상으로 늘 전망이어서 제도 개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야말로 지금 호미로 막지 못하면 후일 가래로도 막지 못할 일이다. 올해는 그간 미뤄왔던 국민연금제도 개선의 최적기다. 신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역대 어느 장관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고 그 다음해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올해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면, 국민연금은 또다시 선거를 의식한 당리당략 차원의 소모적인 정쟁거리로 전락할지 모른다. 만일 17대 국회도 16대 국회처럼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기피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며, 국민적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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