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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 터키를 가다] 산유국 아닌데도 오일 特需 누려

['기회의 땅' 터키를 가다] 산유국 아닌데도 오일 特需 누려

지난해 10월 신흥 산유국들로 주목받고 있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취재할 때 목격한 일이다. 당시 중앙아시아 산유국들은 기름 팔아 번 돈으로 앞다퉈 인프라 투자를 벌이고 있었는데, 그 일을 대부분 터키 건설회사들이 맡고 있었다. 두바이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비롯해 카자흐스탄의 신수도 건설, 아제르바이잔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에 이르기까지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집 짓는 공사의 대부분을 터키가 싹쓸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1970년대의 한국이 중동건설시장을 주름잡던 때를 그대로 연상케 했다. 한국이 판을 쳤던 자리가 지금은 터키의 몫으로 변해 가고 있는 셈이다. 야피크레디의 아멧 치멘노글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젠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터키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아제르바이젠은 언어가 같고, 카자흐스탄은 언어가 비슷할 뿐 아니라 민족도 같아 이들이 터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대단히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이시은행의 오자제 행장은 “터키는 80년대부터 시장경제를 도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터키의 기업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발칸 반도와 카스피해 쪽으로 떠났다”며 “그 지역의 어떤 곳을 가더라도 터키 회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키가 지난 한 해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 해외 건설로 올린 수주 실적만 해도 93억 달러. 애초 70억 달러만 해도 잘한다고 했었는데 목표치를 훌쩍 넘겨 버렸다. 터키 정부조차 예상치 못 한 일이라고 할 정도다. 2001년 해외건설 진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무려 62개 나라에 진출해 있다. 산유국도 아니면서 제3의 오일 붐을 맞아 소리 소문 없이 재미보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셈이다. 앙카라에서 만난 터키 건설협회의 에르달 에렌 회장은 “해외 건설은 터키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할 것”이라며 “중동과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대형 건설공사도 터키가 일찌감치 터를 잡아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에렌 회장이 이처럼 중동과 중앙아시아 무대에서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쿠르드 출신인 내가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 가서 그들과 사업흥정을 하는 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자기를 당해 낼 수 있겠느냐”며 자신감을 비췄다. 역사로 보나 종교 면에서 보나 한 울타리 속에서 살던 나라를 상대로 공사를 따내는 데 있어 터키가 결정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터키가 이곳에서 단순히 건설로만 재미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석유가 나지 않는 터키에서 석유가 강력한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카스피해에서 퍼올린 석유를 지중해로 실어 나르는 BTC(바쿠~트빌리시~세이한)의 최종 종착역이 바로 터키의 세이한이기 때문이다. 터키가 카스피해에서 퍼 나르는 석유의 수도꼭지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그와 관련한 부가가치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이뿐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지는 CPC 라인이 터키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는 점이다. 흑해 연안의 러시아 노보로시스크항에서 해상 운송으로 유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최근 터키는 보스포루스의 유조선 출입 급증으로 인한 해협의 혼잡과 사고에 따른 원유 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길이 200m를 초과하는 선박의 야간 출입을 통제하고 탱커의 출입에도 쿼터를 적용하기 시작해 월간 원유 수송량이 급감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말 완공된 러시아와 터키 간 가스 파이프 라인 블루스트림을 통해 가스 수송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서방과 터키가 합작해 터키 통과 파이프 라인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라고 해석되고 있다. EU 가입을 이유로 친미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터키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제할 경우 러시아의 대서방 수출로는 막히게 돼 있다. 지난해 10월 터키의 EU 가입 협상이 막바지에 타결된 것도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 장관의 외교력이 컸다는 후문. 당시 일부 유럽 언론들은 터키를 미국이 유럽에 심어놓은 ‘트로이의 목마’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지 중앙아시아의 발전 여부는 터키 경제와도 직결돼 있었다. 터키가 뜨는 날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누렸던 왕년의 영광까지는 못 미친다고 해도 유라시아의 중요한 축으로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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