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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반지의 제왕’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반지의 제왕’

'Ring' a Ding Ding 공연이 시작되기 전 핑크색 스웨터와 갈색 트위드 스커트를 입은 한 50대 여성이 기념품 상점을 둘러본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영화 비디오 테이프 봤어?” 그 여인이 근처에서 서성대던 20대 딸에게 물었다. 딸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인지도 몰라?” 그 질문의 답은 글씨가 빽빽한 지면으로 1000쪽이 넘는 J R R 톨킨의 3부작 소설에 나와 있다. 23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든 웅장한 3시간 30분짜리 뮤지컬 ‘반지의 제왕’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3월 말 막을 올렸다. 2007년 봄에는 런던 웨스트 엔드 공연이 이미 예약돼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다. 뮤지컬은 몰라도 톨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호빗족은 몰라도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 끌어 모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반지의 제왕’ 팬들은 자신들의 왕국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 경계한다. 뮤지컬 공연이 호평을 받는다 해도 과연 톨킨의 골수 팬들을 공연장으로 많이 끌어들이게 될까? 연출을 맡은 매튜 와처스는 이런 질문을 받자 빙긋 웃었다. “곧 알게 되지 않겠느냐.” 이미 1300만 달러의 티켓 예매 수입을 올린 뮤지컬 ‘반지의 제왕’은 아카데미상을 휩쓴 피터 잭슨의 영화 시리즈와는 관련이 없다. 제작자 케빈 월리스는 2001년 겨울 영화의 제1편 ‘반지원정대’가 개봉되기 직전 이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또 연출자 와처스는 최근 들어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 “그 영화들은 영화 전투 장면의 결정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헬름 협곡의 전투 장면에서 1000개의 사다리를 동원하지는 않겠다.” 뮤지컬을 보려고 공연장을 찾은 그 핑크색 스웨터를 입은 여인을 위해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반지의 제왕’은 어둠의 땅 모르도르에 가서 악의 반지를 운명의 산(꼭 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불구덩이에 던져 파괴하는 원정을 자원하는 프로도라는 몸집 작은 호빗족 청년의 이야기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은 결코 가벼운 싸구려 뮤지컬이 아니다. 활기찬 지그 춤곡부터 격렬한 현대 음악까지 풍성한 음악을 선보인다. 그러나 한 등장인물이 앞으로 나와 솔로로 노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원작자 톨킨은 프로도가 주먹을 꽉 쥔 채 “반지! 반지!/ 무거운 반지!”라고 노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하지만 그 비슷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키 차이는 간단히 해결됐다. 키 큰 배우와 작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신발 뒷굽을 이용하고, 호빗족들은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 장면이 많이 나오도록 설정했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은 톨킨의 원작을 충실하게 따른, 연기(煙氣)와 조명의 스펙터클이다. 작품은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수정됐다. 시간적 제약 때문에 가끔 줄거리가 튄다. 마치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활기 넘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와처스의 도움을 받아 각본과 노래 가사를 쓴 션 매케나는 부차적 줄거리의 어느 부분을 쳐내야 할지 고심했다. 힘든 일이었겠지만 매케나의 결정은 대체로 옳았다. 늙고 실성한 리어왕 같은 지배자 데네소르와 아들 파라미르의 이야기는 삭제됐다. 반면 눈부신 요정의 숲 로스로리엔의 장면은 영화에서보다 길게 이어진다. 그 이유는 나머지 장면들이 어쩔 수 없이 모두 어둡고 무섭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대단원에서 잭슨 감독이 잘라냈던 샤이어의 파괴와 재건 장면을 되살렸다. 어쩌면 이 모든 설명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이다. 유령 같은 흑기사들부터 무대의 절반을 채울 만큼 거대한 거미 괴물 셸롭까지 충격적인 이미지가 넘친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비치는 말하는 나무 인간 엔트족까지 뮤지컬에서는 매력적이다. 왠지 모르게 록밴드 지지 톱의 멤버들을 닮았는데도 말이다. 이 괴물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거대한 인형들을 이용했다. 이 작품은 가장 좋은 대목에서는 뮤지컬 ‘라이온 킹’을 연상시킨다. 다양한 기교를 동원한 쇼라는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맛을 한껏 살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들이 뮤지컬을 영화보다 낫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호빗족은 한동안 토론토의 무대 위에서 털이 북슬북슬한 발을 차올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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