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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무거워지는 미국 승용차

점점 무거워지는 미국 승용차

미국의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뭘까. 웬만큼 미국에 산 한국 교민이라면 대개 “일제 도요타 캠리 또는 혼다 어코드”라고 말한다. 이들 차를 몰아 봤다면 “5~6년을 써도 잔고장 하나 없이 조용하다”며 구입을 강력히 추천하곤 한다. 이들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적당한 가격에 고장 없고 되팔 때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차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반면 튼튼하고 빠른 차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안전성 면에선 스웨덴제 볼보나 독일 벤츠가, 그리고 속도 면에선 독일의 BMW나 미국산 스포츠카가 우수한 것으로 돼 있다. 미국 스포츠카 중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모델이 있다. 포드 ‘무스탕’과 지금은 단종된 폰티액 ‘파이어 버드’다. 우람한 근육질의 느낌과 함께 날렵한 외양으로 60~70년대부터 매니어들을 열광시켰다. 이 차들은 클래식 카로서 대접을 받으며 30~40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 이런 터라 가볍고 약한 이미지의 2005년형 캠리와 클래식 스포츠카의 상징인 75년형 파이어 버드의 속도를 비교해 보자면 미국인 중 십중팔구는 코웃음을 칠게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뉴욕 타임스는 “극히 평범한 차인 캠리가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75년형 파이어 버드를 능가하는 가속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간 자동차 회사들이 얼마나 속도를 높이는 데 골몰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라고 지적해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로 25년 전 자동차의 경우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4.4초였다. 그러던 게 이젠 9.9초로 줄었다. 이는 25년 전엔 최고급 스포츠카에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순간 가속 능력 향상과 함께 진행된 게 자동차의 대형화다. 80년대 초 1450㎏이었던 미국 승용차 평균 무게가 요즘엔 1860㎏으로 늘었다. 소비자들이 더 넓고 더 안전한 차를 선호함에 따라 일어난 현상이다. 반면 자동차 연비의 향상은 훨씬 더디게 진행돼 왔다. 미 자동차 회사들이 경제적인 차를 만드는 것보다 성능 좋은 차 생산에 치중했다는 의미다. 이 결과 과거 80년대 자동차의 크기와 가속 능력을 유지했더라면 지금 보다 휘발유 소비를 2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큼직하고 빠른 것만 좋아하다 보니 기름을 많이 먹는 비경제적인 승용차가 거리에 굴러다니게 된 것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요즘 미국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텍사스에서 석유회사를 운영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마저 “미국인들이 기름에 중독돼 있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 행정부는 지난달 29일 자동차 연비를 강화토록 한 관련 기준을 발표, 에너지 절약에 발벗고 나섰다. 2008년부터 4년간 생산되는 SUV·소형트럭 등의 최저 연비를 8.1%포인트 올린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기름값 인상 외에는 효과적인 에너지 절약 방안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 연비를 8.1%포인트 올려봐야 10년 안팎의 사용 기간에 25일어치의 기름 정도를 아끼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간 미국 정부가 대중교통을 제대로 개발하지 않은 점을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미 정부는 석유 값 인상이 가장 인기없는 정책 중 하나임을 잘 아는 터라 그간 저유가 정책을 고수, 결국 비경제적인 자동차 양산을 도운 셈이 됐다고 이들 전문가는 지적하고 있다. 위기를 느낀 부시는 지난 2월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긴 했다. 그러나 빠르고 큰 차만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습성이 바뀌지 않는 한 석유가 급속도로 고갈되면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기 전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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