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좋은 기업을 만들어서 성경이 옳다는 걸 증명할 생각”
“정말로 좋은 기업을 만들어서 성경이 옳다는 걸 증명할 생각”
까르푸를 최근 전격 인수한 박성수(53) 이랜드 그룹 회장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이유야 많지만 그중 하나가 언론에 얼굴이 알려지면 물건을 찾으러 시장에 다닐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박 회장은 젊은 상품기획자(merchandiser·MD)들과 함께 중국 등을 다니며 상품을 발굴한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중국 시장에서 괜찮은 티셔츠를 발견한 한 MD가 박 회장에게 이랜드에서 팔자고 했다. “그래, 얼마쯤에 팔면 되겠어요?” 박 회장이 물었다. 젊은 MD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8000원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매입가격이 4000원이고, 이익과 유통비 등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그 정도가 적당합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소비자로서 내가 보기에 5000원 정도면 사겠는데요. 그 가격에 한번 맞춰 봅시다.” 이랜드의 많은 제품은 이렇게 가격이 결정된다. 공급자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값을 정한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박 회장이다. 이랜드에서 생산하거나 파는 제품의 가격이 싼 것은 이 때문이다. 가격책정의 기준이 ‘원가와 마진’이 아니라 ‘소비자의 판단’이다. 이랜드의 경쟁력은 유통도 아니고 패션도 아니다. 저가(低價, 이를 이랜드에서는 가치가격이라고 한다)다. 이랜드의 제품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대비 가치다. ‘관리의 삼성’ ‘인화의 LG’ ‘도전의 현대’가 있다면 ‘저가의 이랜드’도 있다. 어머니에게 배운 ‘가치가격’ 이랜드와 박 회장은 왜 저가(가치가격)를 고수할까? 여기에는 박 회장의 어릴 때 인상깊은 경험이 있다. 한 신문 신앙 칼럼에 쓴 박 회장의 회고를 보자. “어머니는 중소기업을 운영한 비즈니스 우먼이었다. 주변에 경쟁자가 많았지만 품질이 한 수 위였던 어머니의 상품에 사람들이 몰렸다. 이유는 품질 좋은 어머니의 상품 가격이 경쟁자의 3분의 2밖에 안 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억울한 심정에 어머니에게 ‘왜 가격을 올려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들은 어머니의 대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내 비즈니스의 골격이 되고 있다. ‘얘야, 내게는 돈 버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내 것을 싸게 사서 이익을 보는 것이 더 보람있고 기쁘단다.’ 소박한 답변이었지만 현대 마케팅의 정답이 녹아있는 얘기였다.” 어릴 때 어머니의 성공비결인 ‘가치가격’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가 이랜드를 지금처럼 만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박 회장은 항상 “우리는 어떤 상인에게서 상품을 계속 사는가? 고객의 입장과 이익을 생각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단골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가 자주 얘기하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옛날 유명한 한식집이 종로와 명동에 있었다. 그런데 주방장이 주인에게 어떤 일로 혼난 다음 주인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냉면과 갈비탕에 고기를 듬뿍 넣었다. 그러니 손님들은 오히려 몰려들었고, 주인의 장사는 날로 번창했다. 그는 이 얘기를 직원들에게 농담삼아 얘기하곤 한다. 1980년 이화여대 앞에서 ‘잉글랜드’라는 옷가게를 처음 연 박 회장은 어머니의 경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보세가게에서 옷을 사다 팔면서 가게를 키운 박 회장은 84년부터 ‘잉글랜드’와 ‘브랜따노’ 등의 옷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언더우드’ ‘헌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중저가 캐주얼 시장에 새 장을 열었다. 그 후 여성복, 의류 할인점, 호텔업 등에 진출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뜻밖의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이랜드도 부도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그 무렵 미국계 투자 펀드인 워버그 핀커스가 이랜드에 투자하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회생한다. 지금도 박 회장은 그때 이랜드가 살 수 있었던 것은 투명경영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 제가 물었습니다. ‘왜 다른 좋은 기업도 많은데 이랜드에 투자하려고 합니까?’ 그랬더니 그쪽에서 ‘다른 기업은 실사에 들어가면 다 장부를 두 개씩 내놓는데 이랜드는 하나라 믿고 투자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98년 95권 책 읽고 지식경영 눈떠 투명경영 덕분에 살았지만 목숨만 연장한 셈이다. 재기하기 위해선 투명경영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왜 회사가 갑자기 부도까지 몰렸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부족한 경영지식 때문이라고 나왔다. 외자유치 뒤 그는 1년간 주요 경영서적을 100권 읽기로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매월 8권씩 읽었다. 외환위기라는 비상사태에서 시간이 날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노력했다. 그 결과 98년 말에 100권에 조금 미달한 95권을 읽었다. 그 후 그는 매년 10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실천한다. 박 회장의 궁극적 목표는 ‘세계 1위의 지식경영자가 되자’와 ‘세계 제일의 지식회사를 만들자’다. 특히 그가 당시 열심히 읽었던 것은 『미래기업』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21세기 지식경영』 등 피터 드러커의 책들이다. 박 회장은 성경 다음으로 피터 드러커의 책을 소중히 여긴다. 박 회장은 자신의 책 읽는 비결을 직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점심시간 한 시간 중 15분간 도시락을 먹고 45분간 책을 읽으면 1년에 무려 25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넉넉하게 잡고 한 권을 읽는 데 10시간 걸린다고 계산했을 때 기준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랜드가 급속도로 지식경영으로 돌아선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지식경영으로 제기한 박 회장은 2003년 다른 기업들이 자금 부족과 불투명한 경기 전망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데코’ 등 패션 브랜드 6개와 법정관리 중이던 뉴코아백화점을 인수한다. 2003년 이후 20여 개의 회사·브랜드를 인수하면서 확장을 거듭해 간다. 이때 쓴 돈은 공개된 것만 8000억원이 넘는다. 최근 까르푸 인수는 박 회장의 인수합병(M&A) 레이스에 꼭짓점을 찍었다. 하지만 박 회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사업은 일종의 선교다. 단순히 이랜드 그룹에 들어온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박 회장이 이랜드를 세계 최고의 기업,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려는 것도 바로 선교 때문이다. 이랜드가 좋은 기업이 됨으로써 성경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이랜드가 이처럼 강력한 기독교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젊은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옥한음 목사(사랑의 교회 원로 목사)를 만나 기독교 신앙에 몰두한다. 근육무력증이라는 난치병도 교회 장로인 한의사가 고쳐줬다. 그 전까지 유명하다는 병원에 다 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어두웠던 젊은 날은 기독교를 통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시 태어난 셈이다. “QT 통해 핵심 인력 육성” 이 때문에 박 회장의 사업 원칙 대부분은 성경에서 나온다. 그에게 성경은 단순한 책 이상이다. 전략은 성경에서, 전술은 각종 지식경영에서 나오는 셈이다. 박 회장은 이랜드의 사업 전략을 얘기할 때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성경 구절을 항상 강조한다. 이 구절은 이랜드의 ‘가치가격론’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M&A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도 선교와 연관이 있다. 경영컨설턴트인 김경준씨는 “박성수 회장이 순식간에 이랜드를 키워낸 비결 중 하나로 예수의 지도자 양성 방식”을 꼽았다. 박 회장은 지도자감을 선정한 뒤, 소위 정신을 동일하게 하는 과정에서 성경공부 방법인 QT(Quiet Time:경건의 시간)를 활용했다. QT는 예수가 제자들을 훈련시켰던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키워낸 분신들이 회사가 급성장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력들로 성장했다. 즉 성경을 통해 가치관을 공유하고, 공유된 가치관은 일사불란하게 추진되는 일종의 선교 방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경영용어로 풀이하면 ‘동기부여(motivation)’다. 다른 기업들은 각종 인센티브와 시스템으로 이를 추진하지만 박 회장은 기독교 방식의 QT를 이용하는 셈이다. 신앙에서 기반한 그의 경영철학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외부에서 볼 때 독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2001아울렛 노조나 뉴코아 노조 등과의 마찰은 그런 측면이 있다. 내면화를 통한 확신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다. 저가(가치가격), 투명경영, 지식경영, 기독교 신앙 등이 오늘날 박성수 회장의 성공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조금만 성공을 해도 고가제품, 고급 마케팅으로 방향을 돌리는 세태에 비춰보면 박 회장의 끈질긴 가치가격 전략은 더 눈에 띈다. ‘남을 대접하라’는 기독교 신앙이 가치가격 전략을 고수하게 하는 명제라면 지식경영은 그 명제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까르푸 인수로 26년 만에 본격적인 유통업인 할인점에 등장한 박성수 회장은 과연 여기서도 성공할까? 분명한 것은 박 회장은 싸게 파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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