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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M&A 실패하는 M&A

성공하는 M&A 실패하는 M&A

최근 대우건설·현대건설·LG카드 등 이른바 우량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인수·합병(M&A)을 성장 동력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미국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공세에서 비롯된 KT&G 경영권 공방으로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도 M&A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기업의 M&A는 자본주의의 미학이자 저주로 불린다. 기업이 물건처럼 사고팔리면서 인수한 기업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반면, 인수당한 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은 “인터넷 경제 시대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빠른 기업이 느린 기업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 M&A 시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잠시 한눈을 판 대가로 기업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는 대기업이 있는가 하면, 치밀한 계산과 준비로 골리앗을 삼킨 다윗들도 있다. 성공하는 M&A와 실패하는 M&A는 무엇이 다를까. 지난해 진로 인수전에서 M&A의 ‘초보’ 하이트맥주가 대기업을 누른 것이나, 벅스가 쓰러져 가는 로커스를 인수한 것도 우연이나 동정이 아니었다. 성공하는 M&A의 키워드와 함께 M&A의 명암(明暗)을 소개한다. <편집자>

알려 주고 싶지 않은 M&A 성공 비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기업 인수·합병(M&A))에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전략은 없다. M&A 베테랑인 두산이 진로 인수전에서 ‘초보’ 하이트맥주에 당한 것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 때문이었다.
지난해 진로 입찰에 참가한 10개 기업 중 외형이 가장 작은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차지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진로가 하이트맥주에 넘어갔을 당시,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두산은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두산은 진로를 인수하기 이전부터 이미 국내 M&A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켜 왔다. 두산은 지난해 초 대우종합기계 인수를 비롯해 과거 고려산업개발·한국중공업 등 국내 시장에 나온 굵직한 매물들을 거머쥐며 기업을 성장시켜 온 M&A의 베테랑이다. 그런 두산이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해 보이는 진로 인수전에서 밀린 것은 의외였다. 더구나 상대는 M&A에 처음 나선 ‘초보’ 하이트맥주였다. 진로 인수전에서 하이트맥주의 승리에는 치밀한 계산과 정보력이 깔려 있었다. 국내 M&A 시장은 대부분 부실기업 매각과 공기업 민영화 등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 결과 부실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기업 인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가치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 한 외국계 컨설팅사 관계자는 “인수전에 나서는 기업들이 대부분 컨설팅사를 끼고 ‘공식’에 따라 가치를 파악하기 때문에 부실기업에 대한 평가액은 거의 비슷하게 산출된다”며 “여기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α’를 책정하는데 이 금액에 따라 인수자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영업권 등 다양한 형태로 불리는 이 ‘+α’야말로 정보력에서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두산은 과거 인수전에서 파격적인 금액을 써내면서 경쟁자들을 따돌린 바 있다. 지난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면서 시가총액의 170%를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얹어 입찰해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진로 인수전에서는 근소한 금액 차이로 승부가 갈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력한 라이벌로 부각됐던 CJ와 롯데가 대형 입찰에 나서 본 경험이 없고, 재벌 기업이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산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당시 CJ와 롯데를 주요 상대로 보고 이들이 얼마나 써낼지에만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며 “하이트맥주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하이트맥주는 경쟁자들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었을까. 당시 하이트맥주는 진로 인수를 실현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컨소시엄을 맺었다. 산업은행은 두산이 과거 대우종합기계 등 대형 M&A에 뛰어들었을 때 두산의 파트너였다. 산업은행에는 두산의 ‘입찰 행태’를 아는 전문가들이 많았고, 두산으로서는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뛰어든 셈이다. 하이트맥주가 진로 인수에 착수한 것은 진로의 법정관리 개시 직후인 지난 2003년 10월쯤. “회사의 사활을 걸고 진로를 반드시 인수하라”는 박문덕 회장의 특명이 있은 후다. 그 후 1년 6개월 동안 하이트맥주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며 치밀한 인수작업을 진행해 왔다. 2004년 1월 재무·회계·자금조달 컨설팅을 위해 UBS증권과 산업은행을 파트너로 삼고, 6월부터는 법무법인 지평을 법률 자문회사로 지정했다. 이는 진로를 다른 회사에 뺏길 경우 하이트의 맥주 사업이 존망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용했다. 철저한 대비와 함께 하이트맥주가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보안 유지였다. 실제 인수전이 벌어질 때 언론들은 롯데·CJ·두산 등 3파전을 예상했다. 하이트맥주를 주목한 곳은 거의 없었다. 진로 인수전의 하이라이트는 하이트맥주의 응찰 가격이었다. 하이트맥주는 진로 입찰에 두산보다 20% 이상 높은 3조4,100억원을 써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우선협상자가 될 경우에는 우리가 상당히 불리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법원이 봤을 때 상당히 차이 나는 가격을 써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조원을 훌쩍 넘은 금액을 써내는 것은 당시로서도 무리수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번 하이트맥주의 판단력이 돋보였다. 하이트맥주는 진로 채권단이 회수할 총액을 3조500억~3조1,000억원으로 판단했다. 대개 입찰금액이 채권단 회수액보다 낮지만 이 경우처럼 차액이 생기면 피인수 기업으로 다시 유입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위기에 처한 기업을 주목해라 무너져 버린 벤처의 신화 로커스를 인수한 국내 최대 음악 사이트 벅스를 두고 언론에서는 “벅스가 로커스를 살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을 사고파는 살벌한 M&A 시장에 과연 그런 온정이 남아 있을까. 벅스가 로커스에 ‘구원의 손’을 내민 건 지난 1월 말이었다. 당시 로커스의 김형순 사장이 분식회계 사실을 고백하고서 세 달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로커스는 지난해 반기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기업어음 390억원어치를 단기 금융상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했다. 이 외에 양도성예금증서(CD) 140억원어치도 단기 금융상품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회계장부에는 갖고 있는 것처럼 조작한 과다계상이었다.

▶올해 초 하이트 맥주와 진로의 임직원들이 함께한 단합 행사.

분식회계로 인해 어긋난 현금 530억원을 빼면 로커스의 회계장부는 ‘마이너스 통장’이 된다. 수정된 재무제표상 로커스의 반기 말 기준 자본총계는 512억원에서 마이너스 17억8,600만원으로 바뀌었다. 이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코스닥 퇴출 사유다. 로커스는 2005년 사업보고서 제출기한까지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로커스를 팔려고 20여 개 업체와 접촉했지만 돌아온 것은 “망한 회사가 뭘 가리냐”는 비아냥이었다. 때마침 벅스가 우회상장할 회사를 찾고 있었고 이들의 만남은 절묘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벅스가 로커스를 실사한 결과, 100억원가량의 잠재 부채가 더 있었다. 부채와 자본을 모두 상계해 보니 마이너스 120억원에 달했다. 벅스로서는 인수하고 빚 갚는 데만 120억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로커스의 2004년 매출은 13억원. 지난해 6월까지는 2억9,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비슷한 기간 분식회계가 드러난 터보테크는 공장이라도 정상화되고 있었지만 로커스는 생산기반조차 없다. 그런데 벅스는 우회상장 하나만을 보고 텅 빈 곳간에 120억원을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로커스 쪽에서는 대환영이었다. 보통 부실기업 M&A에서 주주들과 채권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만하지만 이번만큼은 일치했다. 상장을 유지하는 것이 주주나 채권단에게 모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커스라는 회사에는 팔 만한 부동산도 별로 없고, 주력 사업도 없다. 자본금은 12억9,000만원에 불과하다. 로커스 관계자는 “인티큐브와 분리되면서 로커스에는 쓰레기만 남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벅스 입장에서는 이게 호재였다. 노조와 주력 사업체가 없다는 것은 벅스로서는 따로 구조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로커스는 10월부터 거래정지 종목으로 주당 6,500원(액면가 500원)에 묶여 있었다. 벅스가 M&A를 발표해도 주가가 오를 수 없어 인수 가격이 출렁일 부담이 없다. 벅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합병 후다. 로커스와 벅스가 합병하면 주식 맞교환 비율은 로커스 대 벅스가 1대 3.5가 된다. 벅스의 주주들은 합병 회사의 92% 지분율을 갖게 되고, 로커스의 주주들은 8%만을 갖게 된다. 코스닥 관계자는 “상장한 후 대주주가 90%대의 지분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라며 “보통 기업공개(IPO)에서 20%의 지분을 공매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30% 이상의 주식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분율이 90% 이상 된다면 70% 지분에 비해 유상증자를 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벅스와 로커스 합병은 절묘하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M&A”라고 설명했다.

M&A 성공 키워드 10 ·상대를 빨리 파악하라 ·내부 보안을 유지하라 ·전문가를 끌어들여라 ·치밀하게 계산하라 ·기업의 미래가치에 주목하라 ·위기에 빠진 회사를 찾아라 ·백기사를 믿지 말라 ·내부 갈등을 피하라 ·분명한 목적을 가져라 ·인정에 얽매이지 말라
지난 2월 말 감사기관이 로커스의 감사보고서에 ‘의견 거절’ 평가를 내 합병이 무산될 뻔했다. 하지만 로커스의 소액주주들과 채권단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벅스의 박상훈 사장도 앞으로 유상증자에 필요한 대금 전액(150억원)을 예치해 결국 감사기관의 평가도 ‘적정’으로 고쳐졌다. 3월 28일에는 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해 상장폐지의 사유가 되는 ‘자본 전액잠식 상태’도 해결했다. 벅스가 150억원이 넘는 값비싼 ‘상장 프리미엄’을 줘서라도 급하게 인수를 밀어붙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기업 인수의 천재로 불린 샌퍼드 웨일 전 시티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개를 살 때도, 병든 개의 주인이 되는 것은 경쟁자가 적고 사는 데 드는 비용도 그만큼 적게 든다. 그 회사가 처한 상황을 면밀히 연구하고 기업 합병의 기본 원칙만 이해하고 있다면 번창하고 있는 회사보다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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