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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먹히는 기업 하루 2개꼴

먹고 먹히는 기업 하루 2개꼴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생존의 법칙이 난무하다. 바로 인수합병(M&A) 이야기다. 론스타에서 다시 국민은행으로 바뀔 외환은행이나 SCB로 주인이 또 바뀐 제일은행 등은 겉으로 살짝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물밑으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M&A가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M&A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M&A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M&A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 것일까. M&A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편집자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이뤄진 M&A는 무려 658건에 달했다. 휴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두 건 이상의 M&A가 성사됐다. 자고 일어나면 두 개 이상의 회사가 간판을 새로 달거나 흔적없이 사라진 셈이다. 올해만 해도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대한통운, LG카드 등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굵직굵직한 회사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LG카드와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등은 인수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SK를 공격한 소버린이나 KT&G에 공개매수 의사를 밝힌 칼 아이칸 등으로 인해 적대적 M&A에 대한 위협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사실 국내에 M&A란 개념이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M&A는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다. 몇몇 기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다른 기업의 손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어쩌다 일어나는 일회성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국내에 ‘M&A 광풍’을 몰고 온 것은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기업이 부실화됐고 그 과정에서 금융권까지 동반 부실해졌다. 이로 인해 M&A 시장에는 말 그대로 기업과 은행을 비롯한 ‘먹잇감’이 넘쳐났다. M&A란 원래 기업의 내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다른 기업의 자산을 이용해 성장을 꾀하는 경영기법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싶은데 현재 자신의 기업이 가진 내부자원이나 영업환경으로는 규모를 확장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또 다른 성장전략의 하나로 외부자원, 즉 다른 기업의 자산을 이용해 성장을 도모하게 된다. 물론 급속한 시장환경의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M&A가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19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M&A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렇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아이디어 하나로 쉽게 자본을 조달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떼돈’을 벌 수 있는 인터넷·IT·벤처 등이 등장하면서 시들해졌다. 국제적으로도 M&A 시장은 2000년 3조4000억 달러 규모를 정점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M&A가 다시 화두로 등장한 것은 2003년 이후부터다. 인터넷을 비롯한 IT 버블이 꺼지면서 실체 없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회의론이 번졌기 때문이다. 국제 M&A 시장은 2003년(1조3000억 달러 규모)을 기점으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2조 달러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국제 M&A 시장은 90년대와는 양상이 자못 다르다. 게걸스럽게 사들여 덩치를 키우는 대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면서 실체적 접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M&A 접근 방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국내 M&A 시장은 국제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간 2000년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이 M&A 시장에 본격적인 매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의 경우 국내에서는 703건의 M&A가 일어나 건수면으로는 2000~2005년 사이를 통틀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액면에서도 30조7000억원에 달해 최근 6년 동안 평균치(18조1000억원)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거래가 이뤄졌다.


외환위기라는 인위적인 변수가 작용하기는 했지만 M&A의 방식면에서는 최근 국제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업 가치 향상’이라는 단계보다 한 단계 낮은 무차별식 M&A가 이뤄졌다. 더군다나 외환위기 직후 M&A 시장에 나왔던 매물은 대부분 부실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외자 유치라는 명분 아래 외국 자본에 헐값에 넘어갔다. 부실채권 정리 차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팔고 보자’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쟁 등은 ‘성급히 치른 초야’와 같이 기업구조조정을 서두른 데 따른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 대형 M&A 매물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기업 정상화에 따른 ‘단물’ 역시 고스란히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국내 대형 M&A 거래 역시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독식했다. 이 같은 추세는 지금까지도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국내 대형 M&A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2005년 상반기 기준 국내 M&A 주관사 순위를 살펴보면 UBS은행이 65억8500만 달러의 실적을 기록해 1위에 올랐다. 국내 회사로는 삼성증권이 4억2800만 달러를 기록해 9위에 겨우 올랐다. 하지만 1위를 차지한 UBS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2005년 이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국내 M&A 시장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급매물이 상대적으로 줄었고 M&A 시장에 나오는 매물의 질도 달라졌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워크아웃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경영환경이 호전된 기업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국내 자본들이 M&A 시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후 현금 확보에 급급했던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M&A 시장에 나오는 기업들이 가진 가치다. 즉 누가 어떤 기업을 인수하느냐에 따라 재계와 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M&A를 뛰어 넘어 생존 문제로까지 치닫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두산이 다소 무리한 가격으로 진로를 인수한 것은 시너지 효과도 있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 넘겨줄 경우 자칫하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절박함도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M&A 시장이 어느 정도 부실기업들이 소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달아오르고 있는 이유를 크게 다섯 가지로 진단하고 있다. 첫째,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현금 보유의 필요성을 절감한 기업들이 내부유보를 늘린 점이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가 늘어났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할 자금 여력이 풍부해졌다고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들의 지난해 내부유보율은 559.3%에 달했다. 2004년의 474.1%보다 1년 사이 85.2%포인트나 증가한 것. 둘째,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의 M&A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M&A 기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최근 이랜드가 한국까르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메자닌(mezzanine)’ 기법까지 들고 나온 것만 봐도 그만큼 다양한 M&A 기법들이 국내에 도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랜드가 시도하고 있는 메자닌 방식은 주식을 통한 자금 조달이나 대출이 어려울 때 배당우선주,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권, 전환사채(CB) 등 주식 관련 권리를 받는 대신, 무담보로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이다. 메자닌 방식으로 들어온 돈은 채권 변제 순위에서 대출보다는 밀리고, 지분 투자분보다는 앞선다. 일종의 후순위채로, 중간에 끼여 있는 셈(메자닌은 이탈리아어로, 복층 주택의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중간 방을 말한다). 셋째는 사모투자펀드(PEF)와 각종 공제회 등이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각 금융회사에서 PEF를 가동하고 있고 군인공제회 등도 적극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 역시 PEF 활성화 방안을 잇따라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사모펀드 시장 육성을 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M&A 시장에 나오는 매물들이 어느 정도 기업 정상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위험은 작은 반면 투자수익면에서 기존 다른 금융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후 M&A 시장에 출회된 매물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면 최근 시장에 나오는 매물들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대박’을 노릴 수 있다. 최근 국내 M&A 시장이 활성화됐다고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M&A 시장에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M&A 시장이 활발히 돌아가고 있는 것과 반대로 중소 M&A 시장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코스닥 퇴출 요건이 강화되면서 부실화된 코스닥 기업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인수 대상으로서 매력을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코스닥 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자금난과 영업 부진으로 경영권 매각을 고려했던 기업들이 속속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매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중소 M&A 시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M&A 주관사 관계자는 “국내 M&A 시장에 마지막 큰 장이 열렸다는 초조함이 서둘러 한 개 기업이라도 더 인수해야겠다는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하지만 돈이 될 만한 매물은 물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인수전이 치열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적대적 M&A에 노출된 회사들
1. 현대그룹(현대상선) : 현대중공업+범 현대그룹 현대 공격 중 2. 대한해운 : 골라LNG 등 외국계 지분 높아 3. 대신증권 : 최대 주주 지분율 8.09%에 불과 4. 남양유업 : 최대 주주 지분율(29.42%) 높지 않고 현금성 자산 과다 보유 5. 한진해운 : 한진그룹 내분으로 공략 대상 6. 서울증권 : 현재 적대적 M&A 공방전 진행 중 7. 삼성물산 : 사실상 삼성그룹 지주회사로 성공시 막대한 이득 8. 포스코 : 민영화 과정에서 지분이 분산돼 있고 자산가치 높아


이런 기업 적대적 M&A 조심하라
1.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 ⇒ 적대 세력이 낮은 비용으로도 공략할 수 있다 2. 자산가치(현금, 부동산 등)가 높은 기업 ⇒ 성공하면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 3. 주가에 대해 주주들의 불만이 많은 기업 ⇒ 적대적 세력의 세 늘리기가 용이하다 4. 기업 내분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기업 ⇒ 적대적 M&A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쉽다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기업 M&A와 대응방안

국내 자본 결집할 수 있도록 해줘야
사모펀드 활성화가 해법이지만 엉뚱하게 규제가 많아 부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시장을 대외에 개방하면서 외국계 자본은 국내 대형 M&A 매물을 독식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 국내 자본이 위축돼 투자 여력이 없었고 M&A 기법 등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998∼2004년 7년간 신고된 M&A 자료를 분석한 결과, 외국계 자본이 국내 기업을 M&A한 경우는 834건으로 전체(3706건)의 22.5%에 달했다. 금액도 36조8000억원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통해 우량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알짜 회사들을 고스란히 외국계 자본에 빼앗긴 꼴이다. 국내 기업을 M&A한 외국계 자본은 투자자금 회수기법으로 고배당 및 유상감자를 통해 기업의 여유자금을 빨아들인 뒤 다시 고가에 재매각해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로 인한 국부 유출 시비로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실제로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 지분 51%를 재매각해 5년 만에 1조15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골드먼삭스·JP모건·모건스탠리 등은 진로 M&A 작업으로 1조원대의 차익을 챙겼다. 또 론스타는 외환은행 재매각을 통해 2년6개월 만에 투자금의 3배에 해당하는 4조원 이상의 차액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더구나 이들 외국계 자본은 조세회피지역에 본사(페이퍼 컴퍼니)를 둬 한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다. 이런 외국계 자본이 국내 기업 M&A를 통해 고수익을 침탈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근원적인 조치는 무엇일까. 사회 및 경제 여러 계층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뜬구름 잡듯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 진입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자는 주장, 실정법을 만들어 규제하자는 주장, 출자총액제를 풀어 외국계 자본에 맞서자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즉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자본의 유출입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 실정법을 통한 규제는 또 다른 보복성 규제를 낳을 수 있다. 재계에서 주장하는 출총제 해제는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보인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 기업의 M&A를 통해 세금을 내지 않고 고수익을 거둬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응책은 뭘까. 결국 외국계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국내 세력을 조성해야 가능하다. 국내 자본이 결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자동으로 해결될 수 있다. 즉 국내 지하경제를 포함해 국내의 모든 자본이 양성화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능히 외국계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2004년 12월부터 국내에 선보인 사모투자펀드(PEF)의 활성화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PEF 제도는 사회단체 등의 공청회를 거치면서 각종 규제가 수없이 붙은 이상한 형태로 태동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PEF 제도를 다시 손질해 외국계 자본에 실질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구축해야 한다. 더 이상 외국계 자본이 국내 시장에서 고수익을 올렸다고 배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진 김영진M&A연구소장·mna21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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