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장의 얼굴이 바뀐다
명품 시장의 얼굴이 바뀐다
로레알은 지난 2월 파리에서 호화 만찬을 열었다. 연례 결산보고서 발표를 앞둔 바로 전날 밤이었다. 손님들은 샴페인을 마시고 카나페(얇은 빵에 알이나 햄 따위를 얹은 전채)를 먹으며 어울렸다. 언뜻 보면 파리에서 열리는 통상적인 호화행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손님들은 불어 외에도 영어·독일어·중국어로 떠들었다. 한 중역은 먼저 중국어 명함이 아닌 불어 명함인지 확인한 뒤에야 명함을 내줬다. 가장 주목할 점은 손님들의 화제에 오르는 소비자가 주름살을 걱정하는 멋쟁이 유럽 아가씨가 아니라 좀 더 하얀 피부를 갈망하는 중국 여인과 발리우드 스타일의 밝은 아이섀도를 찾는 인도 여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로레알 아시아 법인의 티에리 프레보 사장은 로레알이 자랑하는 “젖은 립스틱” 룩은 첫 발상지인 아시아를 거쳐 지난 시즌 유럽과 미국에 상륙했다고 강조했다. 짓궂게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시아 여성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소비자다.” 상하이·뭄바이·모스크바가 파리·런던·뉴욕과 함께 세계 명품 스타일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최신 프라다 쇼가 열리고, 아르마니 매장과 벤틀리 판매 대리점이 들어설 뿐 아니라 세계의 기호를 선도한다. 지난 4월 뭄바이의 라크메 패션주간에는 런던의 브라운 백화점과 뉴욕의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 관계자들이 참석해 열심히 지켜봤다. 그들은 이미 아부 자니와 산디프 코슬라 같은 혁신적인 인도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취급한다. 서구에서 여성의 미모 기준을 주관하는 업계 인사들은 이제 뚜렷하게 이국적인 모델을 선호한다. ‘게이샤의 추억’에 출연한 중국 배우 장쯔이, 인도 발리우드 스타 아이슈와리아 라이, 러시아 수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최근 영국의 품격지 하퍼스&퀸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여성” 명단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세 사람 모두 로레알이나 캘빈 클라인 같은 기업들의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에 등장한다. 인기 좋은 모토로라의 새 휴대전화 ‘라즈르’(아시아·미국·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의 광고는 원래 중국 시장을 노리고 만들었다. “이제는 어떤 제품이 모든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구상이 잘됐다고 하기 어렵다”고 카르티에 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 베르나르 포르나는 말했다. “미(美)에는 국경이 없다.” 그 말은 곧 선진국들의 명품 독점시대가 끝나간다는 소리인가? 이미 세계 제3위의 명품 소비대국인 중국은 2014년까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명품 소비국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14년 중국 부자들이 세계 명품 판매량의 약 4분의 1을 소화하리라 예상한다. 2010년이면 명품을 구입할 능력이 되는 중국인이 2500만 명에 이르러 현재의 17배가 된다고 세계적인 회계법인 언스트&영의 분석가들은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인구의 절반이 25세 이하인 인도가 중국보다 고작 5년 정도 뒤졌다고 추산했다. 이미 중국에는 30만 명의 백만장자가 있고, 러시아는 8만8000명이며 인도는 7만 명이다. 당장 명품을 살 능력이 되는 중국·러시아·인도 소비자는 통틀어 1500만 명이라고 메릴 린치의 분석가 앤투완 콜로나는 말했다. 이들은 또 그럴 능력이 되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에 비해 명품 구매욕구가 더욱 강하다. 풍족하고 교육수준 높은 중국 젊은이들이 한 달 월급을 털어 구치 허리띠나 루이뷔통 핸드백을 사는 일은 흔하다. 러시아인들은 가구당 예산의 13%를 옷과 신발 구입비로 쓴다. 일본이나 영국인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중국에서는 각종 명품 매장이 끝도 없이 문을 연다. 마치 거리가 백금으로 포장된 듯하다. 조르조 아르마니는 2008년 말까지 30개의 매장을 새로 낼 계획이다. 루이뷔통은 내년 13개 매장을 열 생각이다. 불가리는 올해에만 여섯 개를 계획했다. 돌체&가바나는 올해 말 처음으로 상하이와 베이징에 진출한다. 몽블랑은 2010년까지 중국 전역에 200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벤틀리는 지난해 베이징에서 120만 달러짜리 뮬리너 리무진을 다른 나라 어느 도시보다 더 많이 팔았다. 카르티에는 2012년이면 전체 영업수익의 10%가 중국에서 나오리라 예상한다. 카르티에는 이제 우크라이나·그루지야·카자흐스탄 등의 다른 개도국 시장으로 발을 넓혔다. 중국의 거리가 백금이라면 인도의 거리는 황금이다. 현재 인도에는 명품 쇼핑몰이나 명품 전문상가가 없지만 많은 업체가 2007년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버버리·크리스티앙 디오르·구치·카르티에·샤넬·오메가·후고보스·루이뷔통·베르사체 등등. 인도의 고급차 시장은 100%에 가까운 수입관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 동안 세 배 늘었다(그래봤자 연간 2000대에 불과하지만). 컨설팅 전문사 매킨지&컴퍼니는 인도의 보석 브랜드 시장이 2010년까지 해마다 40%씩 성장해 2010년에는 20억 달러가 넘는다고 내다봤다. 인도인들의 고급 황금 장신구 사랑 때문에 지난 4월에는 국제 금값이 25년 만에 기록적으로 온스당 600달러에 이르렀다. 개도국의 진짜 부자들은 선진국의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번지르르한 과시를 피하고 맞춤 의상과 현대미술을 선호한다. 그럼으로써 브랜드를 구입하는 일반 대중과의 차별성을 유지한다. 다시 말해 최상층의 명품 스타일은 진정으로 국제적인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정해진다. 이들은 또 자기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실제로 패션과 음식에서 실내 디자인과 사치에 이르기까지 국제풍의 감각은 고품격 사회에서 반드시 요구된다. 자신이 얼마나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지를 보여주는 물품을 착용하는 행위가 현대인의 신분을 말하는 궁극의 상징이다. 최신 유행을 좇는 상하이의 멋쟁이들은 같은 버버리 제품이라도 본가인 런던의 본드 거리에서만 파는 재킷을 상하이에서 팔리는 재킷보다 소중히 여긴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엘리트들은 세계 도처의 틈새 디자이너들이 만든 소위 정통 제품을 탐낸다. 영국의 해리 왕세손은 지난해 21회 생일을 맞아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와 공식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 아프리카에서 구입한 가죽 팔찌를 착용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문구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게 돼간다”고 마케팅 연구 전문기업 밀워드 브라운 옵티모의 분석가 몰트 넌은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세계 100대 브랜드를 선정한 새 보고서를 공동 발표했다. 이제는 각국의 문화가 서로 뒤엉켜 자신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명품 섬유업체 조스 그레이엄은 런던의 백만장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인 벨그라비아의 한복판에서 라자스탄·인도·아프가니스탄·티베트에서 들여온 수직(手織) 융단을 수천 파운드에 판매한다. 잘나가는 고급 실내 디자인 체인점들은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은 장식품을 취급한다. 메종드파미유는 중국의 우물 두레박을, 랠프 로렌은 명나라 때의 화병 램프를 판다. 요식업자 앨런 여는 런던에서 중식당 하카산을 열어 중국집으로는 최초로 미슐랭의 별표를 받았다. 그가 새로 열어 미슐랭 별표를 받은 찻집 여앳차의 직원들은 영화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은 디자이너가 만든 제복을 입는다. 그리고 파리에서 온 주방장 스테판 쉬체타가 크리스티앙 리에그르가 설계한 미니멀리즘적 테이블 위에 프랑스-중국 퓨전 패스트리를 내놓는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의 청삼(長衫)이 상하이탕에서 만든 청삼보다 더 낫다”고 여는 말했다. “중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중국적인 것을 맡겨 중국인들이 놓치는 신선미를 개발한다.” 결국 지구촌 곳곳의 영향을 통합한 단일한 명품 미학이 수립된다는 이 의미는 무엇일까. 한 브랜드의 민족성은 더 이상 그 소유주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제품이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누가 구입하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까. 그보다는 취향의 문제다. 홍콩에서 스위스 재벌 리치몬트는 10년 전 중국 최초의 명품 브랜드인 상하이탕을 사들였다. 로레알은 최근 중국의 유일한 화장품 명품 브랜드 웨싸이(羽西)를 인수했다. 이런 돈 잔치는 신속히 왕복 도로로 바뀌어간다. 지난 5년 동안 중국 기업들은 유럽 브랜드 애스프리·멀버리·랑뱅을 인수했다. 런던에서 열린 가장 최근의 명품업자 총회에서 프라다의 최고경영자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종국에는 이탈리아 브랜드의 일부 생산을 외주로 돌려 의상의 상표를 ‘메이드 인 이탈리아’에서 ‘메이드 바이 프라다’로 바꿀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명품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브랜드가 곧 새 나라다. 사리에서 이브닝드레스까지, 또 샴페인에서 정종까지 민족성을 구별 짓던 전통적 상품들을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어디서나 살 수 있다.
With QUINDLEN KROVATIN in Beijing 최한림 parasol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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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의 천국 여성들이 원하는 핸드백을 알아본다. ■ 에르메스: 주문 후 2년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때문에 버킨백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최저가 3500파운드, hermes.com). ■ 루이뷔통: 동양인 중산층은 스피디 시티백을 좋아한다(650파운드, louisvuitton.com). ■ 펜디: 러시아 여성들은 B 펜디 악어백을 특히 좋아한다(1만1300파운드, 해로즈 백화점에서만 판매. www.harrods.com). 황금빛 화장품 희귀하고 이국적인 새 성분 덕분에 피부가 늙어보이지 않는다. ■ SK-II: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에는 청주에서 추출한 피테라 성분이 들었다. 청주 양조장에서 일하는 노인 근로자들의 손이 특이하게 젊은 피부라는 데 착안해 발견했다(150㎖에 75파운드. ‘sk2. com’). ■ 시세이도: 퓨처 솔류션 아이와 립 콘투어 크림은 키위 잎 추출물 같은 한약재를 사용해 콜라겐 형성을 촉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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