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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의 골프이야기] 네루 총리 애틋한 사연에 골프 취소

[JP의 골프이야기] 네루 총리 애틋한 사연에 골프 취소

JP는 해외여행을 할 때 웬만하면 시간을 꼭 내서 현지에서 골프를 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골프를 치지 않은 예외적인 일이 몇 번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 한 번이 스위스를 여행할 때였다. JP는 스위스에서 인도 네루 총리가 한때 요양했던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네루는 영국에 맞서 투쟁(독립운동)하다가 1921년 체포된 이래, 45년까지 8차례(9년간)나 감옥 생활을 했다. 그는 36년 초 아내인 카말라 네루가 중병에 걸리자 가석방돼 스위스 몬타나로 요양을 갔다. 그러나 네루는 스위스에서도 병든 아내를 돌보지 않고 유럽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네루가 독일에서 바삐 보내고 있을 때 아내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JP의 말이다. “네루는 급히 돌아와 죽은 아내의 손을 잡고 후회했다고 해요. 내가 고통스러울 때 어루만져 주던 그 따뜻한 손이 왜 이렇게 굳어 있느냐. 이제 어느 손이 나를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은 아직 ‘입구’에도 못 왔는데 … 제발 일어나요. 이렇게 네루는 통곡했다고 해요.” JP는 네루가 요양했던 스위스 집이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제헌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건물도 보존돼 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역사적인 건물을 보존하지 않았다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JP는 네루 부인이 요양했던 역사적인 스위스 집을 방문한 뒤 마음이 숙연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날 골프를 치기로 했었지만 이를 취소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가 이같이 네루의 에피소드를 자세히 설명한 이유가 뭘까. 그 자신도 젊어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네루와 비슷하게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5·16혁명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저녁 나는 죽어요. 자고로 유복자는 아들이라고 해요. 당신이 내 아들을 낳아서 잘 키워 주구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아비는 허투루 죽지 않았다고 꼭 설명을 해 주세요.” JP가 5·16혁명 거사를 위해 집합 장소로 떠나기 직전인 1961년 5월 15일 저녁. 아내인 박영옥(76·박정희 대통령 조카) 여사에게 이 같은 말을 남겼었다고 한다. 박 여사는 큰딸인 김예리 회장을 낳은 지 10년이 지나 겨우 임신했었다고 한다. 당시는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 되던 때였다. 박 여사는 거사에 관한 남편의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 울지도, 대답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었다고 JP는 술회했다. 당시 JP의 집은 숙명여대 앞이었다. 그는 숙대 언덕을 한참 내려오다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박 여사는 그때까지도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5·16혁명이 성공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 송요찬 장군(내각 수반)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였다. JP는 인편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속담에 남자가 첫아이를 낳을 때 못 보면 둘째아이도 못 본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속담이 맞더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큰딸인 김예리 회장도 자신이 미국에 있을 때 태어났다고 한다. JP는 아내인 박 여사가 평생 내조를 잘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내는 숙명여대 출신이에요. 평생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안일 챙기면서 나를 잘 도와줬어요.” JP는 올해로 81세다. 그는 젊어서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 JP는 스위스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아내와의 추억 때문이었다. “스위스를 방문했을 때 집사람과 함께 갔었어요. 그런데 스위스와 접경 지역인 프랑스에 듀본이라는 카지노가 있는 곳이 있죠. 그래서 밤에 남자들끼리만 듀본에 가기로 했죠. 아내들은 스위스 대사 부인에게 맡기고 출발했어요. 일행 중에는 프랑스 세관을 쉽게 통과하는 법을 알고 있었죠. “봉수아 무슈장(안녕하십니까. 기관장 나리).” 국경을 넘을 때 프랑스어로 이 말을 하면 무사통과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우리 일행이 이 말을 꺼내자 그냥 통과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잠시 뒤 다른 차가 우리를 뒤쫓아 왔어요. 알고 보니 스위스에 남겨두고 왔던 부인들이 바로 뒤쫓아 온 거예요. 어떻게 국경을 넘어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부인들은 국경 세관원들이 묻자 저 앞차 사람들이 우리 남편들이라고 하니까 “우이”하고 가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어요. 여성들은 아주 더 쉽게 국경을 통과한 거죠.” JP는 가수인 패티김 이야기도 꺼냈다. 패티김은 1964년에 미국에서 처음 조우했다고 한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잔여임기를 끝낸 후 존슨이 정식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였어요. 컨벤션을 애틀랜틱시티에서 개최했는데 거기 초대돼 갔었어요. 당시 미국의 유명 가수인 에디 피셔가 축하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 에디 피셔는 아내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리처드 버튼과 놀아나서 매우 슬펐을 때였을 겁니다. 그런데 에디 피셔가 노래를 마친 뒤 ‘한국에서 VIP 한 분이 오셨는데, 아마도 그분이 좋아하실 가희를 한 명 소개해 드리겠다’고 하는 겁니다. 바로 패티김을 두고 하는 말이었어요. 그때 나는 패티김을 처음 봤어요. 패티김은 그 자리에서 가창력이 뛰어난 세계적인 가수로 박수갈채를 받았어요. ” JP는 미국에서 이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길옥윤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바로 패티김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패티김도 나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흔쾌히 주례를 봤지요. 내가 길옥윤-패티김 커플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내 지론을 말했죠. 원래 결혼이란 다섯 가지 뜻이 맞아야 하는 인륜지대사예요. ‘천지신명의 뜻, 양가 부모의 뜻, 양가 조상의 뜻, 중생의 뜻, 본인들의 뜻’ 이 다섯 가지를 어길 수 없는 뜻이 모아져야 결혼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에는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에 말했어요. ‘두 사람 백년해로를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 여기서 그만두세요’. 그래서 두 사람은 하객들 앞에서 맹세했어요. 이들이 결혼한 지 3년 뒤. 어느 날 패티김이 울면서 나를 찾아왔어요. 이혼하겠다고요. 인천에 올림푸스 호텔이라고 있어요. 외국 선원들이 와서 카지노를 많이 이용하던 곳이죠. 길옥윤이 그곳에서 수염도 깎지 않은 채 밤낮으로 카지노에 빠져있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패티김을 설득했죠. 이혼이란 그렇게 쉽지도, 가벼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길옥윤을 나한테 데려오라고 했어요. 두 사람을 앉혀 놓고 길옥윤에게 물었죠. 앞으로도 카지노에 미쳐서 계속 가정을 내팽개칠 것이냐고요. 그랬더니 앞으로는 좋은 가정을 만들고 잘해보겠다고 대답하더라고요. 길옥윤도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럼 됐다’. 이렇게 내 설득으로 둘은 사이좋게 돌아갔어요. 그런데 다음해에 패티김이 다시 우리집을 찾아왔어요. 딸을 안고 와서 “그 ×하고는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우는 거예요. 결국 둘은 헤어졌어요. 그 후 길옥윤씨는 세상을 떠났고 패티김은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어서 마음이 좀 놓입니다. 남녀관계에 비하면 골프는 좀 쉬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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