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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두 얼굴

대한민국의 두 얼굴

로만손시계의 해외사업부 김태환(42) 부장은 해외통이다. 1990년 이 회사에 입사한 이래 15년 동안 오로지 해외시장 개척에 매달렸다. 토종 브랜드인 로만손시계를 들고 30여 개국을 누볐다. 88년 창업한 이 회사의 제품은 70개국에 상표가 등록됐을 만큼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커팅 글래스(Cutting Glass·시계 유리면을 각지게 깎는 기법)’ 시계로 전 세계 애호가들을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만손시계는 유독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춘다. “통계수치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지역 수출은 미미하다”고 김 부장은 말했다. 이유는 간명하다. 미국에서는 로만손의 ‘Cutting Glass’ 기술이 소송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사파이어를 깎는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업체가 특허권 침해 소송을 냈다. 그 바람에 시장 진입단계에서 벽에 부닥쳤고 지금도 고전 중이다. 하지만 특허분쟁 없는 유럽에서도 실적이 영 시원찮다. 단지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불이익이 많기 때문이라고 김 부장은 말했다. “로만손시계보다 기능 면에서 한 수 아래의 시계도 스위스 제품이라면 더 높은 가격에 잘 팔린다. 첨단 시계기술의 본산인 유럽의 최고급 제품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우리 제품이 조금 부족하다. 그러나 브랜드 성능이나 디자인이 실제보다 저평가될 때는 무척 억울하다. ” 그래서 로만손의 해외 대리점들은 아예 로만손을 스위스 제품으로 소개한다. 로만손시계에 들어가는 주요 기계 부품, 즉 무브먼트는 수입품이 많다. 시계 부품을 생산하는 나라로는 크게 스위스·일본, 그리고 중국이 있다. 고가 제품에는 스위스, 중가 제품에는 일본, 그리고 저가의 제품에는 중국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 무브먼트를 사용하면 ‘Japan Quartz’, 스위스 무브먼트를 사용하면 ‘Swiss Quartz’라고 표기한다. 로만손은 스위스 부품을 가져다 쓰므로 제품에 ‘Swiss Quartz’라고 표시해도 된다. 해외 대리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로만손을 아예 스위스 제품이라고 홍보한다고 한다. 한국 브랜드라고 하면 반응이 시원찮기 때문이라고 김 부장은 말했다. “한국의 브랜드 파워가 강하다면 판매상들이 굳이 스위스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은 그런 단계에까지 올라서질 못했다. ” 여성패션의류 전문기업 (주)오브제의 강진영 사장은 업계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그가 내놓은 ‘Y& Kei’ 브랜드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얼’에 입점해 있다. 2001년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하려고 뉴욕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귀네스 팰트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외국 유명스타들이 자주 찾으면서 ‘Y& Kei’는 최근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뉴욕에서 해마다 컬렉션 쇼를 여는 등 미국 주류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Y& Kei’는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숱한 역경을 겪어야 했다. 한국에서 메이저 브랜드로 군림하던 오브제가 미국에 상륙했을 때는 초대받지 않은 변방의 브랜드나 다름없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한국 패션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장차 미국이 뚫어야할 거대 시장인 중국은 그 이유만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른바 ‘차이나 백그라운드’(중국 후광) 효과가 있다. 일본 역시 유명 디자이너들이 미국에서 활개를 쳤다. 일본과 중국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한국의 무게에 자괴감이 들 때도 많았다고 강 사장은 회상했다. “한국을 알리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고정관념을 깨기가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 미국의 고급 의류시장에서 원산지를 한국이라고 밝히면 당장 마이너스다. 하지만 강 사장 제품에는 ‘Made in Korea’가 박혀 나온다. (주)오브제 제품 중에는 외국 유수 명가와 가격이 같거나 비싼 제품도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최고급 패션 제품이라면 응당 이탈리아나 프랑스제를 떠올린다. 따라서 한국에서 만들어진 ‘Y& Kei’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일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강 사장은 말했다. 제일기획 강진기C2 그룹장은 ‘Y& Kei’가 맞는 어려움은 “기업과 개인만 업그레이드 되고 한국이라는 브랜드는 아직 제자리를 맴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의 낮은 브랜드 파워에 한국 기업의 발목이 잡힌다. 로만손과 오브제에서 보듯 상품의 국적은 무시 못할 변수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의 구매를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쟁쟁한 기업의 제품이라도 원산지가 개도국이면 값싸 보이게 마련이다. 이처럼 한국의 상품은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질곡에 빠져있다. 다국적 브랜드 조사기관인 안홀트-GMI사가 매긴 브랜드 순위에 나타난 한국의 체력은 기대 이하다. 한국은 2005년 4분기에 35개국 중 25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중국·러시아는 물론 한국이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 헝가리·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도 뒤졌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했더니 미국은 17조8930억 달러, 일본은 6조2050억 달러, 독일 4조5820억 달러, 중국은 7120억 달러로 평가됐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2400억 달러에 그쳤다. 국가 브랜드 가치와 국내총생산(GDP) 비율을 따져보면 더 형편없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GDP의 26%로 35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 등 주요 국가의 브랜드 가치는 GDP의 1.5배를 웃돌았다. 한국의 경제력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턱없이 저평가돼 있다는 말이다. 고속 성장으로 한국의 몸집은 커졌지만 이미지는 그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 이미지는 실체보다 좋은 경우와 못한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후자”라고 정부 부처 등 공공기관 브랜드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퍼브릭 브랜드 컨설팅의 김형남(41) 대표는 말했다. 그는 “홍보의 문제, 즉 알리기에 실패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해 ‘2005 국가 이미지 현황 및 시사점’ 이라는 자료를 펴냈다. 세계 70개국 100개 도시의 일반 소비자 5000여 명에게 한국을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다. 여기서 한국 브랜드의 장단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에 보인 호감도는 평균 67.3%로 전년도 60.6%보다 약간 높아졌다. 그러나 국가별로 한국 호감도는 큰 편차를 보였다. 중국(82.2%), 일본(77.8%) 등 최근 한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는 한국에 보이는 호감도가 높다. 한국에 호감이 없다는 응답자는 각각 17.4%(중국), 20.8% (일본)에 불과했다. 반대로 유럽 지역은 39.4%, 북미 지역은 30.4%가 한국에 호감이 없다고 답했다. 비호감 지수가 중국·일본의 2배에 가깝다. 게다가 한국을 호의적으로 보는 유럽인은 줄어가는 추세다. 2005년 한국에 보인 호감도는 59.1%로 전년도 63%보다 4%가량 하락했다. 여타 지역의 한국 호감도가 증가하는 경우와 대조적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구겨진 채로 방치됐다는 의미다. 고정관념과 선입관은 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마련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 사람들의 뇌리에 한국과 관련한 이미지로는 한국전쟁이 가장 강렬하다. 한국과 연상되는 이미지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유럽인은 한국전쟁(55.5%), 자동차(53.4%), 올림픽·월드컵 (52.6%) 순으로 답했다. 북미에서도 한국전쟁(60.1%)이 북핵 문제(58.6%)와 자동차(49.4%)를 제치고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한국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된 데다, 한국을 그리 강력한 국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일기획 강진기 C2 그룹장은 분석했다. 유럽과 북미인 상당수는 미디어로만 한국을 접했다. 그런데 “서구인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한국은 긍정적 내용보다 부정적 내용이 많다”고 김형남 대표는 말했다. 전쟁과 분단, 북핵, 강성 노조, 빈부 격차,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이 해외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한국의 이미지가 일그러졌다는 얘기다. 개고기 논란 등도 한국에서는 사소한 일로 치부됐지만 유럽에서는 뜨거운 관심사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경제 발전, IT 강국, 월드컵, 올림픽 개최 같은 호재도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은 진작에 다 보유한 가치들이다. 그들 눈에는 한국이 새롭지 않은 그저 그런 나라 중의 하나로 남는다. 반면 유럽 바이어들의 한국 제품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중앙일보는 최근 KOTRA와 함께 유럽 22개국 바이어 1071명을 상대로 ‘한국 및 한국산 상품의 이미지’를 조사했다. 한국에 보인 호감도(100점 만점) 점수는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 세 나라에서 평균 68.3점을 기록했다. 일본(65.4점), 프랑스(60.9점), 미국(57.2점)을 앞섰다. 한국에 보인 전체 평균 호감도는 56점이다. 부자 나라가 많은 서유럽 지역(62.8%)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유럽의 구매자가 소비자보다는 한국과 한국 제품을 보다 정확하게 인지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주된 이유는 어느 정도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물었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부분 국민에게 한국은 아예 관심권 밖의 국가다. 지난달 한국관광공사와 한국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이 공동 주최한 국가 상징물 관련 토론회에서 이안 심 주한 영국문화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한류로 대표되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지, 아니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 나라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 프랑스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장뤼크 말랭 주한 프랑스문화원장도 프랑스에서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고 했다. “프랑스인에게 한국을 지도에서 찾으라면 아마 곤혹스러워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아시아 주요 교역국이나 중동·중남미 개도국으로 오면 분위기가 확 다르다. 한국의 긍정적인 측면에 더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투영되는 한국 이미지는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오히려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높은데 개별 상품 이미지가 낮아 문제다. 앞서 KOTRA의 ‘2005 국가 이미지 현황 및 시사점’에서 한국 상품은 품질과 디자인, 가격, 기술 등 4개 분야 100점 만점에 70개국 평균 64.4점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인의 한국 상품 평가는 62점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에 보인 호감도는 82.2점으로 조사대상 권역(유럽·북미·아시아·대양주·일본·중국·중남미·중동·아프리카·기타) 중 최고였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보인 호감도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그런데도 한국 상품의 평가는 8개 권역별 조사에서 45.1점으로 꼴찌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국 하면 김치나 한류 등 친근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을 생각할 때 김치(65.8%)와 한류 상품(영화·드라마·가수·배우, 57.7%) 순으로 연상한다. 일본인에게도 김치(91.1%)와 한류 상품(71.3%)이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비슷한 현상은 중남미와 중동·아프리카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지역 절반 이상의 응답자에게 한국은 경제 성장과 자동차, 올림픽·월드컵 등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선다. 한국의 이미지를 전쟁에 결부시키는 응답자는 중남미 27.5%, 중동·아프리카 21%에 그쳤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기업은 국가 이미지 덕을 본다. 고용석(38)씨는 베트남에 오토바이 완성차와 부품을 판매한다. 그는 효성그룹이 중국 업체와 합작해 중국 충칭에 세운 ‘효성 은샹 파비즈’의 대표이사(총경리)다. 지난해까지는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상품을 직수출했다. 올해부터는 낮은 생산비와 저렴한 노동력을 좇아 중국으로 본사와 공장을 옮겼다. 8월이면 중국의 생산기지가 가동된다. 고씨가 판매할 오토바이와 부품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와 ‘디자인 바이 코리아(Design By Korea)’라는 문구를 새겨넣을 참이다. 중국에서 만들어도 디자인 기술은 한국산임을 알려야 더 잘 팔린다며 고 사장은 미소지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이미지가 아주 좋다. 한국 제품이면 으레 품질은 물론 사후 서비스가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사업하기가 예전보다 수월하다. ”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국가 간 수교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96년 상주대표부를 설치했다. 지금은 양위했지만 노로돔 시아누크 당시 국왕은 그 이전부터 한국과의 수교를 단호하게 반대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준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다. 하지만 훈센 총리는 생각이 달랐다.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좇아 캄보디아를 번성케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한국과 수교하고 경제개발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 훈센 총리는 이런 논리로 반대자들을 설득했다고 이한곤 전 캄보디아 대사는 전했다. 이 전 대사는 “개도국들은 60,70년대 우리의 개발경험을 애타게 갈구한다. 이들에게 잘 사는 방법을 전수하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국가 이미지 홍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자면 훈센 총리는 김치 애호가다. 관저에서 늦게 일하다 출출해지면 한국 김치에 밥을 비벼먹었다고 한다. 김치가 떨어지면 비서진이 수퍼마켓에서 사오기도 했다. 2003년 7월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로 부임하며 훈센 총리에게 이 말을 들은 이한곤 전 대사는 한국대사관에서 수시로 김치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대사관에서 보내주는 김치 중에서 훈센 총리는 백김치를 즐기고 영부인은 매운 김치를 유난히 선호했다고 한다. 자기보다 잘 사는 나라는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것도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서 짧은 기간에 부자가 된 나라를 보면 선망과 추종심이 생길 법도 하다.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을 자국의 개발모델로 상정하는 데다 한류 스타들이 안방을 점령했다. 김정탁 성균관대 국가브랜드경영연구소장은 “한국은 제3세계의 모델 국가다. 현지에서의 이미지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좋다. 자기만큼이나 가난했던 한국이 단기간에 고도 성장을 이뤄내는 모습에서 그들도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 이미지란 이처럼 국가경쟁력과 심리적 친근함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특정 국가를 향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심상이다. 좋은 국가 이미지는 기업의 해외 마케팅, 외국인 투자 유치, 관광 진흥, 외교, 문화 교류 등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국가경쟁력에 직결된다. KOTRA 통상전략팀은 “한국에 보이는 호감도와 한국 상품 구매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국가 브랜드 파워 육성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문민정부가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해외홍보를 국가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대외 홍보위원회, 위성영어 TV 방송(아리랑TV) 등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는 했으나 이때만 해도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관련 정책의 추진력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해외 홍보 정책 또한 후순위로 밀렸다. 본격적인 노력은 국민의정부에서 추진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 즈음해 한국을 세계에 집약적으로 알릴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각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2001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주재 ‘2002 월드컵·아시아 대회 준비상황 합동 보고회’에서 ‘Dynamic Korea’를 국가 상징 영문 슬로건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재외공관, 서울 상주 외신기자, 주한 외국인, 행정 각 부처·위원회와 해외홍보 유관 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또 한국방송이 인터넷에서 6000여 명을 대상으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Dynamic Korea’ (24.6%)가 ‘Fantastic Korea’ (24.5%) ‘The Hub of Asia’(12.2%) 같은 경쟁 브랜드를 제쳤다. 이후 ‘Dynamic Korea’는 모든 국가 홍보물의 시작점이 됐다. 정부는 국가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각 부처 주요 홍보 수단에 ‘Dynamic Korea’를 최우선적으로 홍보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홍보물마다 국가 브랜드인 ‘Dynamic Korea’를 전면에 내세우고, 필요할 경우 부처별 하위 슬로건을 활용토록 하는 지침이 제시됐다. 정부가 발간하는 각종 인쇄물·영상물·홍보 자료·공문서는 물론이고 외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공항 시설과 항공기 내에도 ‘Dynamic Korea’ 브랜드가 대대적으로 노출됐다. 지난해 정부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 외국인 방문 도시 대중교통에 18만여 장의 스티커를 부착했다. 또 전국 지방 국세청·체신청·농협 지점에 2만여 장을 뿌렸으며, 스티커 부착 거리 캠페인도 전개했다. 중앙 행정기관과 광역 지방자치단체, 재외 공관 등 232개 정부 유관 기관 홈페이지에 Dynamic Korea’ 배너 등재를 추진했다. 확산력이 큰 해외 영상매체도 활용된다. 영어 방송 아리랑TV에 지난 한 해 동안 총 7400여 회의 ‘Dynamic Korea’ 를 주제로 하는 홍보 영상물이 방영됐다. 지난해 11월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엔 CNN에 ‘Dynamic Korea’ 광고가 112회 실리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 이미지 위원회·국가 이미지 개발위원회 연석회의는 ‘Dynamic Korea’를 국가 브랜드로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산하자고 결정했다. 그러나 ‘Dynamic Korea’가 국가 브랜드로 자리 잡았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유관기관의 ‘Dynamic Korea’ 배너 등재도 한때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시들해졌다. 중앙 행정기관 중에도 홈페이지를 개편할 즈음엔 슬그머니 배너 광고를 내리는 곳도 많다. 법무부·과학기술부·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들도 따로 논다. 정치인과 CEO에게 브랜드 컨설팅 서비스를 하는 메타커뮤니케이션의 노범석(38) 대표는 “국가 브랜드를 딱히 전담해 책임지는 부서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가이미지위원회는 한·일 월드컵 개최 직후인 2002년 7월 발족했다.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입을 계기로 드높아진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원장인 국무총리를 비롯해 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문화관광부 등의 부처 국무장관들과 민간 전문가가 참여했다. 여기서 20개 부처 42개 사업을 국가 이미지 제고 사업으로 선정했다. IT 산업 육성, 개도국 지원 확대, 국가 이미지 정기 조사 등도 포함되며 예산만 3500여억원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다.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차관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가 이미지 실무위원회’도 구성됐다. 하지만 국가 이미지 위원회 초기 활동은 활발하지 못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1년에 한 번씩 회의를 하고는 그만이었다. 당초 1년에 두 번씩 열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실무위원회도 2003, 2004년 각 1회씩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시엔 이미지위원회 회의 결과를 실행에 옮길 하부 조직이나 후속 조치마저 마땅치 않았다. 국정홍보처도 국가이미지위원회가 실질적인 내용 없이 그냥 겉돌았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회의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국가이미지위원회에 할당된 예산도 2003년 2억원에서 이듬해에는 1억원으로 절반이 줄어들었다. 16대 국회 당시 문화관광위원회 김성호 의원은 여당이면서도 “국가이미지위원회 활동이 유명무실해졌다”고 비판했다. 2005년 2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가 이미지 활동 내실화를 지시하면서 국가 이미지 추진 체계가 개편·보강된다. 해외홍보 경험과 지식을 갖춘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가이미지개발위원회가 자문기구로 발족했다. 또 18개 홍보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해외홍보정책협의회’가 신설돼 해외홍보 업무 현안을 실무적으로 협의·조정하기에 이른다. 해외홍보원(원장 유재웅)이 주관하는 해외홍보정책협의회는 지난해 10월 구성된 이래 활동이 제법 왕성하다. 최근까지 24차례 회의를 열어 중복 사업을 조정했다. 지난 2월 10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는 민·관이 합동으로 해외홍보에 나서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국정홍보처와 과학기술원(KAIST), 대한체육회, 삼성전자 등이 ‘Dynamic Korea’ 슬로건 아래 이미지 홍보 활동을 펴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한국의 이미지는 앞에서 살폈듯이 대륙별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투영된다. 수용하는 국가에 따라 이분화·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김정탁 성균관대 국가브랜드경영연구소장은 “한국과 한국 제품 이미지가 제3세계에서는 굉장히 좋은 반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반대”라고 지역 편중성을 지적했다. 이안 심 주한 영국문화원장도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한류로 대표되는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은 이와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취약 지역으로 분류되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의 승부가 관건이다. 김유경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글로벌 미디어를 보유한 미국·영국 등 선진국 홍보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이미지가 낙후된 지역을 새로운 목표 시장으로 설정해 홍보활동을 강화해야한다. ” 국가이미지개발위원회의 민간위원인 최정화 한국외대 교수도 “국가별로 그들의 취향에 맞게끔 한국의 이미지를 조절해 내보내야 한다”고 국가별로 차별화된 홍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도 국가별·권역별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안다. 국가이미지위원회도 국가별·권역별로 긍정적 이미지 홍보를 적절하게 배합한다는 방침이다. 가령 북미 쪽에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국에 대한 신뢰 확산을 주로 홍보하고, 유럽 쪽에는 IT 강국·문화한국 이미지를 널리 알려 나간다는 식이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유럽문화의 상징적 공간인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지난 6월 8일 열린 한국·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장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이곳에서 한국의 고위관리들이 참석하는 리셉션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념행사에는 프랑스 정·관계 인사, 기업인, 학자, 언론인 등 여론주도층 수백 명이 참석했다. 기념행사에 앞서 베르사유궁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국립무용단 창작 무용 ‘코리아 판타지’ 공연이 열렸다. 한 총리는 한국 전통의 멋과 아름다움을 유럽인에게 알리려 한복을 입었다고 기념식에 동행한 최정화 한국외대 교수는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국 측 여성 대부분은 한복 착용이 권장됐다고 한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의 김지준 일등서기관은 “한복은 프랑스에서 한국의 전통과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데 적합한 의상”이라고 했다. 국정홍보처는 ‘유럽 지역 종합 국가 이미지 홍보’ 계획 실행에 전력을 쏟기로 했다. 올해는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리고, 한·불 수교 120주년 행사가 양국을 오가며 진행 중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중요하다고 본다. 문화한국·IT한국·무역한국을 알리는 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됐다. 월드컵 기간 중 유럽의 위성방송인 유로스포츠와 독일의 지상파방송인 ARD-TV 등에는 한국 이미지 CF인 ‘Dynamic Korea’가 방영된다. 또 정보기술협력단(6.5∼6.7)을 파견하고,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휴대 인터넷서비스(WiBro) 로드쇼(6.6∼6.9)를 개최했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하노버에는 한국 종합홍보관도 개관했다. 베를린·프랑크푸르트·뮌헨·슈투트가르트에는 한국의 자연과 태권도, 태극기 등 한국 상징물을 차체 외부에 그려 넣은 전차와 버스 21대가 운행된다. 어림잡아 9000만 명 이상의 지구촌 사람이 교통광고를 통해 한국과 만난다. 한국관광공사 브랜드홍보팀 차소희 과장은 “독일 시장에서 한국 이미지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광객에게 한국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올해 유럽 홍보가 “유럽 외 기타 지역의 권역별 종합 홍보 추진을 위한 시금석으로 활용된다”고 본다. 유럽에서의 홍보 성과가 향후 국가 브랜드 홍보의 진로를 좌우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Dynamic Korea’ 브랜드가 모든 유럽인에게 호의적으로 수용되지는 않는다. 지난달 한국 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과 국정홍보처가 공동 주최한 국가 브랜드 관련 토론회에서 몇몇 외국인은 ‘Dynamic Korea’ 이미지를 문제 삼았다. 통일 후 10년간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독일에는 ‘다이내믹 불도저’ 와 같은 인상을 준다고 위르겐 케일 주한 독일문화원장은 말했다. “역동적이란 단어는 열광적인 행동파(actionism)”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이웃 국가나 경쟁 국가들을 성가시게 할 수 있다. ” 필립 리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은 ‘Dynamic Korea’ 슬로건이 유럽인에게 합당한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럽은 현재 불경기·실업률 증가 등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 한국이 ‘Dynamic Korea’ 라고 외친다면 부정적 이미지나 불안감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 보는 각도에 따라 한국은 벼락부자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고 김정탁 성균관대 국가브랜드경영연구소장은 경고했다. 김 소장은 “구미 지역에서는 ‘Dynamic Korea’보다는 차라리 5000년 역사와 문화유산을 내세우는 게 우호적인 정서를 가꾸는 데 유리하다”며 보다 세련된 접근을 주문했다. 사실 현지의 여건과 정서를 충분히 고려치 못한 홍보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손지애 CNN 한국지국장은 한국 홍보 영상물을 보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한국인 입장에서 이렇게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것을 광고한다. 그것도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Dynamic Korea’는 아주 좋은 타이틀이다. 하지만 어떤 점이 Dynamic한가를 모르는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홍보물을 만들어야 한다. 좀 더 현실적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 디터 브링크만 한독상공회의소 회장의 발언도 음미할 대목이다. 한국은 기술·노동력·인프라 등에서 매력적이지만 정부 차원의 대외홍보 부족으로 독일이나 유럽 기업 유치가 저조하다. 브링크만 회장은 “유럽에서 삼성·LG는 알지만 한국 정부 차원의 홍보가 약해 독일인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독일 중소기업의 경우 정보 부족으로 한국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한국 정부의 홍보 활동이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진국들이 수십년간 다듬어 온 국가 이미지를 한국은 불과 5년 전에 국가적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 이미지 홍보는 분·초를 아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한정호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앞으로 홍보 노력과 전략의 효율성에 따라 국가 브랜드가 크게 달라지는 민감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국가적 인지도가 약하다. 정치·경제·사회의 안정도가 떨어지는 데다 문화 확산력도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자면? 한국을 지속적으로 말하고, 설득하고, 증명하고, 보여주어야 한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 ‘Made in USA’ ‘Made in Germany’ ‘Made in France’ ‘Made in Japan’이라는 말 속에 모든 긍정적 의미와 개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Korea’나 ‘Made in Korea’란 단어에 모든 유리한 연상과 기억, 개성이 동시에 나타나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 그러자면 무엇보다 한국이 세계에 내놓는 알맹이가 일류여야 한다. 국가 이미지 제고는 캠페인이나 이벤트 또는 홍보 전략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의 김고현 전 연구위원은 “목표로 하는 이미지의 실질적 내용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상품의 일류화, 서비스의 일류화, 기업 여건의 일류화라는 실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보를 무턱대고 한다고 해서 이미지가 금세 좋아지지 않는다. 무역협회 박부규 무역진흥팀장은 “제품을 좋게 만들어야 기업과 국가 이미지가 올라간다”고 했다. 물론 잘 다듬고 포장하는 요령도 익혀야 한다. 홍보를 제대로 하자는 얘기다. 정부의 서투른 홍보 기능이 국가 브랜드의 제고에 걸림돌이라고 학계에서는 본다. 신호창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정부 부처 조직의 담당자들이 홍보 전문가가 아니어서 전략적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대부분 일회성에 그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 내에 홍보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당시 문화관광부의 김성일 문화교류과장이 한 정책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해외 홍보담당 조직의 근무자 역시 전문성 부족으로 창조적이고 효율적 활동을 전개하지 못한다. ” 이후로도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와 거래를 하기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기관의 고위관계자는 정부 부처가 순혈주의와 위계질서를 고집하는 바람에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했다. “내부에 경쟁의 동력이 있지도 않아 창조적 긴장감을 찾기 힘들다. ” 이와 관련해 김형남 대표는 “체계적인 미디어 관리가 전혀 안 된다. 어찌 보면 국가가 의무를 해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정홍보처 등 정부의 홍보 파트도 역량의 상당 부분을 국내 문제에 쏟아붓는다. 해외 파트는 찬밥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정호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정홍보처 내 해외홍보원은 항상 우는 소리를 한다. 할 일에 비해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올 6월 현재 해외홍보원 정원은 원장을 포함해 국내 55명, 국외 32명 등 총 87명으로 2003년 85명에서 2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가이미지위원회의 실질적인 사무국 기능을 수행하는 해외 홍보원으로서는 늘어나는 업무를 처리하기에 역부족이다. 메타커뮤니케이션의 노범석 대표는 “이 정도 인원으로 국가의 해외홍보를 감당하기엔 약하다”고 진단했다. 정부 부처 간 협력도 원활하지 못하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국가 이미지 제고 관련 기관별 실적을 제출했다. 여기서 외교통상부는 “각종 국제행사를 주관하는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 간의 정보 교류 등 긴밀한 업무 협조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홍보 기능의 합리적 조정과 기능 통합이 여의치 않았다는 평가인 셈이다. 99년 해외홍보 정책 기능 강화용으로 만들어진 대외홍보실무협의회를 보자. 첫해 한 차례 회의를 연 이후 지난해 폐지될 때까지 매년 3, 4차례 회의만 했을 뿐이다. 부처 간 기능조정을 담당할 만한 위상이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계는 한국 정부의 해외홍보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현재 정부의 해외 홍보기능은 국정홍보처의 해외홍보원, 문화관광부의 한국관광공사, 외교통상부의 재외 공관, 산업자원부의 KOTRA, 기타 여러 국제 교류 기구 등 10여 개 기관에 분산돼 있다(2000년 신호창 서강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해외 홍보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기관은 32개에 이른다). 이들 기관 간 사업의 사전 협의나 조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은 단골 메뉴였다. 한정호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문화관광부·외교통상부 등 3개 부서 해외 홍보 관련 업무가 10여 개 항목에서 중첩되기도 했다. 영역 중복은 업무 혼선과 조직 간의 갈등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정부의 해외홍보 전략을 보는 학계의 시각은 냉랭하다. 김유경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지난달 열린 국가 이미지 관련 토론회에서 정부 홍보체계의 비효율성은 여전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가 상징물이나 국가 이미지 제고 프로그램의 주관 부처나 집행 부서가 명확지 않은 데다 관리 책임의 소재 또한 불투명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 부처에 산만하게 분산된 해외홍보 기능을 통합하는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다. 부처 간 이기주의의 벽을 넘어설 엄두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안보섭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는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전개되는 해외홍보 활동이 전문적 지식을 가진 경험 있는 부처로 통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효율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관리하려면 정부의 각 조직에서 산발적으로 시행하는 국가 이미지 관리 정책을 통합 조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학계는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의 조직을 통합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홍보처와 문화관광부에 분산된 해외문화원을 통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던 해외문화홍보원이 문화관광부의 재외한국문화원으로 통합되기까지는 2년 이상 소요됐다. 한정호 연세대 신방과 교수는 “해외문화홍보원의 통합은 바람직하지만 전체 업무를 놓고 보면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나 기구 통합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문제는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지난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통합적인 홍보 활동을 담당하도록 ‘국가 브랜드청’ 신설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나 경쟁력이 한참 뒤처진 이유는 정부 책임이 크다고 추궁했다. 외국의 경우 해외홍보 전담 기구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는 추세며, 홍보 조직과 활동이 체계적이다. 미국은 해외 주재 미 공보원이 국무부에 통합되면서 대사관 내 공보과가 대외 홍보활동을 총괄적으로 수행한다. 또 대외 이미지 관리를 위해 세계 공보국을 운영 중이다. 일본과 프랑스 역시 공보문화원과 대사관, 민간기구와의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업무 연계가 긴밀하게 이루어진다고 한정호 연세대 신방과 교수는 말했다. 로만손의 김태환 부장은 국가 이미지가 그나마 10여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올림픽·월드컵 이후에는 ‘아! 코리아’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고객이 해외에서도 늘었다. 김 부장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선전한 덕으로 돌렸다. “한국의 기업들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이미지 개선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우리도 그런 덕을 봤다. 로만손도 후발 기업의 길을 터주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 정부의 국가 이미지 작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한 기업인은 정부에 필요한 요소를 이렇게 제시했다. “성공할 때까지 탈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게 기업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두 유어 베스트(Do your best)’ ‘노 리미트(No limit)’ ‘브레이크 스루(Break through)’ 같은 기업 용어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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