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즐기는 동유럽 아트 페스티벌
한 여름에 즐기는 동유럽 아트 페스티벌
바르샤바·브라티슬라바·부다페스트 등지서 잇따라 열려 거장과 신인 작품 모두 볼 만해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 등의 국가들은 냉전 당시에는 ‘동유럽’으로 불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중앙유럽’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제일 많다. 관광 마케팅 담당자들은 미국화 경향이 심한 서유럽과 구분하려고 ‘다른 유럽’이라는 명칭을 즐겨 쓴다. 파리보다는 바르샤바,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영어를 더 자주 듣게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미술 작품은 넘칠 만큼 풍성하다(익히 알려진 미술가들과 놀라운 신인들의 작품 모두 풍요롭다). 게다가 올 여름 아트 페스티벌은 좀 독특하게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은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전쟁과 점령, 독재로 황폐화했기 때문에 전시회 순례에 나서기 전에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85%가 파괴됐지만 바르샤바 역사박물관에 보존된 유물들은 문화의 깊이를 짐작하게 해준다.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쌍방향 기능을 철저히 살린 박물관이지만, 커피숍의 페이스트리 냄새가 레지스탕스 전사들의 터널로 흘러들어오는 등의 웃지 못할 허점도 가끔 눈에 띈다)은 1940년대에 그곳에서 일어났던 비극의 전반적인 내용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 염두에 둘 사항은 자유시장 경제가 도입된 지 15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전시 내용에 변화를 주거나 순회전시회를 여는 데 익숙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순회전시회를 기다리지 말고 보고 싶은 미술 작품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할 때 바르샤바에서 추천할 만한 곳이 세 군데 있다. 포스터박물관은 포스터(상업·정치·공공 서비스)가 전후 중앙유럽의 주요 미술 형태였을 뿐 아니라, 그 신랄한 시각적 유머와 우아한 그래픽 디자인이 ‘세련됐다’는 평을 듣는 현대 회화작품 대부분마저 무색하게 만든다는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국제 포스터 대회인 ‘제20회 포스터 비엔날레’(9월 24일까지)가 열리는 동안 방문하면 더없이 좋을 듯하다. 우야즈도프스키 성(城)의 현대미술센터에서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전시회가 열린다. 개념적 설치미술 작품이 풍성하고, 7월 24일부터 10월 10일까지는 종종 갈피를 잡기 어려운 요즘 전시회들의 사전 준비로 보아둘 만한 ‘20세기 폴란드 미술전(In Poland that is where)’이 열린다. 1920~30년대부터 현재까지 폴란드 미술가 40인의 수작을 골라 전시한다. 그러나 바르샤바에서 가장 매혹적인 전시공간은 파브리카 츠치니다. 마말레이드 공장을 개조한 이곳은 이제 예술의 거리가 된 프라가 지역에 있다. 화랑·라운지·공연장이 함께 있으며, 전시 경향이 젊은 미술가들 쪽으로 ‘방향 전환’ 중이다. 프라가 지역에는 상업 화랑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 제일 괜찮아 보이는 곳이 갤러리 룩스페라다. 요란하거나 야한 내용과는 거리가 먼 현대사진만을 전시하는 진지하고 절도 있는 화랑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맨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시립미술관이다. 중세 소장품 전시와 함께 현대미술 전시회도 열린다. 중앙유럽의 까다롭고 추상적인 초현실주의를 설명해 주는 입문서 같은 ‘체코와 슬로바키아 현대미술의 명작Ⅱ, 1956∼1978 전(展)’이 8월 20일까지 열린다. 그러나 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마테이 크렌의 영구 설치미술 작품 ‘통로’(2005)다. 설치미술에서 흔히 쓰이는 진부한 소재(수많은 거울과 수천 권의 책 등)도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로 만물상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놀랍고 도발적이다. 슬로바키아 국립미술관은 올 여름 ‘구약의 인물과 사건들, 뒤레에서 샤갈까지 전(展)’(8월 20일까지)을 개최한다. 진부하게 들리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옛 거장들의 회화(구에르치노의 작품 등)와 현대미술, 슬로바키아 미술가들과 외국 미술가들의 작품이 매혹적인 조화를 이룬다. 리모델링한 전시실과 조명, 설치미술도 아주 훌륭하다. 부다페스트는 잘 보존된 고대 로마 유적(아킨쿰은 놓치지 말고 가 봐야 한다)과 헝가리어의 독특한 억양 때문에 중앙유럽에서 가장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공산당 시절 헝가리에서 사(私)기업은 고용 인원이 9명 이하일 때만 허가가 났다. 미술 화랑으로서는 많은 숫자다. 그래서 바르포크 갤러리처럼 혁명을 즈음해 생긴 화랑들도 있지만, 에르데스 갤러리(요제프 리플-로나이 등 선구적인 현대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했다) 등 일부 화랑 역시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화랑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미술가 중 한 명인 신초현실주의 화가 라슬로 조르피는, 현대미술의 경우 국제적인 경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동료 미술가들은 작품에서 ‘중앙유럽’의 고뇌를 떨쳐버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목록이 바뀌는 키젤바흐 갤러리 소장품에서 이런 투쟁의 흔적(때로는 우울한 분위기의 구상화에서, 또 때로는 도전적으로 강렬한 추상화에서 나타난다)이 보인다. ‘현대 헝가리 회화’라고 하면 언뜻 떠오르는 이름들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땅히 떠올려야 할 화가가 있다. 헝가리 국립미술관의 주(主)계단 꼭대기에 영구 전시된 회화 3점은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지만 그림 솜씨가 뛰어난 헝가리 화가 타디카 촌트바리(1853~1919년)의 작품이다. 마티스를 최고의 화가로 꼽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을 법한 작품들이다.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극장 폐허’(1904~1905년)는 규모와 색채, 기발한 구도 면에서 마티스가 야수파 화가로서 그린 어떤 작품과도 어깨를 견줄 만하다. 야수파 얘기가 나온 김에 소개하자면, 헝가리 국립미술관의 특별 전시회 ‘헝가리의 야수파 파리부터 나기바냐까지, 1904∼1914전(展)’(7월 30일까지)은 로베르트 베레니·게자 보르네미차 등 헝가리 화가들의 작품과 마티스·뒤피·블라맹크의 작품을 비교해 볼 멋진 기회를 제공한다. 강렬한 인상의 멋진 전시회다. 헝가리 화가들의 작품은 야수파 거장들의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부다페스트도 베이징이나 빈, 아바나처럼 독일의 억만장자 수집가인 페터 루트비히의 기증품 덕을 본 도시들 중 하나다. 부다페스트의 루트비히 미술관은 거대한 콘서트홀로도 유명한 헝가리 국립예술센터 내에 있다. 이 미술관은 루트비히 미술관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작품(워홀·라우셴버그·요셉 보이스 등)을 다수 소장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와 도큐멘타(1955년 독일 카셀에서 처음 열린 국제 미술전람회)같은 지나치게 현대적인 전람회에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전시작과 같은 부류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6월 22일부터 7월 8일까지 리투아니아의 아이가스 빅세와 크리스탑스 굴비스가 제작한 아방가르드 설치미술이 전시된다. 기구처럼 부풀린 높이 8m의 핑크색 그리스 신전 안에서는 진흙 레슬링 경기가 진행된다. 예술의 신비성을 깰 의도로 계획됐다는 설명이다. 나중에 그 신비성을 다시 찾고 싶다면 부다페스트 미술관이 제격이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프라도 미술관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옛 거장들의 작품이 까다로운 취향의 관람객들도 만족시킬 만하다. 게다가 이 미술관은 미술계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을 맞아 자체 소장품 중에서 ‘렘브란트가 직접 제작한 동판 조각 작품 거의 전부’(200점 이상)를 전시(6월 23일~9월 25일)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 물론 본격적인 렘브란트 전시회는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에서 열린다.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서는 이미 ‘걸작전(展)’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개막돼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이유 있는 자신감에서 나온 제목이다. 렘브란트의 명작 일부(당연히 ‘야경’도 포함됐다) 와 베르메르·야콥 반 루이스달·얀 스텐 등 동시대 네덜란드 화가의 유명한 그림들이 함께 전시됐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소규모 드로잉 작품 역시 그의 활기찬 회화 작품만큼 큰 가치가 있다는 일리있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니 이 미술관의 두 번째 전시회 ‘드로잉 전작전(全作展) 1부’(8월 11일~10월 11일)도 봐둘 가치가 있겠다. 렘브란트의 고향 라이덴의 스테델리크 미술관은 렘브란트와 그에 필적하는 20세기 화가이자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피카소의 작품들을 함께 선보이는 판화전(9월 9일까지)을 연다. 렘브란트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많은 미술가를 탄생시킨 (정열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깊이 있는) 모태다. 런던 국립미술관의 ‘저항자와 순교자들 전(展)’(8월 28일까지 반 고흐·고갱·에드바르 뭉크·제임스 엔소르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한다)은 19세기와 20세기 초 격화됐던 저항과 순교 정신을 미학적으로 입증한다. 그림 그리기는 전적으로 개인의 개성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연구와 근면한 작업은 물론 지적인 모방도 상당부분 필요하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인 화가들과 루브르 전(展)’(6월 14일~9월 18일)이 그런 주장을 확증한다. 이 전시회는 새뮤얼 F B 모스·로버트 헨리·토머스 하트 벤튼 등 루브르 박물관의 여러 전시실에서 보낸 시간의 덕을 톡톡히 본 미국인 화가들의 회화 30점을 전시한다. 21세기의 어느 여름 아트 페스티벌도 모든 분야의 작품을 고루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기괴한 작품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리고 기괴하기로 치자면 흉물스럽게 해체된 한스 벨머의 초현실주의 인형들보다 더하기는 힘들다. 뮌헨의 피나코텍 데어 모데른에서 6월 29일부터 8월 27일까지 그 작품들을 전시한다. 덴마크 스톡홀름의 모데나 뮤제에서는 미국의 설치미술가 겸 행위예술가 폴 매카시의 작품 전시회 ‘헤드 숍/숍 헤드 전(展)’[‘마리화나 용품점/상점 주인 전(展)’](6월 17일~9월 3일)을 개최한다. 그는 유명한 ‘산타 초콜릿 숍’에서 크리스마스와 초콜릿을 매우 부적절한 방식으로 결합했다. 반면 매혹적인 작품을 보고 싶다면 혁신적인 네덜란드 디자인 그룹(펠트로 만든 부엌 싱크대는 어떤가?) 드룩의 전시회를 추천한다. 벨기에의 그란트-호르누 미술관에서 7월 23일까지 열린다. 또 고전에서 컬트까지 장르를 초월한 가구 디자이너 폴 크제호름의 전시회도 가볼 만하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6월 23일부터 9월 24일까지 계속된다. 덴마크의 현대식 긴 안락의자에 누워 앞에 소개된 전시회 메뉴를 곱씹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정경희 newsw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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