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산책] 천사도 시기한 환상의 맛
[미각산책] 천사도 시기한 환상의 맛
코냑을 만드는 사람은 흔히 오케스트라 단장에 비유된다. 최고의 뮤지션을 고르듯 코냑 원액을 선택하고, 최상의 하모니를 내기 위해 그 원액들을 블렌딩하기 때문이다. 헤네시의 블렌딩 전문가인 로랑 로자노를 만나 코냑의 세계를 엿봤다.
로랑 로자노를 만난 곳은 전망 좋기로 유명한 종로타워 꼭대기의 레스토랑 탑클라우드였다. 시간은 코냑을 맛보기엔 다소 이른 낮 12시였다. 헤네시의 테이스팅&블렌딩 팀에서 일하고 있는 로자노는 전 세계를 누비며 헤네시 직원들과 고객들을 대상으로 코냑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현지에선 고급 바와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전문 테이스팅 세션’을 열어 현지 코냑 애호가들에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인터뷰 역시 전문 테이스팅 세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가 가방에서 처음 꺼낸 것은 오드비(Eau-de-vie)라 불리는 코냑 원액이었다. 오드비는 프랑스어로 ‘생명의 물’을 뜻한다. 참나무(오크) 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오드비는 예상을 깨고 물처럼 투명했다. 와인 원액은 포도의 즙으로 탁하다. 하지만 오드비는 그 와인을 증류해 만들어지기에 맑다. 이 오드비는 자신의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매년 포도의 품질과 숙성 과정의 차이로 인해 어떤 오드비는 10년이면 더 이상 숙성되지 않고, 어떤 오드비는 200년이 지나도 계속 숙성된다. 결국 오드비의 나이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결정하는 셈이다. 이런 자연의 산물인 오드비를 숙성시키고 블렌딩해 코냑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훈련을 거쳐야만 가질 수 있다. 로자노는 “헤네시 코냑의 블렌딩은 1765년 설립 당시부터 그 역할을 맡아 온 가문이 있다”며 “지금은 7대(代)째 그 기술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명한 오드비를 한입에 털어 넣자 알코올을 탄 보드카를 들이킨 것처럼 입 안이 후끈거렸다. 로자노는 “오크통을 거치지 않은 오드비의 알코올 농도는 70도”라며 “이 오드비를 얻으려면 와인을 두 번 증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이중 증류법은 16세기 이래 계속 사용된 방법으로, 포도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와인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향을 추출해 낸다. 그가 다음으로 꺼낸 것은 코냑의 황금빛이 잘 표현된 세 가지 종류의 오드비였다. 1975·1978·1986년산, 모두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를 증류해 만든 원액을 오크통에 숙성시켰다. 코냑은 오크통에서 서서히 자연 숙성시켜야 특유의 향과 색이 형성된다. 수령 80년 이상의 오크라야 코냑을 담는 배럴을 만들 수 있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코냑 지방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이다. 샤랑트강을 끼고 있는 코냑은 11세기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다. 프랑스에서 각종 와인을 수입해 가던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유달리 그 지방의 와인을 좋아했다. 그러나 발효주 와인은 수송 도중에 상하기 십상인 데다 술의 무게 때문에 운반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포도주의 품질은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양을 줄이기 위해 와인을 농축시켰다. 와인 9ℓ는 1ℓ의 코냑 원액이 됐다. 결국 이것이 발전해 16세기에 코냑의 오드비가 탄생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농축 와인은 다시 물에 희석시켜 마셨는데 이를 계기로 코냑은 롱드링크(진저엘·소다수·생수 등을 섞어 마시는 술)의 선구자가 됐다. 그 당시 코냑은 배럴 단위로 거래됐는데, 사고로 사라졌던 코냑 배럴이 아주 오랜 세월 뒤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사람들은 오랜 숙성이 원액의 진가를 더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액을 숙성시킨 후 각각 특성이 다른 원액과 블렌딩했고 최고급 코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숙성된 코냑은 고급스러운 맛과 향으로 귀족 술의 대명사가 됐다. 로자노는 세 가지 오드비를 차례로 잔에 따르며 비교 시음을 권했다. ‘코냑의 친구는 시간’이란 공식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오랜 숙성으로 좋은 균형감을 가졌지만, 자극적인 후추향이 코를 찌르는 1975년산보다는 부드럽고 화려한 꽃 향기가 입안을 맴도는 1978년산이 인상 깊었다. 로자노에게 선호하는 오드비를 묻자 “개인마다 다르지만 나도 1978년산이 좋다”고 말했다. 오래된 오드비가 들어갈수록 무조건 좋은 코냑은 아니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다. 코냑은 숙성 기간 동안 알코올 농도와 함량이 매년 2~3% 정도 증발되기 때문이다. 이 손실분을 ‘천사의 몫(Angel’s sha- re)’이라고 부른다. 차례로 마신 세 개의 오드비에 각각 점수를 매기자, 로자노는 이 점수를 바탕으로 블렌딩을 시작했다. 1975년산에 8점, 1978년산에 10점, 1986년산에 6점을 주면 ‘8:10:6’으로 섞는 식이다. 매일 60여 종류의 오드비를 시음한다는 로자노는 “코냑을 블렌딩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단장의 역할과 같다”며 “적재적소에 최고의 뮤지션을 고르는 것처럼 정점에 이른 오드비를 선택해 블렌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47년에 출시된 이래 최고급 코냑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는 헤네시 XO는 100여 가지 원액을 블렌딩해 만들어진다. 헤네시 프라이빗 리저브는 최상급 오드비 14종류만 블렌딩해 만든 제품이지만, 그 오드비의 가치로 인정받는 코냑이다. 코냑은 오드비의 숙성 연도에 따라 등급이 나눠진다.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VSOP(Very Superior Old Pale)급은 20~30년 저장된 오드비를 사용했고, XO(Extra Old)는 30∼45년 된 오드비를 블렌딩했다. 3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코냑 리처드 헤네시에는 1774년 헤네시 창립자 리처드 헤네시 시절부터 보관된 오드비가 들어간다. 이윽고 로자노의 블렌딩을 거쳐 탄생한 코냑은 앞서 맛본 어떤 오드비보다 향과 맛이 탁월했다. 로자노는 “오드비는 블렌딩할 때마다 그 맛과 향이 깊어진다”며 “‘1+1+1’은 3이 아니라 7이 되는 것이 바로 블렌딩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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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로자노를 만난 곳은 전망 좋기로 유명한 종로타워 꼭대기의 레스토랑 탑클라우드였다. 시간은 코냑을 맛보기엔 다소 이른 낮 12시였다. 헤네시의 테이스팅&블렌딩 팀에서 일하고 있는 로자노는 전 세계를 누비며 헤네시 직원들과 고객들을 대상으로 코냑 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현지에선 고급 바와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전문 테이스팅 세션’을 열어 현지 코냑 애호가들에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인터뷰 역시 전문 테이스팅 세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가 가방에서 처음 꺼낸 것은 오드비(Eau-de-vie)라 불리는 코냑 원액이었다. 오드비는 프랑스어로 ‘생명의 물’을 뜻한다. 참나무(오크) 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오드비는 예상을 깨고 물처럼 투명했다. 와인 원액은 포도의 즙으로 탁하다. 하지만 오드비는 그 와인을 증류해 만들어지기에 맑다. 이 오드비는 자신의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매년 포도의 품질과 숙성 과정의 차이로 인해 어떤 오드비는 10년이면 더 이상 숙성되지 않고, 어떤 오드비는 200년이 지나도 계속 숙성된다. 결국 오드비의 나이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결정하는 셈이다. 이런 자연의 산물인 오드비를 숙성시키고 블렌딩해 코냑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훈련을 거쳐야만 가질 수 있다. 로자노는 “헤네시 코냑의 블렌딩은 1765년 설립 당시부터 그 역할을 맡아 온 가문이 있다”며 “지금은 7대(代)째 그 기술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명한 오드비를 한입에 털어 넣자 알코올을 탄 보드카를 들이킨 것처럼 입 안이 후끈거렸다. 로자노는 “오크통을 거치지 않은 오드비의 알코올 농도는 70도”라며 “이 오드비를 얻으려면 와인을 두 번 증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이중 증류법은 16세기 이래 계속 사용된 방법으로, 포도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와인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향을 추출해 낸다. 그가 다음으로 꺼낸 것은 코냑의 황금빛이 잘 표현된 세 가지 종류의 오드비였다. 1975·1978·1986년산, 모두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를 증류해 만든 원액을 오크통에 숙성시켰다. 코냑은 오크통에서 서서히 자연 숙성시켜야 특유의 향과 색이 형성된다. 수령 80년 이상의 오크라야 코냑을 담는 배럴을 만들 수 있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코냑 지방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이다. 샤랑트강을 끼고 있는 코냑은 11세기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다. 프랑스에서 각종 와인을 수입해 가던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유달리 그 지방의 와인을 좋아했다. 그러나 발효주 와인은 수송 도중에 상하기 십상인 데다 술의 무게 때문에 운반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포도주의 품질은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양을 줄이기 위해 와인을 농축시켰다. 와인 9ℓ는 1ℓ의 코냑 원액이 됐다. 결국 이것이 발전해 16세기에 코냑의 오드비가 탄생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농축 와인은 다시 물에 희석시켜 마셨는데 이를 계기로 코냑은 롱드링크(진저엘·소다수·생수 등을 섞어 마시는 술)의 선구자가 됐다. 그 당시 코냑은 배럴 단위로 거래됐는데, 사고로 사라졌던 코냑 배럴이 아주 오랜 세월 뒤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사람들은 오랜 숙성이 원액의 진가를 더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액을 숙성시킨 후 각각 특성이 다른 원액과 블렌딩했고 최고급 코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숙성된 코냑은 고급스러운 맛과 향으로 귀족 술의 대명사가 됐다. 로자노는 세 가지 오드비를 차례로 잔에 따르며 비교 시음을 권했다. ‘코냑의 친구는 시간’이란 공식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오랜 숙성으로 좋은 균형감을 가졌지만, 자극적인 후추향이 코를 찌르는 1975년산보다는 부드럽고 화려한 꽃 향기가 입안을 맴도는 1978년산이 인상 깊었다. 로자노에게 선호하는 오드비를 묻자 “개인마다 다르지만 나도 1978년산이 좋다”고 말했다. 오래된 오드비가 들어갈수록 무조건 좋은 코냑은 아니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다. 코냑은 숙성 기간 동안 알코올 농도와 함량이 매년 2~3% 정도 증발되기 때문이다. 이 손실분을 ‘천사의 몫(Angel’s sha- re)’이라고 부른다. 차례로 마신 세 개의 오드비에 각각 점수를 매기자, 로자노는 이 점수를 바탕으로 블렌딩을 시작했다. 1975년산에 8점, 1978년산에 10점, 1986년산에 6점을 주면 ‘8:10:6’으로 섞는 식이다. 매일 60여 종류의 오드비를 시음한다는 로자노는 “코냑을 블렌딩하는 것은 오케스트라 단장의 역할과 같다”며 “적재적소에 최고의 뮤지션을 고르는 것처럼 정점에 이른 오드비를 선택해 블렌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47년에 출시된 이래 최고급 코냑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는 헤네시 XO는 100여 가지 원액을 블렌딩해 만들어진다. 헤네시 프라이빗 리저브는 최상급 오드비 14종류만 블렌딩해 만든 제품이지만, 그 오드비의 가치로 인정받는 코냑이다. 코냑은 오드비의 숙성 연도에 따라 등급이 나눠진다.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VSOP(Very Superior Old Pale)급은 20~30년 저장된 오드비를 사용했고, XO(Extra Old)는 30∼45년 된 오드비를 블렌딩했다. 3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코냑 리처드 헤네시에는 1774년 헤네시 창립자 리처드 헤네시 시절부터 보관된 오드비가 들어간다. 이윽고 로자노의 블렌딩을 거쳐 탄생한 코냑은 앞서 맛본 어떤 오드비보다 향과 맛이 탁월했다. 로자노는 “오드비는 블렌딩할 때마다 그 맛과 향이 깊어진다”며 “‘1+1+1’은 3이 아니라 7이 되는 것이 바로 블렌딩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갈비와 XO는 찰떡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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