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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공백 76일 경영 손익] 상처 입었지만 체질 바꾸는 기회

[정몽구 공백 76일 경영 손익] 상처 입었지만 체질 바꾸는 기회

정몽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자리를 비운 지 76일(구속 61일, 병원 15일) 만이다. 7월 14일 앨라배마 주지사를 접견하기 위해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에 모습을 드러낸 정 회장은 특유의 현장경영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도 “회장의 특성상 칩거하거나 사무실에 머물러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정 회장 구속으로 중단된 해외 공장 착공식 등 직접 나설 일이 많다. 또다시 시작된 파업도 정 회장의 결심이 있어야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경영은 곧바로 정 회장의 경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다. 그것 때문에 정 회장이 결국 구속됐다. 이제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정몽구 회장은 직접 실무를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 때문에 그의 공백으로 경영 손실도 적지 않았다. 경영 손실= 가장 큰 손실은 정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글로벌 경영에 차질이 생긴 점이다. 지난 4월 26일로 예정됐던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착공식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지난 5월 17일로 예정돼 있던 현대차 체코 공장 착공식도 연기됐다. 정 회장 복귀로 이 두 사업은 정상 궤도에 오르겠지만 상대국 정부와 주 정부는 물론 해외 투자가들도 현대자동차의 경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독일 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현대차로서는 정 회장이 월드컵 기간 구속돼 있었다는 게 큰 타격이다. 공식 후원업체인 현대차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특히 정 회장은 개막 때, ‘굿윌볼 로드쇼 피날레’ 등을 비롯한 각종 공식 행사에 참석해 다양한 월드컵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었으나 불발됐다. 현대차는 전 세계 213개국 350억 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일 월드컵의 경기장 로고 노출, 차량 지원 등을 통해 7조원의 브랜드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 불참으로 세계 최고경영자 및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경제 정상 외교’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지난 4, 5월에 계획됐던 국내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1분기 기업설명회와 해외 IR을 취소한 것도 정 회장 구속 여파다. 특히 해외 IR은 현대차 그룹의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현대차 그룹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 현대차 그룹의 또 다른 숙원사업인 일관제철소 일정도 차질을 빚었다. 특히 정 회장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온 일관제철소 가동을 위해서는 해외에서 양질의 철광석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7월께에 중남미를 직접 방문해 세계 최대의 철광석 공급업체와 철광석 장기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말 정 회장은 호주 BHP 발리튼사를 직접 방문해 철광석 광산을 시찰하고 2010년부터 10년간 양질의 철광석과 유연탄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원료 공급 방안을 직접 챙겨왔다. 하지만 정 회장의 부재로 중남미 방문이 연기됨에 따라 하반기로 계획돼 있던 일관제철소 기공식 일정도 불투명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손실은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 훼손이다. 최근 몇 년간 품질경영, 속도경영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현대차가 뜻밖의 비자금 사태라는 암초를 만나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은 지난 4월 10일자 신문에서 “그동안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약진해 왔지만 검찰 수사로 인해 앞길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ABC TV 등도 현대차의 검찰 수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최근 발표된 2006년 제이디파워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차는 도요타, 벤츠, BMW 등 유명 브랜드를 추월하고 고급 브랜드를 제외한 일반 브랜드 순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그간의 부정적인 보도에 묻히는 느낌이다. 정 회장의 현장 경영에 의지해온 현대차로서는 정 회장 부재 중 일부 해외 판매망의 이탈과 시장 점유율 하락 등이 겹친 것도 적지않은 손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정 회장 부재와 직결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직접 실무를 챙겨오던 정 회장이 손을 놓으면서 현대차 임원들도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이익= 외형적으로 정 회장 구속이 큰 손실을 가져다 주었지만 사실 보약이 된 점도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던 현대차 그룹에 시스템 경영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동안 현대차는 정 회장의 의사결정에 모든 것을 의존했다. 정 회장이 원래 진두지휘하는 업무 스타일이긴 하지만 매출 50조원이 넘는 대기업에는 다소 어색한 면이 있었다. 모든 의사결정을 회장에게 맡기다 보니 리스크도 회장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사태 직후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시스템 경영 부재, 럭비공 인사의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주고 있다. 일단은 보석 상태고, 또 감옥에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현대차 경영은 정 회장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 회장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전문경영인들의 활동반경이 다소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글로벌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1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분간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에는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대차 사태가 터지기 직전 과장급 이상 직원의 연봉 동결과 협력업체 납품단가 10% 인하 요구 등이 있었다. 당시 협력업체들은 “이렇게 가면 회사가 적자난다. 대기업의 횡포”라는 말을 했다. 과장급 이상 직원들도 연봉 동결에 볼멘소리가 있었다. 최근 현대차가 급성장을 계속해 가면서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납품업체는 물론 정부, 언론에서도 “현대차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다”는 말이 나왔다. 승승장구하면서 주변에 대해 돌아보거나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현대차는 몸을 낮추고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등 과거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조된 듯한 발표지만 사회공헌에 관심을 돌리겠다는 것도 어쨌든 긍정적이다. 특히 현대차처럼 부품·협력 업체가 많고, 종업원 등 많은 관계자가 있는 회사가 별다른 사회공헌 프로그램 없이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의 구속과 소버린 사태를 지나면서 사회공헌에 눈을 떴다. 현대차의 1조원 사회 헌납 건도 당초 계획했던 복지재단 일임 기부 방안 외에 사회단체의 저명인사를 재단장으로 한 별도의 사회재단 구성과 자동차산업발전기금으로의 전환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논의 중이다. 현대차는 최근 구매관리사업부 내에 실무진 6명으로 구성된 상생협력추진팀을 조직했으며,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도 업체협력팀과 상생협력추진팀을 통해 그룹 차원의 상생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왕자의 난 등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최근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다소 빠르다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이번 사건도 결국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특히 최근 정부도 경영권 승계에 법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고, 시민단체도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등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기업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가 이런 보약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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