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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옥의 객석에서] 맥빠진 두 명의 ‘지킬과 하이드’

[임선옥의 객석에서] 맥빠진 두 명의 ‘지킬과 하이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공연하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객석은 가득차 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7월 12일 오후 7시 무렵, 서울은 한·미 FTA 협상 반대 시위로 교통이 거의 마비상태였다. 지하철 동대입구역에서 극장까지 오가는 순환버스는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았고 기다리던 관객들은 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남산 중턱에 자리한 극장으로 빗속을 헤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공연시간인 7시30분에 간신히 도착한 후 숨을 헐떡이며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빈 좌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 객석을 보면서 놀랐다. 무엇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날씨·시위·교통대란에도 개의치 않고 왔을까? 공연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공연예술 중에서도 연극계는 불황에 허덕인다고 아우성이다. 뮤지컬로만 관객이 몰린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하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뮤지컬 공연은 주로 창작품이 아닌 대형 수입 뮤지컬 작품들이다. ‘캣츠’ ‘맘마미아’‘오페라의 유령’‘아이다’‘그리스’‘돈키호테’ 등이 그것. 이 대형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은 잘 짜인 대본, 잘 작곡된 음악과 노래, 볼거리 등이 조화를 이뤄 탄탄한 기본 뼈대를 갖추고, 이 뼈대에 우리 뮤지컬 배우들의 기량이 우리말 가사를 통해 우리 관객과 만난다는 것이다. 공연에 따라 우리말 가사 번역이 어색한 경우도 있고, 가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를 잘할 경우 전체적인 공연 속에 묻혀서 크게 문제되지 않고 넘어간다.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면서 ‘지킬 앤 하이드’ 공연도 이 범주에 속할 것이라 예측했다. 극장에 도착하기까지의 거리 분위기와 날씨도 극적이었지만, 7월 12일 저녁 공연은 공연 자체가 극장 밖 풍경만큼이나 극적이었다. 한 배우가 선한 지킬 박사와 악한 하이디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지킬 역은 공연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는다. 이 공연의 지킬 역 배우는 3명이 캐스팅돼 있다. 지난 3월 일본 공연 때 호평받았다는 조승우와 류정한, 새롭게 합류한 김우형이다. 조승우가 출연하는 공연은 거의 매진이었고, 12일 공연은 오후에는 김우형이, 저녁에는 류정한이 지킬 앤 하이드 역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공연에서 관객들은 2명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볼 수 있었다. 1막 공연 중에 어깨가 탈골된 류정한이 탈골 상태에서 1막을 끝내는 예술 투혼을 보여주고, 2막에는 김우형이 지킬 앤 하이드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당연히 공연의 흐름은 매끄럽지 못했고, 1막에서 류정한이 보여준 지킬 앤 하이드에 빠져들던 관객들은 2막에 등장한 또 다른 지킬 앤 하이드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두 명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본 것은 흥미롭긴 했지만 하나의 완성된 공연을 기대하던 관객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갑자기 2막에 투입된 김우형에게도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간극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1막에서 중요한 뮤지컬 넘버인 ‘얼라이브’와 주요 장면인 주교 살인 장면이 빠진 채 2막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관객들은 불만스러워했다. 또한 주요 배역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노래할 때 가사 전달이 부정확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됐다. 다행히 1막에서 류정한이 보여준 지킬 앤 하이드, 특히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하는 극적인 장면, 2막의 초반부에 다소 힘을 받지 못하던 김우형이 후반부에 보여준 지킬과 하이드의 동시 대결 장면, 루시 역의 소냐가 보여준 뮤지컬 배우로서의 풍부한 기량 등은 여러 실망스러운 점을 잊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공연정보 제목 :‘2006 지킬 앤 하이드’(뮤지컬) 일시 : 2006년 6월 24일~8월 15일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시간 : 평일 7시30분, 수·토요일 3시30분, 7시30분 일 2시·6시(월요일 휴무) 문의 :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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