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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노사 간 불신의 벽부터 헐자

[전문가 기고] 노사 간 불신의 벽부터 헐자

포항 포스코 본사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백주에 불법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근로자가 국가기간산업의 메카인 포스코를 기습적으로 점거한 것이다. 여기에다 파업 18일째를 맞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준을 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와 같은 불법 노사분규가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 노사관계의 현주소다. 우리의 노사관계가 후진적 상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법 규범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포스코 사태도 따지고 보면 전근대적인 원·하청 관계로 인한 다단계 하도급 문제로 법 제도 미비가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법 제도는 모든 참여자의 행위를 규율하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준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관련법 제도는 도처에 구멍이 나서 무엇 하나 시원하게 제대로 규율되는 것이 없다. 현재 참여정부의 임기 1년 반을 남겨두고 있지만 노동입법만큼은 여전히 모두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노사는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번 하반기에 국회가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법 제도는 비정규 보호법안이다. 지난 5년 동안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특별위원회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했고, 이를 토대로 공익위원 안이 성안됐으며, 정부는 또다시 이를 손질했고 국회도 밤샘 협상을 벌였다.

비정규직 법안 반드시 넘어야 할 산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을 뿐 노사 현장에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도 국회 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노사가 반대하고 민주노동당 등 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마냥 방치한다면 포항 포스코 본사 점거와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더구나 양극화 시대 희생자인 비정규직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이며,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노동시장의 준칙은 어떻게 바로잡아가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비정규직 법안을 넘게 되면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선진화법이다. 비정규직 법안이 남산이라면 선진화법은 백두산이요 한라산이다.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높고 깊다는 의미다. 선진화법은 결론부터 말하면 비정규법안보다 절박하다. 당장 2007년 1월부터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은 금지하게 돼 있다. 한 사업장에 여러 개 노조가 난립할 것이 뻔한데 사용자는 누구와 교섭해야 할지 대혼란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그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이 당장 금지되면 사업장마다 임금을 달라고 사용자를 압박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는 필자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이런 개혁입법은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질질 끌어온 해묵은 과제로 지금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 참여정부는 이를 기초로 24개 항에 달하는 각종 법 규정을 묶어서 선진화법이라고 하여 8월 14일에는 노사정 간에 타협을 시도하고 그래도 마무리가 안 되면 입법예고를 해놓고 이후에 손질할 시간을 갖겠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따라서 2006년 정기국회가 정부가 마련한 일정에 따라 처리하지 못한다면 참여정부 노동개혁의 로드맵은 물 건너가고 또다시 노사관계 개혁은 중도에 포기해야 된다는 점을 여야, 노사 모두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복수노조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당장 내년에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법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복수노조 시대 대비해야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현대자동차 등 산별노조 결성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도 따지고 보면 법 제도 마련의 미비가 한몫하고 있다.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은 노동기본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탓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별 교섭 과정에 일어나는 법적 대응조치 마련은 마냥 노사에 맡겨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초보적 법 제도 마련도 어렵게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쪽은 산별노조만이 살 길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산별 교섭은 시기상조라고 극단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산별 교섭 자체보다 노사 간에 불신의 벽이 더 큰 문제다. 노조가 산별 교섭을 들고 나온 이유가 기업에 도움을 준다고 할 때는 굳이 사용자도 이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유럽의 산별노조처럼 높아진 전문성을 토대로 노조 운영의 투명성과 노동운동의 건전성을 도모하고 기업 경영의 한 축으로서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고 파트너십이 발휘된다면 사용자도 앞장서서 산별 교섭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노조는 지금까지 산별노조의 전환으로 높아진 교섭력을 사용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제 노조는 산별 교섭이 교섭 비용을 줄이고 노조의 전문화를 통해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와 함께 사용자도 산별노조 전환이 무조건 정치투쟁이나 하려는 것으로 벽안시하는 풍조도 바뀌어야 한다. 포스코 사태, 현대자동차 파업, 대우건설 매각에 따른 노사분규 등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는 사건이 조속히 정리돼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건, 집중폭우로 인한 수해에다 노사분규까지 겹쳐 무엇 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는 게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그나마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 8년 만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정상화되면 지금과 같은 입법 과정에서 혼란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노동계는 정부, 노사정위원회 모두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호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또다시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투쟁의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이제 국민은 당장 걷어치우라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힘겹게 쌓아온 사회적 대화의 싹이 피지도 못하고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진용으로 재출범하는 노사정위원회가 산적해 있는 법 제도 마련의 해결사로서 역할을 다해주기를 국민은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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