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수의 BIZ 시네마] 한강 괴물이 수퍼맨보다 세다
[임준수의 BIZ 시네마] 한강 괴물이 수퍼맨보다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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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감독 : 봉준호 ■ 출연 : 송강호(중년 홀아비), 변희봉(구멍가게 주인), 박해일(무직 청년), 고아성(여중생) ■ 장르 : 모험, 액션, 스릴러, 드라마 ■ 상영시간 : 119분(7월 27일 개봉) ■ 제작비 : 110억원 ■ 제작/배급 : 청어람/쇼박스㈜미디어플렉스 한강의 괴물이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그 이름도 ‘괴물’이다.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야심작이자 ‘한반도’에 이어 연타석에 오른 또 하나의 국산영화다. 그 전엔 외국에서 건너온 수퍼맨과 해적의 위세에 눌려 국산영화들이 내리 죽을 쑤고 있었는데, 일부 국내산이 최근 들어 옛 영화를 되찾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한여름의 괴물이라니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납량물인가? 이름으로 봐선 그럴 것 같은데 괴물이 나오긴 해도 무더위를 식힐만한 공포물은 아니다. 모험,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SF…. 이것저것 뒤섞인 것이 많아 딱히 잡히는 주제가 없다. 언뜻 봐선 ‘킹콩’류의 판타지성 모험물 같으나 그게 아니다. 초장부터 괴물이 등장해 아이들의 비명깨나 듣겠다 싶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청소년 취향에서 멀어진다. 문제의 식인 괴물은 출신 성분부터 좀 수상쩍다. 킹콩처럼 밀림에서 나온 야생동물도 아니고 에일리언처럼 우주에서 생성된 변종도 아니다. 오염된 한강 물속에서 독극물을 먹고 숙주(宿主)로 자란 돌연변이라는 것. 한강에서 흔히 잡히는 기형 물고기의 확대판인 셈인데, 그 근원은 주한미군 병원이 한강에 방류시킨 독극 용액이라는 확실한 근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환경 문제에다 반미 정서까지 담은 정치영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주한 미군이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한강에 폐기한 사건은 몇 해 전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봉준호 감독이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스토리 라인을 잡은 것은 스크린 쿼터다 뭐다 해서 한국 영화의 기를 죽이려는 미국에 한방 먹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영화의 본령을 이탈한 엄숙주의가 지나치지 않나 싶다. ‘괴물’이 건드린 사회문제는 매우 무겁고 장중(?)하다. 그 대표적인 것은 공권력 폭력. 괴물에 잡혀간 아이의 가족들은 위험한 숙주를 접촉한 보균자라는 이유로 철저히 격리 수용되고, 경찰은 ‘살려 달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낸 아이를 구출할 생각조차 않는다. 그러니 어쩌랴. 피붙이들이 직접 괴물과 맞서는 수밖에. 이래서 영화는 괴물을 토벌하는 일가족의 무용담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가 손님을 끄는 핵심 요인은 일가족의 수용소 탈주와 원시적인 괴물 사냥인 것 같다. 이들이 휴대한 무기란 기껏 구식 엽총에 양궁 한 자루뿐. 헬기를 띄워 기관총을 쏴 대는 할리우드의 킹콩 소탕작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막판에 동원한 무기는 화염병 몇 개와 휘발유 한 통. 부상당한 괴물에 교묘히 휘발유를 뿌린 다음에 불화살을 날리는 화공(火攻)으로 섬멸작전은 끝난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기립박수를 보냈다는데, 원시 무기의 위력에 놀랐나 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주인공 가족들이 풍기는 구수한 서민 체취다. 한강변에 컨테이너를 끌어다 놓고 소풍객들에게 오징어나 팔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은 마누라가 없고 엄마도 없는 결손가정이지만 끈끈한 가족애로 똘똘 뭉쳐 있다. 약간 모자란 듯한 60대(변희봉)-40대(송강호) 부자의 모습이 찌들기만 했던 지난날의 우리 자태라서 정겹다. 이들이야말로 병든 사회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비정상적인 삶에 편입된 불쌍한 서민이 아닌가? 납치된 어린 손녀 딸을 구출하는 괴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혈족들의 임전무퇴를 촉구하는 노병의 출사표 연설이 사뭇 비장하다. “늬들 그 냄새 맡아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의 속타는 냄새 말여….” 땅 팔고 소 팔아 자식을 가르친 옛 부모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한강 둔치에서 오징어를 팔면서 손님 몫인 새끼 다리 하나를 슬쩍하는 버릇이 있는 소상인을 혹여 괴물 취급하는 젊은 관객이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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