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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협상 중간점검] 산 넘어 산, 3차 협상이 고비

[한·미 FTA 협상 중간점검] 산 넘어 산, 3차 협상이 고비

대규모 반대 시위 속에 한·미 FTA 2차 협상이 끝났다. 한·미 양측은 마지막 날 남아 있던 협상을 취소하는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다. 한·미 FTA의 산업별 쟁점을 짚어 봤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대.

태풍 에위니아의 북상을 알리며 장맛비가 쏟아지던 7월 12일 서울 종로 도심 한복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외치는 3만여 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뒤엉켜 시내 교통이 마비됐다. 사정은 350여 명의 한·미 협상대표단이 모여 FTA 2차 협상 사흘째 회의를 개최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기세 좋게 협상 시작을 알린 2월 초순과 달리 한·미 FTA 반대 전선이 날이 갈수록 확대되는 형국이다. 농민·노동자 뿐 아니라 영화·문화계 인사, 상당수 경제학자들까지 한·미 FTA 저지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들도 참여정부 남은 기간 중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한 한·미 FTA에 등을 돌렸다. 결국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찬반 지지율 역시 뒤집어졌다. 6월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찬성 측이 반대 측보다 많았지만, 7월 들어 전세는 역전됐다. 7월 12일 한 여론조사 결과, ‘FTA 체결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과반수를 넘은 52.3%에 달해 찬성 30.4%를 압도했다. 하지만 찬반을 오가는 여론의 모양새가 한·미 FTA가 한국에 가져올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득실을 오롯이 따진 결과인지는 의문이다. 실제 정부의 준비 부족과 홍보 전략 부재 탓에 국민의 눈과 귀가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에 쏠리고 있는 측면이 있다. 과연 한·미 FTA가 국내 주요 산업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냉정히 따져 보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윈-윈의 묘수 찾는 자동차 =
‘제조업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는 한·미 FTA 협상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심이 지대하다. 미국이 벼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70만9,000대의 자동차를 수출, 108억3,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반면 미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자동차 수출은 5,500대, 5억3,000만 달러에 그쳤다. 더욱이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가 휘청거리고 빅3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은 한국 자동차 시장의 완전 개방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평균 8~10%인 우리나라 자동차 관세의 즉시 철폐와 더불어 배기량 기준의 누진적 자동차 세제를 연비 또는 가격 기준의 단일 세제로 개선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자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대형차 위주 생산체제를 갖고 있어서다. 세제 개편 등 미 측 요구에 정부나 재계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지만 국내 자동차업계도 한·미 FTA 추진을 반기고 있다. 현대차가 앨라배마주에 30만 대 생산체제를 구축했고, 기아차도 조지아주에 30만 대 규모의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서 FTA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자동차업계는 한·미 FTA가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의 이미지를 개선해 줄 무형의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권영민 연구위원은 “미국이 일본이나 유럽 국가와는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여서 한국산 자동차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미국 업체와의 기술협력 확대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나 미국 업체 모두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 업체가 우회수출을 통해 한·미 FTA에 무임승차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협상단에 이를 막아 줄 엄격한 원산지 규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부활의 종소리 기다리는 섬유 =
우리나라 10대 수출품목 가운데 유일하게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뒷걸음치며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고 있는 섬유 산업은 한·미 FTA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이 타 제조업과 달리 유독 섬유 산업에 대한 보호의지가 강해 평균 관세율이 8.9%로 높고, 15~25%의 고관세 품목도 상당수여서 FTA를 통해 가격경쟁력 강화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유산업연합회(섬산연)는 미국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고 원산지 기준도 완화되면 연간 수출이 4억 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대미 섬유 및 의류 수출 23억2,700만 달러의 15%에 육박하는 것이다. 섬산연의 염규배 통상팀장은 “2005년 미국이 섬유쿼터를 폐지하면서 수출이 전년에 비해 5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면서 “FTA를 통한 미국 시장의 완전개방만이 경쟁력 회복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섬유업계가 실질적인 이득을 얻으려면 한·미 FTA 섬유 분과 협상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첫째, 미국 측 관세의 즉시 철폐 여부다.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미 섬유업계는 정부에 “관세철폐 기간을 최대한 장기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 섬유 산업의 가장 큰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는 ‘얀 포워드(Yarn Forward)’ 완화가 쉽지 않다. 의류제품에 사용된 실이나 직물의 원산지를 엄격하게 따지는 얀 포워드가 완화되지 않으면 중국·동남아 등에서 원자재를 구입·가공해 수출하는 상당수 국내 의류 기업은 관세 철폐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산업자원부 황규연 섬유생활팀장은 “얀 포워드의 완화 없이 단순히 관세만 철폐되면 FTA를 통한 대미 섬유 수출 증대는 2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동북아 허브의 발판 삼는다 =
금융은 한·미 FTA 협상에서 예상 외로 우리 측이 적극적인 분야 중 하나다. 미국에 비해 금융업계의 경쟁력은 시장 규모나 금융기법 등 여러 면에서 취약하지만 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산업의 개방과 자유화가 상당히 진척됐다는 자신감이 그 배경이다.
특히 동북아 금융허브로의 도약을 위해 정부는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2008년 시행하는 방안을 발표해 놓은 상태여서 한·미 FTA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신제윤 국제금융심의관은 “2차 협상에서 한국계 은행의 미국 내 10만 달러 이하 소액 취급 허용, 이사진 구성시 국적 제한 완화 등을 미 측에 요구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구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신금융서비스(한국에 없지만 미국에 있는 금융 상품)는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감독당국의 건별 허가를 거쳐 허용키로 합의했다. 미국 내 금융 회사가 국내에 지점이나 법인 없이도 금융 상품을 팔 수 있는 ‘국경 간 거래’ 역시 소매 금융을 제외한 거래는 허용키로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상품 목록을 작성키로 했다. 금융연구원의 신용상 연구위원은 “소비자 보호와 국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할 적절한 대응수단을 강구한다면 다양한 금융 상품이 한·미 FTA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방 파고에 숨 죽일 농업 =
한·미 FTA의 최대 반대 세력은 농민이다. 어느 산업보다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미 FTA로 농업 생산이 최소 9,000억원에서 최대 2조1,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선 3조원 이상 피해를 예상하기도 한다. 정부는 농산물 분야에서 “쌀은 개방에서 예외로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한·미 FTA에서 오히려 쇠고기 등 축산물 분야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한다. 윤석원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쌀은 이미 2004년 말 협상에서 미국 등과 관세화를 유예하기로 해 이번 협상에서 지키기가 수월하다”며 “미 측은 수입 재개와 함께 40%인 쇠고기 관세를 조기 철폐하도록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FTA 협상 향후 일정 * 3차 본협상 9월 11~15일(미국) * 4차 본협상 10월 23~27일(한국) * 5차 본협상 12월 4~8일(미 워싱턴) * 2007년 3월까지 협상 마무리 * 2007년 하반기 국회 비준 추진 * 2008년 한·미 FTA 발효 목표
정부는 농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개방을 통해 선제 대응한다는 계획이지만, 미국이 세계 최강의 농업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관세인하의 예외 등이 적용되는 민감 품목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 또 피해가 급증하는 경우를 대비해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농업 특별세이프가드의 도입을 관철시킨다는 계획이다.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는 “미국이 국내 농산물시장에서 한국 농민의 몫보다는 다른 수입국의 몫을 잠식하도록 협상전략을 정교하게 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업 분야에서의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농민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적정 수준의 보상대책을 정부가 치밀하게 준비하고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농업이 3차 협상의 쟁점

▶미국 대표단 환영 리셉션.

7월 11일 한·미 FTA 2차 협상 이틀째이자 의약품 협상 첫날. 미국 측 협상단이 “한국의 약값 적정화 방안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다음날도 미국 측 의약품 작업반 협상단은 협상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요구가 수용될 기미조차 안 보이자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13일 예정된 무역 구제와 서비스 분과에도 협상단을 내보내지 않았다. 미국 측의 일방통행에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2차 협상 마지막 날 남아 있던 상품과 환경분과의 협상을 취소했다. 2차 협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7월 한·미 FTA 2차 협상이 파행으로 막을 내렸지만 현 상황에서 협상 결렬을 우려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3차 협상에서는 더 날선 대립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데 벌써 놀라면 어쩌느냐”는 것이 양측 협상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얘기다. 커틀러 대표는 “상품 양허안(개방안)의 틀에 합의하고 상품·농산물·섬유 양허안을 8월 중순 교환키로 합의한 것은 진전”이라고 2차 협상을 평했다. 김 대표도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애초 기대했던 수준의 성과는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차 협상이 탐색전, 2차 협상이 샅바싸움이라면 3차 협상부터는 본격적인 힘겨루기”란 김 대표의 말에서 보듯 향후 협상은 적지 않은 난항을 피할 수 없다. 우선 2차 협상 파경의 주역인 의약품 분야의 ‘포지티브(의약품 선별등재) 시스템’을 놓고 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도 가격대비 효과가 우수한 FTA약품만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것. 미국 측은 자국 제약업계의 혁신적 신약이 차별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9월 1일부터 이를 강행할 계획이다. 오는 9월 5일 미국에서 재개되는 3차 협상에서는 농업 분야의 개방 이슈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며 최대 난제로서 본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측이 미국의 약점인 섬유와 연계해 농업을 얼마나 지켜 낼지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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