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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의 힘과 한계

금통위의 힘과 한계

▶이성태 한은총재가 금통위 대회의실에서 금통위 회의를 주재하고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대한민국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막강하고도 엄중한 자리다. 금통위가 결정권을 갖고 있?금리는 우리 경제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런 금통위가 누리고 있는 명예만큼의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은 독립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금통위의 독립성 또한 강화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금통위를 깊이 들여다봤다.
한국은행 본관 12층 금융통화위원회 대회의실 벽에는 초대 금통위원들이 회의하는 모습의 그림이 걸려 있다. 한은 관계자는 1950년 한은이 처음 창립될 당시 금통위에 참여했던 이들의 초심을 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은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못했다.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오랜 기간 중앙은행 고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일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좌절했고 울분을 토하며 한은을 떠나는 일도 있었다. 한은의 위상을 침해하는 정부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인 사표를 제출하고 물러선 비운의 총재도 있었다.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말은 낙심한 한은 직원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며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한은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중앙은행으로서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누가 굳이 치켜세우지 않더라도 한은 총재의 권위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한 외피에 불과하다. 정치권력에 찢기고, 재경부의 독주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특히 통화정책을 담당했던 금통위원들은 ‘꽃 보직’이란 이름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형식적 명예와 품위 유지를 위한 물적 조건들이었다. DJ 정부 시절 금통위원을 지낸 곽상경 교수는 <이코노미스트> 와 인터뷰에서 “결재 도장을 한 번도 찍은 적이 없으며 1년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금통위원이 있었다”고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그 자리 자체가 거수기 내지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었다는 고백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한국은행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져 왔다. 한국의 경제 수준과 규모가 커질수록 중앙은행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이와 함께 한은의 독립성도 어느 정도 확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6년 4월 한국은행에서만 40년간 일해온 이성태 총재 시대가 열리며 한은의 독립성은 한 차원 높아졌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금통위는 실질적인 막후 권력기관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금리 인상이 바로 이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재경부의 간섭도 줄고, 간섭한다고 해서 마냥 뒤쫓아 가지도 않고 있다. 그렇다면 금통위는 진정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독자적인 통화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직 유보적이다. 이번 금리 인상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는 말도 있다. 재계와 산자부 등 정부 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올린 이유가 부동산을 잡거나 물가에 너무 경도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성태 한은 총재를 비롯, 금통위원들이 잘 알겠지만 현직이라는 이유로 입을 닫고 있다. 지금의 금통위 모습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 아직도 금통위원이란 자리는 철밥통이란 것이다. 곽상경 전 위원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도 버틸 수 있는 최고 직장이 바로 금통위원”이라고 꼬집었다. 개발경제 시대 성장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한은과 금통위는 정치권력과 정부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권위주의는 해체되고 각 기관의 자율과 독립성이 강화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통화정책의 최고 결정기관인 금통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립에 대한 내부적 역량이나 치열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금리나 통화 정책은 이러한 독립성이 확보됐다는 전제 하에 위원들의 자발적 소통의 결과물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그렇게 되고 있는지 주목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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