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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항변... “우수한 인재는 대기업만 가니…”

‘차남’들의 항변... “우수한 인재는 대기업만 가니…”

중견기업인들은 ‘중견기업 육성방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일류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A기업 관계자는 “중견기업 육성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관련 법안조차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게 현실이다. 중견기업 육성책에 관한 얘기가 정부·학계·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피부로 느낀 중견기업은 많지 않다. 본지가 상대적으로 우량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15개 기업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은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고, 많은 애로점을 호소했다. 특히 세금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컸다. 중소기업을 갓 벗어나 매출이 500억~1000억원 사이 기업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이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이렇다. 현재 대기업은 법인세를 최저한세율을 적용해 이익의 13~15%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은 10~12%다. 또 우리나라 법인세율 상한이 25%인데 비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과세표준 1억원 이하일 때 법인세율은 13%다. 또 제조업 등 28개 업종에 있는 중기에 대해서는 지역·업종·기업 규모에 따라 5~30%의 세액이 감면된다. 이뿐 아니다. 중소기업이 현물 출자에 따라 취득하는 재산에 대해 등록세와 취득세가 면제되고,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투자할 경우 투자금액의 7%를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해 준다. 과세 연도에 발생한 연구 및 인력개발비의 15%도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이런 조세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추상적인 중견기업에 대한 개념 때문에 겪는 피해도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한중연)에 소속된 M그룹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한중연에 가입만 돼 있을 뿐 매출액과 인원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대기업이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그룹 다른 영업 관계자는 “매출과 수출 면에서 봤을 때 대기업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면 수입이 20% 이상 감소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생산하는 재영솔루텍의 최광 전략차장은 “매출액과 규모 등이 중소기업을 막 벗어났다고 해도 중견기업이라 말하기는 힘들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까지 줄어든다면 기업은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中企 ‘졸업’하면 정부 지원 끊겨 실제로 중소기업을 겨우 졸업하면 중소기업 육성 지원금 규모가 50% 이내로 줄어든다. 중소기업 육성 지원금은 인력 확충비, 사원 교육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대출금리도 기존보다 2~3% 오르기 때문에 각종 자금 유입 통로가 막히는 것이다. 캐릭터산업으로 매년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오로라월드’는 다른 어려움을 털어놨다. 오로라월드는 매출의 90%를 해외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약 200여 개의 국가에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취업희망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외국계 기업 취업 박람회 현장.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 캐릭터디자인 기업이 막상 우리나라에서는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라월드 김용연 기획홍보팀장은 “한국시장에 출품하기만 하면 ‘짝퉁’이 판을 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이 감소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로라월드 관련 ‘짝퉁’ 캐릭터들이 시장 점유율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라월드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잘나가는 중견기업으로 불리는 홍진HJC, 백산OPC 등의 기업들도 주로 해외수출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미국, 일본 등지에 시장을 형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이 까다로운 외국의 안전검사, 국가인증을 따기는 쉽지 않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해외시장 동향, 브랜드 파워 등을 조사하지만 이들 기업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백산OPC 노상정 부장은 “중견기업들에 대한 수출지원 정책이 상당히 미약하다. 예를 들어 해외설명회에 제품을 전시했을 때 많은 돈이 들지만 정부 측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그럼 이들 기업에 정부 정책만 효과적으로 열린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중견기업들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길을 막고 있다. 바로 낮은 브랜드 가치와 고급 인력이 제때 충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년 1000억원 이상씩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에이스침대와 국순당 같은 경우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카피와 ‘백세주’라는 브랜드를 확보하고 있다. 국순당은 얼마 전 ‘별’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지만 아직까지는 백세주가 주력 상품이다. 국순당 오봉환 홍보팀장은 “이미 ‘진로’라는 강력한 업계가 주류시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며 “소주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전통주’라는 이미지가 통했기에 브랜드 가치가 상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 낮아 고전하기도” 한편,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중견기업들은 우수 연구 인력이 확보되지 않아 울상을 짓고 있다. 메카트로닉스 업체인 삼익THK 이상도 이사는 “많은 지방에 위치한 중견기업들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충청북도에 있는 한 기업은 “서울에 있지 않고 중소기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우수 인력들이 쉽게 확보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로 본사를 이전하는 방안을 심각히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만 한다. 정부연구기관과 공동연구조차 쉽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수 연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기업의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1000억원 이상씩의 매출을 올리며 호황을 누리는 기업들도 이러한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 일류 중견기업이라 불리는 곳은 대부분 자체 노력을 통해 시장을 확보하고 기술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견기업들은 ‘확장’과 ‘유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진현 연구원은 “지금까지 규모가 큰 중견기업들은 ‘아웃소싱’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규모확장, 신제품 개발 등을 하지 않고는 기업유지가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중견기업에 관한 법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고 경고했다. 휴맥스의 장세찬 부장은 “정부는 분배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기업 수준에 맞는 지원을 융통성 있게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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