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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능 시험 SAT냐 ACT냐

미국 수능 시험 SAT냐 ACT냐

다년간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대입 수능 평가고사(SAT)와 잠시 화해한 듯했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대는 SAT를 질 나쁜 식당 음식처럼 취급하겠다고 위협하고 지원자들에게 SAT를 치르지 말라고 권고한 적이 있다. 그러자 SAT 주관사인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는 시험 문제 중 황당한 유추 문제(혹멧돼지와 돼지의 관계는 정치인과 무엇의 관계와 같은가?)를 없애고, 작문 시험(논술 포함)을 신설했으며, 보다 어려운 수학 문제와 더 많은 독해 문제를 추가했다. 그 결과 새롭게 개선된 SAT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SAT가 개선된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이 시험을 치렀다. 그들은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처럼 비틀거리며 고사장 밖으로 걸어나왔다. SAT에 관한 모든 행복한 얘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수험생·학부모와 진학 상담 교사들, 그리고 강좌당 1000달러를 받는 SAT 입시학원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새 SAT의 시험 시간이 너무 길고 체력을 고갈시킨다고 비판했다. 새 SAT는 시험 시간만 3시간 45분이고, 휴식 시간과 지시사항 설명 시간을 합치면 5시간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설상가상이라 할 사건마저 터졌다. 정확한 경위는 아무도 모르지만, 일부 SAT 답안지에 습기가 생기면서 연필 자국이 번지거나 흐려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그 결과 수험생 5000여 명의 성적이 잘못 나왔다. 심지어 그 문제가 시정된 뒤에도, 일부 대학 당국은 지원자들의 평균 SAT 성적이 급격히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많은 관계자는 그 원인을 수험생들의 체력 고갈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지원자들에게 더 이상 SAT를 치를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는 대학들이 많아졌다. 이 모든 사태는 또 다른 대학 입학 시험인 ACT(American College Test)에 관심을 보이게 만들었다. 아이오와주 아이오와 시티에 주관사를 둔 ACT는 SAT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수험생들이 덜 무서워하는 시험이다. 시험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ACT가 요즘 많은 고등학생에게 SAT의 대안으로 환영받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제 SAT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더 이상 견뎌낼 필요가 없게 됐다.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 고등학교에서 얼마 전까지 진학 상담 교사로 근무했던 로빈 레이디는 “요즘의 대입 시험 시장에서는 ACT가 주도권을 잡는 듯하다”고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의 대다수 학생은 아직 SAT를 치른다. 그러나 ACT를 치르는 학생 수가 지난 2년 동안 3배로 늘었다. 이 학교에서 그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이는 입시 시장에서의 권력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자리 잡은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는 미국의 여느 고등학교들보다 많은 학생을 명문 아이비 리그 대학들에 진학시키기 때문이다. 일리노이주 위네트카에 있는 뉴 트라이어 고등학교 역시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공립 학교다. 이 학교에서는 이미 ACT가 SAT를 누르기 시작했고 그 간격은 더욱 벌어지는 중이다. 소아 심장병 의사가 되는 꿈을 지닌 졸업반 학생 멜리사 켈러는 ACT를 세 번이나 치렀다. 켈러는 SAT보다 ACT를 더 좋아하는 이유로 (여러 차례의 시험 성적 중) 가장 좋은 점수만 지원할 대학에 보낸다는 점을 들었다.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ACT를 처음 치르던 날 몸이 아팠다. 그때의 평범한 시험성적이 대학 진학 과정 내내 나를 따라다니지 않으니까 다행이다.” 메릴랜드주 록빌 소재 리처드 몽고메리 고등학교 졸업반인 로빈 프라이웨스도 ACT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ACT는 추측성 답변이 틀려도 감점하지 않는 데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운 내용과 좀 더 직결되는 문제들이 출제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학들은 ACT보다는 SAT 성적을 더 요구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은 ACT 성적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미국에서 ACT 성적을 거부하는 대학은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의 하비 머드 대학뿐이다. 5개 주(州)는 ACT를 공립 고등학교 표준시험으로 채택했고, 따라서 모든 학생은 그 시험을 의무적으로 치러야 한다. 만점이 2400점인 SAT와 만점이 36점인 ACT는 점수 산정 방식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 점만 제외하면 두 시험은 미국의 미식축구와 캐나다의 미식축구 사이만큼이나 차이점이 없다. 잘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두 시험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SAT에서는 신설된 논술고사(25분간 치른다)가 필수지만, ACT에서는 논술이 선택이다. SAT의 시험시간은 3시간45분이고, ACT는 3시간25분이다. SAT는 비판적 읽기, 수학, 작문 등 세 과목의 시험을 치른다. ACT는 수학·과학·읽기·영어, 그리고 선택인 작문시험을 치른다. ACT는 작문시험을 선택할 경우 총 수험료가 43달러로 SAT의 41.50달러보다 많다. 그러나 ACT는 작문시험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엔 비용이 29달러에 불과하다. 2005년 고교 졸업생 중 ACT를 치른 학생 수는 120만 명이고, SAT의 경우는 150만 명이었다. 그러나 몇몇 고등학교의 진학 상담교사는 ACT가 결국엔 SAT를 따라잡으리라고 전망한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많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두 시험을 모두 보라고 조언하기 때문이다. 휴스턴 소재 메모리얼 고등학교에서는 그동안 SAT를 보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학교의 진학 상담 교사인 웬디 앤드린은 학생들에게 매년 두 시험을 치르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그 조언에 따르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제 ACT를 치르는 학생은 2002년 이래 18% 증가했다. 스미스대학 입학사정 책임자인 뎁 세이버는 고등학교 진학 담당 교사들이 학생들을 ACT 쪽으로 유도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ACT에 두려움이 비교적 적고, ACT 응시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실시된 SAT의 답안지 채점 과정에서 칼리지 보드의 하청업체인 피어슨 에듀케이셔널 메저먼트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진학 상담 교사들은 그 사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SAT는 그 실수의 세부사항이 언론보도로 조금씩 드러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수험생 4411명의 성적이 실제보다 낮은 점수로 대학에 통보됐고, 이를 시정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옳게 정정된 답안지의 17%는 그 점수 차이가 40점도 넘었다. 칼리지 보드의 개스턴 케이퍼튼 사장은 공개 사과를 하면서 “그 실수로 인해 우리는 겸손해졌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존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진학 상담 교사는 뉴욕시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인 칼리지 보드가 학생들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력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아직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다. 뉴저지주 소재 몽클레어 고등학교의 진학 상담교사 스콧 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칼리지 보드는 이 사건을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로 보면서 기술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이미 흔들려온 칼리지 보드의 신뢰성에 가해진 타격을 올바로 평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칼리지 보드 관계자들은 새로운 SAT의 수학 과목과 비판적 읽기 과목 성적이 평균 5점 하락하리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많은 진학 상담 교사와 대학 입학사정 담당자들은 성적 하락에 관한 그런 공식적인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칼리지 보드의 제임스 몬토야 부사장은 시험시간이 길어진 새로운 SAT가 도입되면서 수험료가 46% 인상됐기 때문에 재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평균성적 하락은 부분적으로 재시험률 하락과 관련 있다고 믿는다. 재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수학과 비판적 읽기 과목의 합산 성적이 30점 정도 올라간다”고 몬토야는 주장했다. 그러나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의 진학 상담 교사였던 레이디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SAT의 시험시간이 너무 길고,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이 학생들의 성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다수 명문대는 SAT의 신설된 논술과목(25분 동안 최대 2쪽 분량을 써야 한다) 점수를 신속하게 채택하는 듯하다. 칼리지 보드가 351명의 대학 입학사정 담당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4%는 SAT의 논술과목 성적을 입학사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새 SAT의 길어진 시험시간과 피로감 가중을 투덜대는 목소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메릴랜드주 베데스타의 SAT 학원 강사인 네드 존슨은 SAT가 한때는 ‘수학 적성 시험(Scholastic Aptitude Test)’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그런 뜻이 사라졌다면서 대신 ‘마비시키고 지치게 만드는(Stupefying and Tiring)’ 시험으로 부르자고 비꼬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험 당일 오전 7시45분에 정신이 맑게 깨어 있으려면 며칠 전부터 밤잠을 충분히 자두고, 당일 휴식 시간에 먹을 고열량 스낵 식품을 준비해 가라고 충고한다. 새 SAT가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ACT가 대신 득을 볼지도 모른다. 혹은 제3의 대안(두 시험을 모두 치르지 않는 방안)이 힘을 얻게 될 전망이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비영리단체 페어테스트는 시험 성적에 과도히 의존하는 것을 반대한다. 페어테스트는 700개의 4년제 대학에서 상당수 지원생의 입학 여부 결정에 SAT나 ACT 점수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SAT와 ACT 성적을 반영하지 말자는 얘기는 명문대 반열에 오르지 못한 대학들이 학생들을 유치하려는 홍보 전술 차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입학사정 요건에서 두 시험 성적을 아예 제외하기로 한 명문대도 많다. 최근 뉴저지주 대학 입학사정 담당자 협회에서 주관한 세미나가 성황리에 열렸다. 세미나에서 드루대학 간부 한 사람은 로버트 와이스버크 총장이 SAT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문제에 매우 열성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그 문제를 1년 더 검토해 보자는 대학 간부의 요청을 묵살할 정도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피처 대학은 2003년 입학 요강에서 SAT와 ACT 성적 제시 항목을 없앴다. 물론 그런 조치를 취하기 전에 걱정도 많이 했다고 로러 스캔데러 총장은 밝혔다. SAT를 치르지 않고 입학한 학생이 대학 측의 학문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그 조치 이후 지원자가 48% 증가했고, SAT나 ACT를 치르지 않고 입학한 학생들의 대학 성적도 좋았다. 1926년 도입된 SAT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 여전히 지대한 우려의 대상이다. 그리고 대다수 학교는 SAT 의존을 종식시킬 조짐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교육계에서는 SAT를 선택 사항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그리고 오늘날의 까다로운 소비자들 앞에서 SAT는 결국 노추(老醜)를 드러내면서 위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한때 모든 학생들이 가장 미워했던 그 위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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