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CEO와 Bar Talk④] “담뱃값 인상은 세금 인상 때문”

[CEO와 Bar Talk④] “담뱃값 인상은 세금 인상 때문”

▶1960년생 82년 레바논 아메리카대 졸 85년 동대학 경영학 석사 2002년 한국 필립모리스 부사장 2004년~현재 한국 필립모리스 사장

8월 22일 화요일 오후 8시.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9층 레스토랑 ‘타니’에 필립모리스 루트피 뮤파리지 사장이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사장’ 하면 연상되는 날카롭고 이지적인 외모가 아닌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앳된 미소를 지닌 그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의 실수로 뮤파리지 사장의 양복에 물을 엎질렀건만 오히려 기자를 더 걱정해주며 손수건을 건네줬다. 따뜻한 얘기들로 가득했던 그와의 네 번째 바 토크를 살펴보자.
"담배 피우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뮤파리지 사장이 물었다. ‘가끔씩’이라는 기자의 답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이네요. 왜 기자들 담배 없인 못 살잖아요. 담배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데….” 뮤파리지 사장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담배 회사, 그것도 세계 제일의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일까. 그가 말을 잇는다. “웃기죠? 담배 회사 사장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하니까. 근데 이건 저와 제 회사의 신조입니다. ‘담배의 해로움만큼은 분명히 알린다’는 거죠. 기업은 항상 ‘좋은 이윤’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흡연하고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도 충분한 사업 아닙니까? 흡연자를 더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은 올바르지 못한 거죠. 하지만 많은 담배 회사가 아직도 무차별적이고 윤리에 어긋난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더군요.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웃고만 있던 그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윤리경영’을 하고 있음에도 ‘더러운 마케팅 전략’에 밀리고 있는 게 분해서일까. “담배 얘기는 그만하죠. 좋지도 않은 얘기 왜 합니까?” 때마침 술과 안주도 나왔다. 오늘의 술은 ‘사케’. 일본 정종이다. ‘대포’라 하여 뜨겁게 데운 후에 마시기도 하지만 차가운 사케의 맛 또한 매력 있었다. 특히 안주로 나온 훈제 연어와의 궁합은 아주 좋았다. 뮤파리지 사장도 “소주보다 부드러운” 사케를 곧잘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웃겼던 것은 외국인임에도 한국의 ‘주도’를 아는 듯했다는 점이다. 기자에게 먼저 술잔을 권한 뒤 두 손으로 술을 따르는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이건 필수”라며 씨익 웃었다. 네 번째 바 토크도 유쾌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화염 속 도시 보며 춤판 벌여 뮤파리지 사장은 레바논 사람이다. 얼마 전 레바논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초토화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뮤파리지 사장이 걱정됐었다. 자연히 그와 관련한 질문으로 얘기가 시작됐다. “걱정을 많이 한 건 사실입니다. 근데 뭐, 이젠 워낙 익숙해져서…. 레바논에서 전쟁 일어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태연한 듯 했지만 뮤파리지 사장의 말끝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레바논인들은 항상 전쟁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고통의 시간이었죠. 그럼에도 400만의 인구가 아직 터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련하게 들리겠지만 ‘희망’을 가지고요. 사실 레바논에서 전쟁이 계속 일어나는 건 국민의 탓이 아니잖아요? 분쟁이 많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지. 전쟁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국가에서 태어난 숙명을 레바논인들은 받아들입니다. 지금 레바논에선 복구 작업이 한창일 거예요. 무너진 다리를 다시 놓으면서도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다리가 내일이라도 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레바논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아요. 오히려 낙천적이죠. ‘무너지면 또 짓지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래서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나? 쉴새없이 레바논 자랑을 하는 뮤파리지 사장의 모습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는 이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1982년, 제가 레바논에서 MBA(경영학 석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마침 전쟁이 터져 인근 대학생들이 도시 옆 산으로 대피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산 위에 앉아 전쟁의 화염이 커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친구들과 대피했던 산에 디스코텍을 만들기로 했어요. 또 한번 시작된 전쟁에 지쳐가는 대학생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하자는 생각에서였죠. DJ도 부르고 댄스 무대도 만들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곳저곳의 대학생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죠. 결국 도시에선 전쟁을 하고, 산에선 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졌죠. 이게 바로 레바논이 아닐까 싶네요.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즐거움만을 생각하죠. ‘동방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웃음 속에 무너진 다리를 세우고 있을 레바논인들을 생각하니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의 마지막 명대사가 생각났다.

국가의 주역은 젊은 층이어야 뮤파리지 사장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인생사가 궁금했다. “우리 집은 사실 의사집안이에요. 그러고 보면 전 ‘미운 오리 새끼’인 셈이었지요. 대학교 때 생물학과 화학을 전공해 의대에 진학할 준비를 했었죠. 하지만 마지막 기말 고사를 일부러 치르지 않았어요. 의대에 가기 싫었거든요. 부모님은 노발대발 하셨지만, 제겐 제 길이 있다고 설명했어요. 다시 비즈니스를 공부하고 필립 모리스에 입사하고. 하루하루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더군요. 결국엔 열정인 것 같아요. 제가 그냥 의대에 진학했더라도 어느 정도 여유있는 삶을 살았겠죠. 그런데 재미없잖아요? 하루하루 사는 게 지금처럼 보람차고 즐겁지 못할 거예요. 제 길을 갔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아직 말할 순 없어도 전 제 자신이 좋아요.” 이번엔 한국에 관해 물었다. 그가 4년간 살면서 보고, 듣고, 느껴온 국가에 대해.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뎠죠. 오자마자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어요. 회사가 시청 근처에 있어 수많은 사람이 응원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죠. 다 같이 한마음이 되어 그처럼 열정적으로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한국이란 나라의 잠재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죠.” 여기까지 말한 뮤파리지 사장은 당시의 감격을 되새기는 듯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기도 모르게 한국을 응원하게 되더라면서 아직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나라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보수적인 중장년층입니다. 이들은 가는 담배든 보통 담배든 한 가지만을 고집하며 ‘정통’을 강조하죠. 반면, ‘새로움’을 갈망하고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젊은 층은 담배도 자주 바꿉니다. 이 젊은이들이야말로 국가의 주역, 원동력이 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만난 여러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니 예부터 한국 사회는 노인이 움직였던 사회였더군요. 변화를 거부하고 고리타분한 원칙만을 강조하는 사회였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 응원은 젊은이들을 깨어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수십,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중심부, 즉 시청을 ‘장악’했다는 것에 큰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확실히 젊은이들의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젊은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죠. 패션·영화·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이 문화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렇게 파워풀해진 것은 한국으로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 아닐까요?” 사케로 목을 축인 그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젊은이들의 문화가 한 시대의 ‘반짝’ 트렌드로 전락하면 안 되는 일이죠. 그러기 위해선 한국의 교육 시스템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 또한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높이 삽니다. 그러나 그 열정의 최종 목표가 대학에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교육 또한 ‘정보를 쑤셔 넣는데’ 급급한 겁니다. 이래선 안 돼요. 창의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도록 해야죠. 그래야만 국가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투명한 사업환경 조성에 힘써야 부드럽게만 넘어가던 사케는 이젠 제법 쓴맛이 났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쉬지 않고 마셨으니 취할 만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사업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한마디, ‘불투명함’이었다. 이보다 더 경계해야 할 말은 없단다. “투명경영을 해야 합니다. 특히 몇몇 대기업만의 ‘판’인 한국 같은 나라에선 더욱이요. 작은 회사건 큰 회사건,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는 거죠. 시장의 모든 기업에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5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느낀 건 아직까지 정치 등 기업 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겁니다. 기업뿐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정부도 마찬가지죠. 모든 것에 솔직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좋은 기업도 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기업 규제 또한 투명해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내용과 이유도 모르는 규제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요.” 세금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세금 또한 마찬가지죠. 사실 세금은 모든 기업의 관심사 아닙니까? 한국에선 얼마나 세금을 내야 하는지, 무슨 세금이 부과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세율이 일정치 못하기 때문이죠.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당장에 오늘, 내일의 세금이 다른데, 무슨 수로 기업들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고통받는 건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를 예로 들어볼까요? 지난 몇 년간 담뱃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세금이 올랐기 때문이죠. 그러나 과연 소비자들 중 세금이 왜 올랐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요? 결국에 소비자들은 기업을 원망하게 되고 자연히 기업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죠. 가장 좋은 세제를 운영한다는 호주는 세율을 일정하게 인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업엔 ‘안정성’과 ‘예측’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가 한국에선 불안한 것이죠.” 은퇴 후엔 지중해 근처에서 테니스나 치며 살고 싶다는 뮤파리지 사장. 이전의 바 토크들을 읽어봤다는 그는 이 말 한마디만은 국내 외국인 CEO들에 전해달라고 했다. “한국인이 소극적이라는 몇몇 외국인 CEO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조금만 더 견뎌보라고 말이지요. 일단 마음을 열면 한국 사람들같이 ‘쿨’하고 따뜻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뮤파리지 사장이 마지막 건배를 권했다. 잔을 부딪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I love Korea.”


취재 뒷얘기들….


“나이트 클럽의 부킹은 정말 즐거워”
▶뮤파리지 사장은 주말이면 압구정 일대의 와인바들을 주로 즐겨 찾는다고 했다. 아내랑 새로운 술집들을 ‘뚫으면서’ 하는 데이트, 정말 재미있다고. 친구들과 나이트 클럽에 갈 때도 많다. 특히 나이트 클럽에서의 부킹은 너무나 신기하고 즐겁다고. “부킹이란 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굉장히 창의적인 방법 같아요. 진짜 이런 건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생겨야 하는데…. ” ▶한국의 술 문화. 술 잔이 비면 따라주고, 누가 잔을 권하면 얼른 마시고 잔을 채워 돌려주는 게 ‘예의’다. 하지만 뮤파리지 사장에겐 이런 한국의 ‘주도’가 처음엔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그래서 “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느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떤 ‘주당’보다도 ‘주도’가 좋다. 오히려 술잔이 오고 가야 정이 오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 ▶뮤파리지 사장의 가장 큰 특기이자 취미는 테니스다. 준프로급 실력의 소유자다. 최근에는 골프도 시작했다. 골프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안 칠 수 없기에 치기 시작했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산의 타워호텔은 뮤파리지 사장에겐 최고의 명소다. 테니스도 칠 수 있고, 골프 연습장도 가까워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