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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과학계의 배아줄기세포 전쟁

종교-과학계의 배아줄기세포 전쟁

획기적인 추출 신기술 연구 둘러싸고 서로 엇갈린 평가 처음엔 과학의 일대 개가라는 평을 받았다. 과학 전문지 네이처의 인터넷판에 미리 발표된 뒤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 전역에 소식이 알려졌다. 지난주 과학자들은 사상 처음으로 배아를 손상시키지 않는 신기술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했다고 발표했다. 기독교 보수파의 환심을 사면서 정체에 빠진 배아줄기세포 연구 관련 연방지원 문제의 돌파구를 뚫는 생물학계의 위업이었다. “지금까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곧 배아 파괴와 동의어였다”고 이 연구를 주도한 의사 로버트 랜자(50)는 말했다. 그는 바이오텍 기업인 어드밴스드셀테크놀러지(ACT)의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이다. “앞으로 그 공식이 바뀌게 됐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그 점은 불분명해졌다. 랜자의 연구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보니 그는 새 방법을 제안했을 뿐 그 방법이 제대로 통하는지는 입증하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인간 배아에 의존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피해 가기는 여전히 어렵다. 백악관은 그 보도를 “고무적”이라고 평하면서 대외적으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일부 보수파, 특히 가톨릭 교회는 훨씬 더 비판적이었다. 자신들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과학자들이 배아의 윤리적 측면을 고려하게 됐다면서 도덕적 승리를 주장하는 한편 랜자의 기술을 일축했다. “배아세포를 항상 죽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조작하고 손상하고 공격하는 데 반대한다”고 미국 가톨릭 주교협회단의 리처드 두어플링거는 말했다. 그는 랜자가 연구의 자세한 내용을 일반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속인다고 비난했다. 지난 주말까지 이 과학계의 “돌파구”는 정치적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보통의 경우 배아줄기세포는 150개 내외의 세포 덩어리인 배반포기의 배아에서 채취해 배양한다. 그 과정에서 배아가 파괴된다. 랜자는 태아의 유전병 이환을 미리 막을 용도로 사용되는 착상 전 유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PGD)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16개의 배아에서 단세포를 추출한 뒤 그 세포 두 개를 새 배아줄기세포주 안에서 배양했다. 실험을 통해 배아줄기세포주를 배양하면서 배아를 보존하는 일이 이론상으론 가능하다고 나왔지만 랜자가 실제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세포주를 만들려면 너무 많은 개별 세포(총 91개)가 필요해 각 배아에서 다세포를 추출해야 한다. 결국 배아 16개는 모두 파괴됐다. 랜자는 PGD를 통해 단세포 추출의 유효성은 입증됐다고 말했다(세포 하나를 잃은 배아들은 건강한 아기로 자랐다). 단세포가 배아줄기세포주로 자란다는 사실을 보여 준 점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랜자의 연구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과학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한 기술발전”이라고 하버드대의 줄기세포 연구자 조지 데일리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기술적 의문이 여전히 많다고 데일리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가 말했다. 랜자의 연구를 재현하려고 드는 과학자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과학적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미 과학자들은 전통적 방법으로 더 많은 줄기세포주를 추출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나 당뇨 같은 질병을 목표 삼아 “특정 질병용”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려는 과학자가 많다. 랜자의 방법으론 그런 연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과학 연구가 종교계나 정계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올바니 의대(뉴욕)의 생명윤리학자 글렌 맥기는 영리 기업인 ACT의 연구는 “소중한 과학 연구보다는 도덕적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딱한 시도”라고 말했다. 자신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중대 연구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2000년 ACT의 윤리위원회에서 사임한 맥기는 정치적으로 “이것이 먹힐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지 W 부시는 2001년 줄기세포 정책을 채택한 이래 만들어진 줄기세포주 연구와 관련해 일체의 자금 지원을 거부해 왔다. 양당 의원들이 새 줄기세포주의 지원법을 통과시킨 지난 7월에는 취임 이래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조만간 그의 입장이 바뀔 조짐은 없다. 그러나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 랜자의 신기술이 마침내 성공하면 부시가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윤리적 우려를 충족시키리라 본다”고 2001년의 줄기세포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했던 부시의 전 측근 제이 레프코위츠는 말했다. 그러나 많은 보수세력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작다. 그들은 결함 있는 배아를 솎아내는 PGD 방법에 반대한다. 또 단세포 그 자체가 생존 가능한 배아로 자랄 가능성을 우려한다. 잠재적 생명을 파괴한다는 “내내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가톨릭 신자로서 백악관의 생명윤리 분야 보좌관으로 일하는 프린스턴대 교수 로버트 조지는 말했다. 랜자는 비난에 익숙하다. ACT는 2001년 인간배아 복제 관련 보도를 과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연구실 책임자가 아니었던 랜자는 과학을 옹호하면서도 자기 같으면 사태를 다르게 처리했으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자신의 길을 계획한다. 매사추세츠의 작은 호수 안의 섬에 살면서 자연산 기물을 수집한다. 1600여㎏이 나가는 자수정과 1.8m에 이르는 공룡 대퇴골 등이다. 맥기를 비롯한 사람들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자신의 목표는 과학 발전이라고 말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왔다.” 그러나 줄기세포 과학이라는 흐릿한 물속에선 그 “옳다”는 것의 정의가 딱 부러지게 명확하지 않다. With JONATHAN MUMM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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