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양책도 효과 없을 것”
“어떤 부양책도 효과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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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동안 자제해왔던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들 모양이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솔솔 흘러나왔던 얘기다. 불은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붙였다. 지난 10월 20일 한 강연에서다. 그는 이날 한국 경제를 “사실상 불황”이라고 규정했다. 다 아는 얘기였지만, 낙관론으로 일관했던 정부가 태도를 바꿨다는 데 여론은 주목했다. 이후 정부와 여권은 ‘경기부양 분위기 조성’에 한창이다. 사실상 시기와 강도 조율만 남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12월께면 정부의 입장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를 살려야 하는 것은 맞다. 정부가 마냥 손놓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방법인데,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재정 조기집행 및 확대, 금리인하, 감세 등이다. 이것은 역대 정부가 썼던 전통적인 경기부양 방법이다. DJ 정부 때처럼 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나눠주는 식의 극단적 방법은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현 정권은 출범 이후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기조가 바뀐 것은 최근이다. 재경부 내에서 공공연히 ‘거시정책 기조를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불과 얼마 안 됐다. 기조를 바꾼다는 것은 ‘중립’적인 자세에서 ‘부양’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을 어떻게 볼까? 이코노미스트는 거시경제를 전공한 20명의 경제학과 교수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명 중 15명은 반대였고, 3명은 찬성, 2명은 부분적 찬성 의견을 보냈다.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답한 교수들도 대부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예를 들면 재정 조기집행 등의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적극적 부양책이나 단기정책은 안 된다고도 못박았다. 대부분 응답 교수들은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활성화해야 하지만 정부가 나서 부양정책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대신 “기업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기업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데 주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나라 경제의 큰 결정을 앞두고 정부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경제 자생력 잃고 있다” 우선 찬성 의견을 보자. 이우헌 경희대 교수는 “우리 경제가 올 1, 2분기에 정점을 찍고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가 불황으로 들어가면 선제적인 경기안정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준 상지대 교수 역시 “한국 경제가 서서히 자생력을 잃어가는 단계인 것 같다”며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부양책 등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성균관대 교수는 “현 상황을 볼 때 부양책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우헌 교수는 방법론으로 “감세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 역시 큰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정부가 불황을 타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경기부양책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를 인센티브에 부합하게 개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정부 지출보다는 감세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재정의 조기집행도 당겨 쓰는 것에 불과해 반짝 효과만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감세는 기업이나 개인의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때가 되면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감세정책을 쓴다고 곧 기업투자가 늘고, 소비가 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핵문제, 내년 대선 등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기업 옵션이론에서 보듯 기업투자가 감소한다. 개인 소비도 감소한다. 큰 효과가 기대되지 않음에도 감세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불황을 타개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나타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없다면 경기는 더욱 침체될 수 있다. 금리인하 역시 불황이 가시화되면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당장 경기가 회복되리라고는 보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버블을 예의주시하며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김준영 성균관대 교수도 “정부 지출은 지난 몇 년간 해본 결과 별 효과가 없었다”며 “감세를 생각해볼 수는 있고, 금리인상은 안 되고 인하를 검토해볼 필요는 있는데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김준 상지대 교수는 “경기부양책이 필요는 하다고 보지만, 단기적 성과가 아닌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국신 중앙대 교수는 “경기가 나쁠 때 부분적으로 예산을 조기집행하는 등 부양책을 쓰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예전의 신경제 100일이니 하는 터무니없는 정책은 두고두고 경제에 주름살을 끼게 하기 때문에 정부가 성의를 표시한다는 차원에서 큰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수준의 정책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개입은 부작용만 키워 반면, 다수의 경제학자는 정부의 경기부양책 자체를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조성훈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 “북핵 영향과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고, 정치적 사이클(내년 대선)하고도 연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부양책은 아니다”고 단정했다. 조 교수는 “경기 변수의 파급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단기적 부양책을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그동안 부양책도 효과가 미미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쓰기 쉬운 재정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재정적자가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재정정책은 무리고, 더욱이 재정정책은 경기부양책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나 소비는 심리적 요인이 큰데, 무리하게 정부가 나서 사업을 벌인다고 해서 심리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통화 측면에서는 하락시키는 것보다는 상승국면을 줄이면서 투자심리가 자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 역시 “전통적인 방법의 재정지출, 금리인하가 현재로서는 쉽지가 않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정부 부채가 높은 수준이고, 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자산 버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선빈 고려대 교수도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경기부양책이 나오는 것 같은데, 원칙적으로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좋지 않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교수는 “경기가 안 좋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경제의 문제 자체가 경기부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더더욱 단기적 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권이 강하게 주장한 금리인하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장용성 서울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금리 때문에 기업투자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불확실하고, 방향이 없기 때문”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투자가 안 되는 것은 기업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과 불확실성 때문이고, 국민도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지출을 안 하는 것인데, 금리가 인하된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오히려 부동자금만 많아져 투기가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명훈 명지대 교수는 인플레이션 폐해를 크게 우려했다. 이 교수는 “경기를 부양하려면 통화를 풀어야 하는데, 이미 통화가 많이 풀려 있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는 가운데 섣불리 부양책을 쓰는 것은 반대”라며 “경기가 나쁜 상황이지만 통화를 풀어 인플레 폐해를 크게 하기보다는 어렵더라도 차근히 경제를 다져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일자리 늘리도록 해야” 구재운 전남대 교수는 “금리인하는 과잉 유동성 문제로 고려되어서는 안 되며 정부 부문도 비대해져 있으므로 재정지출 확대도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경제학자는 “효과가 불분명한 경기부양책보다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효과적인 부양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구재운 전남대 교수는 “경제위기 이후 계속 본격적인 호황국면을 맞지 못한 이유는 소비와 투자의 견실한 증가가 없기 때문이며, 이는 유동성 부족이나 정부지출의 부족보다는 구조적인 요인과 관련이 크다”며 “섣부른 경기부양책보다는 기업환경 제도의 개선 등 구조적인 요인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장용성 서울대 교수 역시 “부양책보다는 규제개혁이나 기업환경을 개선할 때”라며 “정부가 나선다고 민간보다 더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명훈 명지대 교수는 “기업이 설비투자를 하게끔 규제를 풀어주고 우호적인 기업환경을 만드는 데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철수 숙명여대 교수는 “단기적인 경기부양 조치는 비효율적인 사업을 장려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특히 정치적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경기부양과 경기활성화는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우리 경제 규모에서 보면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를 주도하는 것은 기업인데 정부가 나선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기업이 주도할 수 있도록 제도정비나 규제완화 등 뒷받침을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우헌 경희대 교수는 “최근 경기변동 주기가 짧아지고 영세 자영업자, 서비스 산업의 체감경기가 나쁜 것은 무엇보다도 성장 양극화와 관련이 있다”면서 “가장 좋은 경기부양책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성장정책이고, 이를 위해 정부는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를 인센티브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 사이에 정부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도 확인됐다. 이영섭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기업투자에 딴죽이나 걸고, 기업이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도록 자꾸 경제 외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는 일에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경기부양책은 내용이 문제인데, 하나는 일시적인 마약주사 같은 부양책이고, 또 하나는 장기적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시적인 재정지출로 총수요를 늘리는 것은 마약 같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민간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밝혔다.
“단기부양은 마약주사와 같아” 신태곤 부산대 교수는 “기업들이 내년 경영계획도 못 세우고, 돈을 쓰지도 않는 이유가 ‘못 믿겠다’는 것 아니냐”며 “기업가가 신나서 열심히 투자하려는 자세를 살려주지 못하면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은영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없어 보인다”며 “정부가 돈을 뿌리는 정책으로는 절대 경기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기업이 돈을 쓰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없고, 정부 리스크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우현 숭실대 교수는 “감세 문제만 보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늘었지만 중산층과 서민은 붕괴됐다”며 “이런데 세금을 감면한다고 해서 지출이 늘지 않을 것이고, 감세를 통해 효과를 본 나라들을 보더라도 국민 경제 미래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국신 중앙대 교수는 “이 정부 들어 이른바 가진 자와 대기업을 겁주고, 옥죄고 몰아세우면서 경제의 분위기를 흩트려놨기 때문에 정부가 뭘 해도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일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거시정책 기조를 바꿀 만큼 심각한 불황은 아니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안승욱 경남대 교수는 “우리 경제가 염려할 만한 수준의 큰 불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침체기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강한 정책보다는 가볍게 중하층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도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이나 세계 경제가 괜찮고, 주식시장은 안정되고, 유가는 떨어지는 등 우려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다”며 “굳이 경기부양책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문제가 악화되면서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거시경제 정책 기조를 변경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한 ‘완만한 경기둔화세가 진행되고는 있으나 잠재적 위험요인이 급격히 실현되지 않는 한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경기진작을 위한 통화정책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이런 얘기도 했다. “경기부양책은 정권 말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정책이다. 내년 3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나올 때쯤이면 완전한 대선 정국이다. 이때 만약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낮으면 현 정권으로서는 곤혹이다. 그 때문에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집행하면서 돈을 풀면, 3분기쯤이면 성장률을 0.5% 가까이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것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경제체질이 좋아지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된다. 정부가 쓰겠다는 경기부양책은 전형적인 선거용이자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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