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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 위협하는 석유달러

세계 금융 위협하는 석유달러

기름값의 완만한 하락 추세가 지속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유가 하락 흐름을 중단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감산 합의 조짐을 보인다. 이런 와중에 모든 논의는 유가가 얼마나 떨어질지, 혹은 보다 저렴해진 유가가 인플레이션 위협을 완화하고 저금리 유지에 기여하면서 세계의 경제 성장을 자극할지에 모아진다. 그러나 이 모든 추측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불길한 동향은 변함이 없다. OPEC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가 올해로 23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들, 특히 미국은 에너지 안보라는 측면에서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서방진영의 OPEC 석유자원 의존이 계속되는 상황에 덧붙여 OPEC의 또 다른 자원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금융 위협이 떠오른다. 바로 석유 달러다. 2006년 OPEC의 경상수지 흑자는 24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흑자를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는다. 한편 미국 경제는 1973년 이래 에너지 사용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변했고, 따라서 어느 면에서는 석유 충격에 덜 취약해졌다. 그러나 금융 충격에는 더욱 노출됐다. 1973년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달러화를 겨냥한 공격에 비교적 안전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 채권국들에 3조 달러를 빚진 미국은 해외로부터의 금융 위협에 훨씬 더 취약해졌다. 대다수 아시아 국가와 달리 많은 OPEC 회원국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공신력 있는 사설 투자기관들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그 관리 실태를 감춘다. 또 지난 3년간 외환보유액이 2배 이상 늘어난 이란과 30% 증가한 베네수엘라의 중앙은행들은 모두 노골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자국 정치 지도자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만일 미국과 이란, 혹은 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에 정치적 대결 상황이 벌어지면 이들 두 나라는 금융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규제를 받지 않는 특정 헤지펀드들로 하여금 금융상의 문제를 촉발하도록 사주함으로써 이에 겁을 먹은 더 광범한 투자자들이 서둘러 금융시장에서 빠져나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는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된다. 물론 이것은 바보 같은 전술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그들 두 나라가 보유한 달러의 가치도 함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 두 나라의 정책은 경제논리가 아닌 민족주의적 정치논리에 바탕을 둔 극단적인 행동으로 점철돼 왔다. 오늘날 중동은 1973년과 똑같이 심각한 외교정책상의 혼란을 보인다. 에너지와 관련된 보다 심각한 지정학적 문제도 많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이란은 핵무기를 획득하려 애쓰고, 러시아는 이웃 나라들을 협박하는 데 자국의 에너지 산업을 이용한다. 또 중국은 이란·베네수엘라·수단·미얀마처럼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가들에 무역·원조상의 양보를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공급원들을 장악하려 한다. 사실 30년 전에는 미국 석유회사들이 시장을 좌우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세계 석유 매장량의 80%가 대담해진 국영 석유회사들의 관리를 받으며 이들 회사는 자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목표들을 반영한다. 미국의 석유 수입(輸入)이 국내 기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30년간 2배로 늘어 60%다. OPEC이 또 한번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할 경우 성공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옛 소련 지역과 아프리카 등 석유 공급원이 점차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1973년 이래 전략적 석유 비축량을 늘려왔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도 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는 석유 시설의 안전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에 위협을 가해왔다. 또 페르시아만산(産) 석유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같은 운송 관문들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됐다. OPEC은 또한 유일하게 긍정적인 동향을 약화시킬 능력이 있다. 1973년 이래 더 많은 자금이 대체 에너지 개발 부문으로 유입되는 동향에 관한 얘기다. 클라이너 퍼킨스 같은 선도적인 벤처 자본 회사들과 칼라일 그룹 같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들은 생물 연료(석유·천연 가스·석탄 등)에 투자한다. 그리고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도요타 같은 다국적기업들은 온실가스 방출을 규제하는 에너지 보존 원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OPEC은 유가 조절 능력을 이용해 각종 대체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유가가 계속 오른다는 가정 아래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다)를 수익성 없는 사업으로 만들 만한 위치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기름값을 너무 오랫동안 높게 유지하지 않으려는 동기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석유 시대가 조만간 끝날 가능성은 없다. 화석 연료 의존도 심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25년간 전 세계 석유 수요가 50% 증가하리라고 추산한다. 주 원인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공업화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IEA에 따르면 석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데만도 향후 25년간 약 4조 달러를 석유 탐사와 생산시설 구축에 신규 투자해야 한다. 이는 OPEC의 금융 부문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산유국들의 외교적 수단은 더욱 늘어나며, 그들 나라에 대한 서방진영의 굴욕적인 의존도는 더욱 심화됨을 의미한다. 이외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면 기꺼이 들어 보고 싶다. (필자는 예일대 경영대학원 국제 무역·금융 분과의 후안 트리페 석좌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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