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사망 그 후
독재정권의 유산 신속히 해결 못하면 내분에 빠질 위험 그의 사진이 신문 1면에 등장했다. 그가 거느린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했다. 그의 요원들이 대통령 암살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그의 오른팔은 중앙정보부를 조용히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비밀리에 동료 장군들을 만나서 앞으로 국가 정체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지 몇 시간씩 논의했다.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장은 국가수반도 정부수반도 아니었다. 그런 직함은 직업관료인 최규하 대통령 서리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피살된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고 그가 없는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가 오자 정승화 대장과 그의 군대가 거의 모든 명령을 내렸다. 일주일간의 공식 애도 기간이 지난 뒤에 벌어진 장례 행렬에는 죽은 대통령을 존경했던 200만 명의 국민이 뒤따랐다. 국화로 덮인 영구차가 지나가자 국민은 울부짖었고 이를 호위하던 경찰들도 넋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박 대통령의 정적 탄압에 실망해온 상당수 장군은 박정희의 독재 정권이 끝났으니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한 사이러스 밴스 미국 국무장관은 개인적으로 조심스러운 민주화 개혁을 권고했다. 정승화 장군과 군부는 박 대통령 암살과 그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주요 용의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그는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는 청와대 근처 궁정동 안가에서 저녁 만찬 중에 박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쐈다고 알려졌다. 지난주 일반 범죄자처럼 수갑이 채워진 채 취조 과정에서 생긴 멍자국이 얼굴에 있고 초췌해진 김재규의 사진이 공개됐다. 한 고위 관리는 “그는 재판을 받고 처형될 가능성이 크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수사관들은 사건 당일 만찬에 초대된 네 번째 인물인 김계원 비서실장도 심문했다. 감옥에서 찍힌 사진 속 그의 모습은 평소보다 차분했다. 그러나 수사는 적어도 80명의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한국군 일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발적 암살로 보고됐던 이번 사건이 사실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군부 인물들이 함께 꾸민 쿠데타의 시작이 아니었느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런 추측의 상당 부분은 정승화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 쉰세 살의 육군참모총장은 김재규와 마찬가지로 최근 박 대통령의 억압 정책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봐 왔다. 그리고 둘 다 대통령과의 접촉을 막는 차지철을 미워했다. 암살 당일 밤 정승화는 안가의 다른 건물에서 저녁을 먹다가(총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곧 김재규와 함께 육군본부 지하 벙커로 갔다. 그랬다가 다시 국방부로 향했는데 김재규는 거기서 몇 시간 뒤 체포됐다. 정승화의 계엄정부는 수사 내용을 함구했지만 몇몇 흥미위주의, 그러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소문이 서울 장안을 떠돌았고 거기서 정승화는 암살 공모자가 아닌 영웅처럼 묘사됐다. 이런 소문들에 따르면 김재규는 정승화를 암살 계획에 끌어들이려고 궁정동 안가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그를 불렀다. 정승화는 밥을 먹다가 총소리에 놀랐고 김재규가 차를 타고 안가를 떠나자(두 대의 차가 떠났는데 뒤차에 경호원들이 탔다) 더욱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재규는 저녁 먹으려 벗었던 구두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정승화가 저녁을 먹고 있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주전자의 물을 들이켜고 정승화에게 “갑시다. 여기를 떠야 합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김재규는 자신의 운전사에게 빨리 중앙정보부로 가자고 했다. 가는 도중 김재규는 정승화에게 대통령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통령께 무슨 일이 생겼다”며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했다고 한다.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 정승화는 계엄령을 내리려면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하니 그리로 가자고 말했다. 후에 국방부로 간 정승화는 그곳으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불러들였다. 잠시 후 최규하 총리(곧 대통령 서리가 된다)와 김계원(운명의 만찬 자리에 함께 있었던 네 번째 인물)도 합류했다. 긴장된 분위기에서 몇 번의 내각 회의를 한 뒤 김계원은 정승화를 한쪽으로 데려가 박 대통령과 얄미운 차지철이 죽었다고 말하며 김재규의 말에 따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승화는 암살 공모자들 진압에 나섰다. 일부 진술에 따르면 그는 김계원을 직접 무장해제시켰다. 또 다른 진술에 따르면 그는 김재규를 곁방에 가두고 경비병 스무 명을 불러 그와 경호원 다섯 명을 체포하게 했다. 김재규를 차에 밀어넣자 그는 숨겨진 권총을 뽑으며 저항했지만 가라테로 진압당했으며, 그가 숨겨진 또 다른 무기를 꺼내려 했을 때도 무력으로 다시 제압됐다. 이는 김재규 얼굴의 멍자국을 설명하려고 돌아다닌 얘기들이었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했다. 그러나 김재규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는 없다. 또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도 여전히 많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김재규는 차지철을 먼저 쐈다. 공수부대 출신이었던 차지철이 명사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정부 측의 설명과 어긋난다. 정부 측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죽어가는 동안 차지철은 방을 가로질러 도망가다가 총에 맞고 쓰러졌다. 또 다른 시나리오에 따르면 김재규, 정승화, 그리고 몇몇 육군 고위 간부들은 함께 차지철을 죽이기로 모의했다. 그러나 김재규가 경솔하게 행동해 대통령마저 사살하자 그는 동료에게 버림을 당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군사 쿠데타의 일부였을 가능성도 있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직을 맡기 전 육군 대장을 지냈고 그래서 군부에 친구가 많았지만 (대통령 암살 수사 총책임자였던 전두환을 포함해) 박 대통령과 가까운 젊은 장군들의 반발이 예상됐다. 그래서 김재규는 젊은 장군들 대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나 김종환 합참의장 같은 보다, 나이 많고 온건한 인물들을 포섭했다. 어쨌든 정승화와 그 휘하 장군들은 재빨리 박정희 독재 정권의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승화는 항상 군부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중앙정보부를 길들이려고 이희성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했다. 최규하와 민간인 출신 장관들은 일부 장성회의에 참석했지만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민간인 출신으로 박정희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은 회의에서 배제됐다. 중요한 점은 군 지도자들이 악명높은 유신헌법의 폐지 또는 수정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할 권리를 주고 지정 투표인단 선거제를 채택해 박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확보해 놓은 헌법이다. 서울의 한 군 분석가는 “이제 유신은 끝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맞춰놓은 독재체제는 다음 대통령에게는 맞지 않는다. ” 상대적으로 온건한 신군부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민간 정치와 민주체제를 선호했다. 그러나 그 시기와 정도는 아직 미정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했던 신민당의 한 국회의원은 “군부가 다시 유신체제 하에서 대통령을 세우려 한다면 심각한 반발에 부닥치게 된다”고 말했다. 수년간 가택 연금에 처해졌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은 성명을 발표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직접선거를 요구하고 미국에 “한국이 그런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곧 자유 선거가 실시된다면 김대중과 또 다른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중 하나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군들은 나라를 진보 야당의 손에 맡기기 불안해했다. 보수적이지만 박정희보다는 덜 억압적인 지도자를 세우고 싶어하는 듯했다. 주요 대통령 후보는 최규하 대통령 서리, 김종필 전 총리, 정일권이 될 전망이다. 한 구세력 정치인은 “첫 임기가 끝나면 헌법이 개정돼야 한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순수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의 요구들이 새로운 데모와 혼란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군부는 다시 박정희처럼 민주주의를 탄압할 여지가 있다. 희망적인 신호가 포착됐다. 지난달 박 대통령이 김영삼의 축출을 명령하자 야당 의원 66명이 사임했었다. 지난주 야당지도자들은 다시 국회에 모여 정부 내의 새로운 정치 미래를 구상하는 데 비공식 합의했다. 한 야당 의원은 “정치는 우리가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군부가 필요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 ” 이제 박정희도 땅에 묻혔으니 이번 주쯤에는 한국의 미래를 두고 심각한 내분이 벌어질 전망이다. 많은 분석가는 정부가 박정희의 독재정권의 유산을 신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나라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사이러스 밴스 미 국무장관은 최규하 대통령 서리를 만나 자유화에 관해 논의했다. 그 후 밴스는 한국의 군부가 “현 민간 정부를 지지한다”고 확신했다며 “민간 정부와 헌법 조항을 따라 민주화를 진행시키려는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카터 정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정부가 탄생하든지 미국의 군사력 원조와 미국과의 건전한 교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은 대부분의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정승화와 동료 장군들이 진정으로 민주화를 이룩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STEVEN STRASSER with ANDREW NAGORSKI and BERNARD KRISHER in Seoul and FRED COLEMAN in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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