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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만 매달 10여 명 과로사”

“서울만 매달 10여 명 과로사”

택시기사들이 쓰러지고 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서울시 개인택시 양도·양수는 180건. 이 중 기사들의 과로사나 질병이 130건 이상을 차지한다. 충격적인 수치다. 현재 서울시 도로를 달리고 있는 택시는 7만2500대. 택시가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해 택시기사들이 과로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 실상을 이코노미스트가 추적했다.
지난 8월부터 택시운전을 시작한 정대홍(36·가명)씨는 지난달 수입이 ‘0원’이었다. 택시운전으로 80만원을 벌었지만 모두 부조금으로 썼기 때문이다. 10월 한 달 동안 찾아간 장례식장만 해도 11곳. 정씨는 “택시운전 외에 게임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집안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다”며 “택시운전을 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같은 소속이거나 친분이 있는 기사 부조금 지출이 더 많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라고 전했다. 지난 9월에 이뤄진 서울시 개인택시 양도·양수는 총 180건이었다. 서울시 개인택시조합에서는 이 중 130건 이상을 택시기사들의 사망과 질병에 원인이 있다고 꼽았다. 개인택시조합 측은 “개인택시를 5년 이상 운전하면 별다른 이유 없이 양도가 가능하다. 양도·양수 시 사유를 묻진 않지만 기사들의 사망과 질병을 80%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택시업계 종사자는 이를 ‘당연한 결과’라고 한다. 서울시 개인택시조합 관계자는 “개인택시 기사들이 한 달에 20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2004년에 개인택시 면허를 받은 이모(41)씨는 “애들 2명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보통 3~4시간만 자면서 일해야 한다. 이것도 모자라 쉬는 날에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며 어두운 실상에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우리나라 개인택시들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법인택시들은 5~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법인택시들은 하루에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한 명이라도 더 태워야 조금이라도 더 번다는 것이다. 더구나 법인택시 기사들은 정해진 입금액이 있기 때문에 그 부담이 두 배 이상 가중된다. 이들이 회사에 입금하는 금액(사납금)은 하루 평균 11만원 안팎이다. 반면 개인택시들은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다. 본인이 원한다면 하루 종일 일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일해도 하루에 20만원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쉬라고 정해진 날에 택시기사들은 쉴 수가 없다. 개인택시만 10년을 운전한 이창근(가명)씨는 “쉬는 날은 보통 다른 일을 한다. 요즘은 친구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 큰 수입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부족한 수입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뚜렷한 근로보장 시간도 없고 쉬는 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택시기사의 과로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택시 6년 동안 5만여 대 늘어 왜 택시기사들은 무리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택시운전 하나로 가계 운영이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은 그 원인을 ‘택시 공급과잉’으로 꼽았다. 2006년 서울시에 등록된 택시는 7만2500대(개인택시 4만9551대, 법인택시 256개 업체에 2만2949대)이다. 서울시의 일일 운행 대수는 5만여 대를 적정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7만7000대가 실제 운행하는 택시라고 한다. 택시회사에 등록되지 않은 차량과 미등록 업체의 택시까지 서울시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택시 공급과잉은 시간을 거슬러 1985년부터 시작된다. 서울시는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85년에 서울시의 적정 택시 수를 5만 대라고 발표한다. 당시 서울시에 등록된 택시는 총 2만8000대였다. 이때 서울시는 택시회사들의 택시를 급격히 늘렸다. 또 개인택시의 자격요건을 법인택시 무사고 10년에서 무사고 7년으로 낮춰 매년 평균 2500대씩 증가시켰다.
급격히 불어난 택시는 1991년 들어 7만 대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 서울시는 적정 택시 수를 7만 대로 수정·발표했다. 그 직후 개인택시 허가 정지명령을 내렸다. 적정 수를 조절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1991년 이전 허가자 3500명의 생계를 가로막았다. 오랜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 개인택시를 갖고자 했던 이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울시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운송사업법에 명시된 ‘시·도지사 권한으로 적정 대중교통의 수를 5% 이내에서 증차할 수 있다’는 법을 따르기로 결정, 최종 허가자 3500명에게 지난해까지 개인택시 면허를 인정했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택시가 불어난 것이다. 서울시 개인택시조합 양천지부 최철호 지부장은 “정부의 무차별적인 과잉공급도 문제지만 ‘화물택시’와 기사 고령화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물택시(콜밴)는 건설교통부에서 2000년 시민들의 이동에 편리성을 더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현재 서울시에는 1200대의 화물택시가 영업을 하고 있다. “화물택시들은 화물운송보다 시민운송에 더욱 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화물택시는 합의 요금제이기 때문에 말만 잘하면 일반택시보다 싼값에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 지부장의 말.

기사 평균연령 55세 현재 화물택시들의 시민운송 점유율은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화물운송을 위해 만들어진 택시가 시민운송까지 전담하고 있으니 일반택시들이 위협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현재 서울시 개인택시 기사들의 평균연령은 55세다. 각 연령층이 고루 분포해 있는 다른 업종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높은 연령이다. 개인택시 기사 중 20, 30대는 1863명(4%)이다. 반면 50대 이상이 3만5604명(72%)에 달하는 것으로 서울시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은 분석하고 있다. 현존하는 택시기사 중 최고령자는 1919년생 한모씨다. 택시기사들의 과로사는 지난해 9월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기존에는 월 1~2명이었던 것이 이제는 매월 10명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집계하고 있다. S택시회사 기사인 박모씨는 나이가 53세다. 13년째 서울에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관계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택시기사를 오래 해 이미 적응이 됐고, 술·담배를 하기 때문에 운전이 병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납득할 수 없어 변호사를 고용해 법원에 소송을 내 현재 송사가 진행 중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기사가 많다. 올해 들어서는 부고장도 부쩍 늘었다. 환자인 나도 쉬어야 하는데 이렇게 무리하다 언제 쓰러질지 몰라 늘 공포감을 갖고 달린다. 다른 직장 같으면 그만둘 나이도 됐지만 쉴 수도 없다. 정말 죽을 맛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개인택시조합 지부장들은 ‘택시 수 감소’와 ‘LPG 특별소비세 감면’ ‘버스 전용차로 동시 사용’ 등을 가장 시급한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양천지부 최 지부장은 “현재 택시기사들이 사망하면 타인에게 개인택시 면허를 양도하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 이를 정부가 사들여 택시 수를 점차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1만5000여 대가 줄어야 월 250만원 이상의 수입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값이 비싼 것도 택시가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웬만한 거리면 택시비가 1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경기도 어려운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거리마다 빈 택시들이 늘어서 ‘호객 행위’를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택시회사들이야 돈을 벌지 모르지만 기사들에게는 값을 올린 게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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