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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종교 색채가 짙어진다

유럽은 종교 색채가 짙어진다


인구비 달라지면서 미국처럼 종교계 목소리 커질 가능성도 현대 서구사회는 세속주의 사상 그 자체다. 그리스 신들을 인정하지 않은 소크라테스에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단적 사상과 교단의 권위를 뒤엎은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근대화의 과정은 종교적 주장에서 빠져나온 길처럼 보였다. 우리 시대에 교회에 가는 유럽인이 줄어드는 현상은 세속적 현대성이 일반인들의 삶에 들어온 증거로 해석된다. 그러나 유럽에 깔린 신앙의 황혼 속에서 미네르바의 신앙 부엉이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 종교 부활은 4세기에 로마제국의 운명을 바꾼 일만큼 영향력이 지대할지도 모른다. 미국인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명저 ‘기독교의 흥기’에서 서기 30년 현재 신자 수 40명에 불과했던 미미한 기독교가 서기 300년에는 로마제국의 정식 종교로 공인받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역사가들은 보통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종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스타크는 기독교인들의 머릿수에 주목했다. 이교도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이 돌 때 환자를 버리지 않고 보살폈으며, 그것이 사망률을 크게 낮췄다고 그는 말했다. 기독교는 남성의 정절과 결혼을 강조했는데 덕분에 여성 개종자가 크게 늘었다. 이들이 자녀를 기독교 신자로 키우면서 신자 수가 더욱 늘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의 출산율이 높아 인구 증가 면에서 이점이 됐다고 스타크는 말했다. 훗날의 종교단체들도 비슷한 이유로 번성했다. 예컨대 모르몬교 인구는 지난 100년 동안 10년마다 40%의 비율로 증가했다. 유대인보다 세 배 빠른 속도였다. 한때는 소수집단에 불과했던 모르몬교 신자가 이제 45세 미만의 미국인들 중에선 유대인보다 많다. 미국에서 종교 우파가 발흥한 이유도 인구로 설명된다. 최근 미국사회학회 회보에는 마이클 하우트, 앤드루 그릴리, 멜리사 와일드의 조사 결과가 실렸다.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은 백인 개신교도들의 인구비를 높였는데 1900년생의 경우 3분의 1이었으나 1975년생의 경우 3분의 2가 됐다. 기독교 자체의 흥기와 더불어 천천히 움직이는 사회적 힘이 정치적 ‘변곡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공화당 전략가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측근들 역할을 했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관찰한 다음 새로운 사회 추세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에서 자가복제를 한다. 한 세기 동안 근소하게 줄었던 세계의 종교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연령·교육수준·재산과는 무관하게 종교인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세속적인’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1981~2004년 10개 유럽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령과 결혼 여부 다음으로 여성의 종교가 자녀 수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으로 드러났다. 유럽, 특히 서유럽은 세속적 현대화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그런데 세속화가 그들 뒷마당에서 힘을 잃어간다. 서유럽은 대충 둘로 나뉜다. 한쪽에는 스페인이나 아일랜드 같은 가톨릭 국가가 있다. 그곳에선 여전히 신앙심이 높고(아일랜드 국민의 약 60%가 꼬박꼬박 교회에 나간다), 세속화의 바람이 비교적 늦게 불어왔다. 다른 쪽에는 대체로 개신교 국가들(영국 포함)과 가톨릭 프랑스가 있다. 이들은 일찍 세속화됐으며 신앙심이 약하다. 이런 ‘첨단’ 세속국가들의 인구 균형은 신자가 47%이고 비신자가 53%다. 종교를 믿는 절반 인구가 인구 증가 면에서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출산율에서 15~20% 격차를 유지한다. 둘째, 18~45세 가임인구 신자들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내 계산으론 북서부 유럽의 세속 인구는 앞으로 30~40년 동안 비율이 떨어지면서 계속 증가해 55% 선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가 2035~45년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21세기 말의 유럽에는 세기 초보다 신자의 수가 늘어난다. 이민자만 아니라면, 특히 이슬람 이민자만 아니라면 이런 완만한 변화가 유럽사회의 정신에 끼칠 영향은 점증적일 뿐이다. 미국 인구는 2050년께 비히스패닉 백인의 비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민족과 종교를 토대로 인구자료를 수집하는 유럽국가는 거의 없다. 드문 사례로 오스트리아가 그렇게 한다. 최근 조사에서 현재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한 무슬림이 2050년에는 14~26%를 구성한다고 추산됐다. 무슬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속화한다면 문제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영국에서 조사된 결과를 보면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인 무슬림 1세대와 2세대의 신앙심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네덜란드의 소수민족을 연구한 최근 결과도 비슷했다. 앞으로 유럽의 타락한 기독교 인구가 이슬람 인구 성장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무슬림 인구 증가가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좀 더 요란한 세속적 민족주의를 조장하거나, 혹은 새삼스러운 기독교 정체성의 강조로 이어질지 모른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최근 연설을 보라). 연구자들은 영국의 2001년 인구조사에서 후자의 증거를 발견했다.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백인 응답자의 비율은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높았다. 민족적으로 분열된 북아일랜드에서는 종파 갈등이 영국의 다른 지역보다 신앙심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서유럽 사회의 종교색채가 처음에는 더욱 짙어지겠지만 원리주의 사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처럼 복음정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은 낮다. 다만 장기적으로 좀 더 보수적인 사회 가치를 향해 흘러갈지 모른다. 유럽인들은 낙태, 가족의 가치, 종교 교육, 게이 결혼 등의 도덕적 사안에서 좀 더 ‘전통적인’ 자세를 취하리라 전망된다. 그런 사안을 놓고 기독교도와 무슬림들 간에 협조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신앙을 초월한 그런 구조는 이미 세워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수적인 개신교와 전통적인 가톨릭·유대교가 힘들이지 않고 협조하는 현상이 그 증거라고 봐도 좋다. 여러 나라에서 정당과 선거제도를 통해 그런 사상적 시너지의 흐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미국의 경우처럼 정치인들은 뜻밖의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고 종교 우파의 입장을 취하리라 보인다. 종교계 로비스트들은 낙태·신성모독·포르노·진화 등의 문제에서 왜 세속적 견해만 가르치고 방송하거나 또는 ‘존중’하느냐고 점점 더 기세를 올리며 따질 가능성이 높다. 인구 물결에 떠밀려 유럽은 점점 미국식 현대화 모델에 가까워진다. 신앙심의 부활에 따라 합리적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사상의 틀이 바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자유주의·수정자본주의 등의 기본 철학은 그대로 남을 개연성이 많다. 그러나 현대적이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목소리가 커질 듯하다. (필자는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 교수다. 본 기사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프로스펙트지(誌)에 실린 내용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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