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넘는 아파트 ‘없어서 못 판다’
10억 넘는 아파트 ‘없어서 못 판다’
먼저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싼 동네 집들이 많이 사고 팔릴까, 아니면 비싼 동네 집들이 그럴까? 사람들은 흔히 “싼 집이 매매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비싼 집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라고 한다면 ‘과연 거래가 있기나 할까?’ 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아무래도 1억~2억원대의 집들은 수요도 많고, 금액이 만만해서 많이 매매될 것이란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현상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답은 ‘비싼 동네 집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실제 취재 결과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강북에 비해 강남·서초·송파구를 총칭하는 이른바 ‘빅3’의 고가 주택 매매 거래량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3’ 지역 아파트 거래량은?=정부가 최근 검단 같은 신도시 건설 발표까지 하게 만든 진원지인 강남 지역. 그중에서도 강남구의 주택 거래량은 강북의 도봉구를 압도한다. 그 숫자를 하나씩 하나씩 비교해보자. 올해부터 강남구는 아파트의 경우 ‘주택거래신고’를 통해 매매 건수를 체크하고 있는데, 이 숫자가 1~10월 사이에 4315건(구청 추정치)이다. 빌라·연립·다세대의 경우 1~10월 사이에 6761건(추정치)이 매매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둘을 합치면 올해 1~10월 사이에 강남구에서 거래된 주택 건수는 1만1076건에 달한다. 도봉구는 어떨까? 1~10월 사이에 거래된 전체 아파트·주택 매매 건수는 9430건에 불과하다. 도봉구에 비해 강남구의 거래량이 17%나 더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잦은 거래량은 송파구도 엇비슷하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의 주택거래신고 대상인 아파트의 매매 건수는 총 3728건이다. 연말께에는 4500~5000건에 달할 것으로 구청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7월 72건에서, 8월 109건, 9월 394건, 10월 849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10월에는 갑자기 아파트 거래가 폭증했다. “9월 들어 빅3 아파트 가격이 움직이면서 거래량도 확 늘었다”는 게 이곳 구청 관계자들의 얘기다. 마치 거래량이 늘면서 주가가 오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강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억, 20억원대 고가 아파트 거래는?=강남구 측은 “7월 주택거래신고를 통해 체크한 아파트 매매 건수는 135건(잠정 추정치)인데, 이 중 34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들”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외에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매매 건수는 즐비하다. 8월 137건 중에서 36건, 9월 383건 중 146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로 나타났다. 10월 718건 중에서는 333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다. 10월에 거래된 강남구 아파트 중에서 약 반 정도(46%)가 10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인 셈이다. 이는 10억, 20억원이 넘는 아파트 거래가 빈번하다는 방증이다. ‘빅3’ 중 하나인 서초구도 사정이 엇비슷하다. 올해 서초구에서 1~10월 사이에 매매된 아파트 건수(주택거래신고 기준)는 4083건(추정치)이다. 이는 지난해 9개월간(3월 말~12월 말) 거래건수 2783건에 비해 30%가량이나 늘어난 것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아파트 거래 신고에 해당하는 아파트 매매의 경우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약 15%이고, 이 중 최고가는 23억원짜리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매매 건수 중 5억~10억원 사이에 있는 아파트의 비중은 약 50%, 5억원 미만의 비중이 35%가량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강남구와 마찬가지로 서초구에서도 10억, 20억원대 고가 아파트가 자주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송파구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통계를 낸 것은 아니지만, 전체 아파트 매매 건수 중에서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아파트 시세표 중에서 그래도 공정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국민은행 사이트를 보면, 송파에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중개업소 평균 거래가는 17억원”=10억, 20억원짜리 고가 아파트들은 중개업소에서 과연 얼마나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일까? 강남권 빅3에서 거래된 아파트 총 거래량을 보면, 평소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쓰는 “요즘 거래가 하나도 없어서 죽을 지경”이라는 ‘단골 레퍼토리’가 무의미할 지경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A중개업소의 김모 사장은 “이 동네에서 10억원짜리 이상의 아파트를 매매, 중개하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며 “우리 중개업소의 경우 평균 거래가격은 17억원선”이라고 밝혔다. 이 숫자는 비교적 정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개업소 주변에 있는 아파트 중에서는 개포우성1차아파트 31평형이 비교적 작은 평수에 속하는데, 값이 17억원 정도 되기 때문이다. 고가 아파트 거래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거래가 전혀 안 되면, 중개업소들이 모두 다 문을 닫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강남권 중개업소들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장사를 한다. 앞선 김 사장 얘기를 더 들어 보자. “한 달에 한두 건만 거래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지요. 서너 건 해서도 안 됩니다. 직원들에게 인건비 챙겨주고, 월세·공과금 내고, 내 월급도 가져 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려면 한 달에 무조건 5건 이상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달에 10건 정도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많이 하는 건 쉽지 않고…. ” 한 달에 고가 아파트 5건을 중개한다고 하면 수수료가 적지 않다. 6억원 이상 아파트를 거래하면 중개사들이 법적으로 받는 수수료율은 매매가의 0.9% 이하다. 그런데 0.9%는 너무 높다고 해서 통상 0.7% 정도를 받는다. 그것도 매도인, 매수인 양쪽에서 받는다. 따라서 17억원짜리 5건의 거래를 성사시키면, 중개업소에서 받는 수수료만 최소 1억1900만원이나 된다.
경매시장에서도 10억, 20억원대 아파트 ‘인기’=경매시장을 찾아가면 의외로 ‘빅3’의 10억, 20억원짜리 아파트가 내놓기만 하면 곧바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매시장의 낙찰가율은 일종의 부동산 선행지수 같은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조만간 뜨거울 것 같으면, 낙찰가가 감정가 대비 100% 이상으로 확 올라간다. 부동산 시장이 썰렁해질 것 같으면, 거꾸로 낙찰가가 감정가의 80%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게다가 경매시장이 뜨겁다는 것은 현장 매물이 상대적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현장 시장에서 부동산을 조금 싸게 사려는 게 구매자 심리인데, 최근 9월 들어 빅3 부동산이 뜬다는 소문이 돌자 매도자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혹은 호가를 확 올려놨다. 때문에 매수인들은 상대적으로 싸게 살 수 있는 경매시장으로 최근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은현 실장(법무법인 산하)의 얘기다. 지난 11월 2일 서울중앙법원 경매 법정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개나리아파트가 팔렸다. 낙찰가격은 15억9999만원. 감정가(16억원) 대비 99% 수준이다. 대지면적 26.8평, 건물전용면적 51.9평 규모인 이 아파트는 재건축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감정가 16억원이나 되는 이 물건을 사겠다고 달려든 이들이 무려 10명이나 됐다. 이날 10명이 법원으로 갖고 온 현찰만 따져 봐도 최소 12억8000만원이 넘는다. 응찰하려면 이날 최저가인 12억8000만원의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갖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경매 법정을 찾았던 김모(56)씨는 “강남 법원에 가면 돈이 흔해도 너무 흔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때마침, 그날 비싼 물건이 겨우 하나 나와서 그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2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너끈히 경매로 팔려나갔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현대아파트인데, 이날 낙찰가는 26억6820만원이다. 이 돈은 감정가의 11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집은 대지면적 7.9평, 건물 전용면적 59.5평으로 대지면적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아파트다. 대지면적으로만 가격을 환산하면 이 아파트 가격은 평당 3억3774만원이다. 이 아파트 대지 한 평을 잘라서 팔면 강북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를 충분히 사고도 남는다. 이날 현대아파트를 사겠다고 응찰한 사람들 숫자는 무려 14명이다. 이 14명이 주머니 속에 넣고 온 현찰을 모두 합치면 26억8800만원. 이 집에 대한 감정가는 24억원인데, 한번 유찰된 후의 최저가가 이날 19억2000만원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비싼 아파트들의 고가 낙찰 행진은 이번만이 아니다. 10월 24일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서초삼풍아파트가 21억1111만1100원에 경매로 팔렸다. 감정가의 124%에 해당하는 수준에서 팔린 것이다. 대지면적 24.3평, 건물 전용면적 50.2평이다. 87년에 만들어진 이 집의 감정가는 17억원인데, 이게 너무 싸다고 느꼈는지 3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이 같은 삼풍아파트의 고가 낙찰을 지켜본 서초동 주민 이모(49)씨는 “3년 전에 삼풍아파트에서 전세를 살 때 과감히 한 채를 사두었으면 돈 몇 억원은 그냥 버는 것인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래된 아파트, 재건축 대상 아파트도 잘 팔린다. 지난 10월 10일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보미도맨션은 23억2500만원에 팔렸다. 감정가의 125%에 해당한다. 대지면적 28.5평, 건물 전용면적 51.4평인 이 아파트는 건립된 지 18년이 지난 것으로 감정가는 18억원. 이 물건을 사려고 한 응찰자는 6명이었다. 강은현 실장은 “사실 10억~20억원짜리 고가 아파트에 10~20명이 응찰하면서 달려들었다고 하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이런 고가 아파트는 서너 명이 오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경매 전문가인 강 실장조차 당황했다는 것이다. 누가 사고 누가 파는가?=빅3 구청관계자와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일단 같은 빅3 지역에 있는 이들이 많이 산다”고 말한다. 예컨대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팔고, 그 옆의 선경이나 우성아파트를 사는 식이다. 작은 평수에 살다가 팔고 큰 평수를 사는 이도 있고, 전세를 살다가 매입하는 이도 있다. 외부에서 선뜻 이곳으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10억, 20억원은 부담이 되는 돈이다. 지방에서 토지수용을 당한 다음 받은 거액의 자금으로 서울 빅3에 집 하나 마련하기 위해 사두는 경우도 있다. 혹은 강남에 집 한 채 있으면 좋은 곳으로 시집보낼 수 있다면서, 혼삿길을 마련하기 위해 사는 이도 있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매입하는 이들도 있다. 도곡동 P부동산 박모 사장은 “외부에서 강남 3구로 들어오는 경우가 쉽지 않다”면서 “일단 가격 차이가 있는데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가 강남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은현 실장은 “10억, 20억원대 아파트를 사는 이들은 현금 동원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가 아파트를 살 때에는 대출 규제를 받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자력으로 현찰을 조달하고, 모자라면 갖고 있는 다른 부동산(상가 같은 것)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아 충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누가 파는 것일까? 개포동 B부동산 관계자는 “왜 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단 돈이 없거나 혹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파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큰 평수를 2채 이상 갖고 있는 이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팔거나, 혹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외국에 영주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외국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파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빅3’ 지역 아파트 거래량은?=정부가 최근 검단 같은 신도시 건설 발표까지 하게 만든 진원지인 강남 지역. 그중에서도 강남구의 주택 거래량은 강북의 도봉구를 압도한다. 그 숫자를 하나씩 하나씩 비교해보자. 올해부터 강남구는 아파트의 경우 ‘주택거래신고’를 통해 매매 건수를 체크하고 있는데, 이 숫자가 1~10월 사이에 4315건(구청 추정치)이다. 빌라·연립·다세대의 경우 1~10월 사이에 6761건(추정치)이 매매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둘을 합치면 올해 1~10월 사이에 강남구에서 거래된 주택 건수는 1만1076건에 달한다. 도봉구는 어떨까? 1~10월 사이에 거래된 전체 아파트·주택 매매 건수는 9430건에 불과하다. 도봉구에 비해 강남구의 거래량이 17%나 더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잦은 거래량은 송파구도 엇비슷하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의 주택거래신고 대상인 아파트의 매매 건수는 총 3728건이다. 연말께에는 4500~5000건에 달할 것으로 구청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7월 72건에서, 8월 109건, 9월 394건, 10월 849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10월에는 갑자기 아파트 거래가 폭증했다. “9월 들어 빅3 아파트 가격이 움직이면서 거래량도 확 늘었다”는 게 이곳 구청 관계자들의 얘기다. 마치 거래량이 늘면서 주가가 오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강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억, 20억원대 고가 아파트 거래는?=강남구 측은 “7월 주택거래신고를 통해 체크한 아파트 매매 건수는 135건(잠정 추정치)인데, 이 중 34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들”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외에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매매 건수는 즐비하다. 8월 137건 중에서 36건, 9월 383건 중 146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로 나타났다. 10월 718건 중에서는 333건이 10억원이 넘는 아파트다. 10월에 거래된 강남구 아파트 중에서 약 반 정도(46%)가 10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인 셈이다. 이는 10억, 20억원이 넘는 아파트 거래가 빈번하다는 방증이다. ‘빅3’ 중 하나인 서초구도 사정이 엇비슷하다. 올해 서초구에서 1~10월 사이에 매매된 아파트 건수(주택거래신고 기준)는 4083건(추정치)이다. 이는 지난해 9개월간(3월 말~12월 말) 거래건수 2783건에 비해 30%가량이나 늘어난 것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아파트 거래 신고에 해당하는 아파트 매매의 경우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약 15%이고, 이 중 최고가는 23억원짜리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매매 건수 중 5억~10억원 사이에 있는 아파트의 비중은 약 50%, 5억원 미만의 비중이 35%가량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강남구와 마찬가지로 서초구에서도 10억, 20억원대 고가 아파트가 자주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송파구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통계를 낸 것은 아니지만, 전체 아파트 매매 건수 중에서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아파트 시세표 중에서 그래도 공정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국민은행 사이트를 보면, 송파에 10억원 이상 아파트가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중개업소 평균 거래가는 17억원”=10억, 20억원짜리 고가 아파트들은 중개업소에서 과연 얼마나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일까? 강남권 빅3에서 거래된 아파트 총 거래량을 보면, 평소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쓰는 “요즘 거래가 하나도 없어서 죽을 지경”이라는 ‘단골 레퍼토리’가 무의미할 지경이다.
|
경매시장에서도 10억, 20억원대 아파트 ‘인기’=경매시장을 찾아가면 의외로 ‘빅3’의 10억, 20억원짜리 아파트가 내놓기만 하면 곧바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매시장의 낙찰가율은 일종의 부동산 선행지수 같은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조만간 뜨거울 것 같으면, 낙찰가가 감정가 대비 100% 이상으로 확 올라간다. 부동산 시장이 썰렁해질 것 같으면, 거꾸로 낙찰가가 감정가의 80%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게다가 경매시장이 뜨겁다는 것은 현장 매물이 상대적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현장 시장에서 부동산을 조금 싸게 사려는 게 구매자 심리인데, 최근 9월 들어 빅3 부동산이 뜬다는 소문이 돌자 매도자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혹은 호가를 확 올려놨다. 때문에 매수인들은 상대적으로 싸게 살 수 있는 경매시장으로 최근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은현 실장(법무법인 산하)의 얘기다. 지난 11월 2일 서울중앙법원 경매 법정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개나리아파트가 팔렸다. 낙찰가격은 15억9999만원. 감정가(16억원) 대비 99% 수준이다. 대지면적 26.8평, 건물전용면적 51.9평 규모인 이 아파트는 재건축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감정가 16억원이나 되는 이 물건을 사겠다고 달려든 이들이 무려 10명이나 됐다. 이날 10명이 법원으로 갖고 온 현찰만 따져 봐도 최소 12억8000만원이 넘는다. 응찰하려면 이날 최저가인 12억8000만원의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갖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경매 법정을 찾았던 김모(56)씨는 “강남 법원에 가면 돈이 흔해도 너무 흔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때마침, 그날 비싼 물건이 겨우 하나 나와서 그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2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너끈히 경매로 팔려나갔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현대아파트인데, 이날 낙찰가는 26억6820만원이다. 이 돈은 감정가의 11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집은 대지면적 7.9평, 건물 전용면적 59.5평으로 대지면적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아파트다. 대지면적으로만 가격을 환산하면 이 아파트 가격은 평당 3억3774만원이다. 이 아파트 대지 한 평을 잘라서 팔면 강북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를 충분히 사고도 남는다. 이날 현대아파트를 사겠다고 응찰한 사람들 숫자는 무려 14명이다. 이 14명이 주머니 속에 넣고 온 현찰을 모두 합치면 26억8800만원. 이 집에 대한 감정가는 24억원인데, 한번 유찰된 후의 최저가가 이날 19억2000만원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비싼 아파트들의 고가 낙찰 행진은 이번만이 아니다. 10월 24일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서초삼풍아파트가 21억1111만1100원에 경매로 팔렸다. 감정가의 124%에 해당하는 수준에서 팔린 것이다. 대지면적 24.3평, 건물 전용면적 50.2평이다. 87년에 만들어진 이 집의 감정가는 17억원인데, 이게 너무 싸다고 느꼈는지 3명이 입찰에 참여했다. 이 같은 삼풍아파트의 고가 낙찰을 지켜본 서초동 주민 이모(49)씨는 “3년 전에 삼풍아파트에서 전세를 살 때 과감히 한 채를 사두었으면 돈 몇 억원은 그냥 버는 것인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래된 아파트, 재건축 대상 아파트도 잘 팔린다. 지난 10월 10일 서울중앙지법 경매 법정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보미도맨션은 23억2500만원에 팔렸다. 감정가의 125%에 해당한다. 대지면적 28.5평, 건물 전용면적 51.4평인 이 아파트는 건립된 지 18년이 지난 것으로 감정가는 18억원. 이 물건을 사려고 한 응찰자는 6명이었다. 강은현 실장은 “사실 10억~20억원짜리 고가 아파트에 10~20명이 응찰하면서 달려들었다고 하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이런 고가 아파트는 서너 명이 오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경매 전문가인 강 실장조차 당황했다는 것이다. 누가 사고 누가 파는가?=빅3 구청관계자와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일단 같은 빅3 지역에 있는 이들이 많이 산다”고 말한다. 예컨대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팔고, 그 옆의 선경이나 우성아파트를 사는 식이다. 작은 평수에 살다가 팔고 큰 평수를 사는 이도 있고, 전세를 살다가 매입하는 이도 있다. 외부에서 선뜻 이곳으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10억, 20억원은 부담이 되는 돈이다. 지방에서 토지수용을 당한 다음 받은 거액의 자금으로 서울 빅3에 집 하나 마련하기 위해 사두는 경우도 있다. 혹은 강남에 집 한 채 있으면 좋은 곳으로 시집보낼 수 있다면서, 혼삿길을 마련하기 위해 사는 이도 있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매입하는 이들도 있다. 도곡동 P부동산 박모 사장은 “외부에서 강남 3구로 들어오는 경우가 쉽지 않다”면서 “일단 가격 차이가 있는데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가 강남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은현 실장은 “10억, 20억원대 아파트를 사는 이들은 현금 동원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가 아파트를 살 때에는 대출 규제를 받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자력으로 현찰을 조달하고, 모자라면 갖고 있는 다른 부동산(상가 같은 것)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아 충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누가 파는 것일까? 개포동 B부동산 관계자는 “왜 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단 돈이 없거나 혹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파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큰 평수를 2채 이상 갖고 있는 이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팔거나, 혹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외국에 영주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외국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파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두나무, ‘업비트 D 컨퍼런스 2024’ 성료…현장 방문객만 1350명
2한화오션, 해외 軍 관계자 대거 맞이...‘오르카 프로젝트’ 수주 한걸음 더
3‘성과, 그리고 능력’...현대차그룹, ‘대표이사·사장단’ 인사 단행
4트럼프, 법무차관에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금' 사건 변호인 지명
5휠라홀딩스, 주주환원에 ‘진심’...자사주 추가 취득·3년 연속 특별배당
6삼성전자 노사 10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도출...임금 5.1% 인상 안
7트럼프, 보훈장관에 '콜린스' 내정…첫 탄핵 변호한 '충성파'
8'디타워 돈의문' 9000억원에 팔렸다
9민주당 ‘상법 개정’ 움직임…재계 “기업 성장 의지 꺾는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