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개방 뒷걸음질치나
중국 경제개방 뒷걸음질치나
외국인 투자조건 엄격히 정해 개방정책 퇴조 우려… 과도기적 현상이란 해석도 경제 민족주의 파도가 중국을 휩쓴다. 중국 정부가 경제 개방정책을 재고하기 시작했다고 의구심을 갖는 외국 기업인들이 많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중국은 돌연 외국인 투자법규를 개정했다. 그 때문에 국제적 기업들은 자사의 기업문화를 변경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중국 측 검열을 감수하고, 월마트는 노조를 허용해야 했다. 중국의 이런 요구들은 다양한 국가기관에서 제기되지만 모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새로운 대중영합주의적 지침을 반영한다.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의미하는 이런 요구들은 중국의 부유한 도시와 가난한 시골 사이의 확대되는 소득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같은 추세가 진전되면 번창하는 해안 도시들과 그곳에 몰려드는 다국적기업들의 혜택이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상황을 보자. 미국의 시티그룹이 이끄는 컨소시엄은 중간 크기의 한 중국 은행 지분 85%를 인수하는 입찰경쟁에서 이겼다. 그러나 중국 규제당국은 시티그룹이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결국 그 중국 은행은 현지인들의 소유로 남게 됐다. 또 과거 중국의 고위관리들은 외국 사모펀드가 중국의 경제개혁을 촉진한다며 환영했었다. 그러나 규제당국은 애당초 미국 칼라일 그룹에 허용했던 한 기계류 제조회사의 지분 인수 비율을 뒤늦게 낮춰버렸다. 또 지난 9월 중국의 국영 신화통신은 블룸버그·로이터 같은 국제 금융소식 서비스 회사들이 신화통신을 통해서만 정보를 판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글은 중국어 버전3의 검색 결과를 중국 당국이 검열하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한때 중국 유통산업의 활력소로 찬양받았던 월마트는 지난 7월 당국의 압력에 굴복해 각 매장에 공산당 소속의 전국노동조합총연맹(ACFTU) 산하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결국 이 거대한 유통업체와 종업원들 사이에 중국 공산당이 끼어들게 됐다. 많은 전문가가 외국인 투자를 겨냥한 이런 반발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폐해와 부패를 막고, 국내 기업들도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만들어주는 조치로 해석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전제조건이었던 단계적 시장개방 약속을 거의 다 이행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시장 자유화 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어느 주장이 맞든, 외국 기업들에 가해지는 압력은 커져 간다. 미국 상무부 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던 행크 레빈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해야 공정할 듯하다. 지난 1년간 외국인 투자의 특정한 측면들에 압박을 가해온 중국 정부를 목격했다. 요즘 많은 중국인 학자와 일부 정부 관리는 개혁과 개방 정책에 반발한다.” 현재 레빈은 워싱턴 DC 소재 컨설팅 회사인 스톤브리지 인터내셔널의 수석 부사장으로 있다. 한때 중국 지도자들은 법규를 확대해석하면서까지 일류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지난해 중국 식품의약청(FDA)은 외국 의료장비 제조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필립스·지멘스 같은 유명 회사들에 승리를 안겨주는 듯했다. 중국은 10년 동안의 규제를 철폐하고 외국 기업들이 (신제품뿐만 아니라) 중고품 의료장비를 판매하도록 허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대다수 나라는 벌써부터 그렇게 해왔다. 기존의 규제 법규 아래에서는 자금력이 있는 소수의 부유한 병원들에만 서방 기업들의 신제품 판매가 허용됐었다. 중고 의료장비(신품보다 20~50% 저렴하다) 시장의 개방은 서방 기업들의 매출을 극적으로 증대시키리라 예상됐다. 2000년 이래 연간 20%씩 성장해오던 중국의 의료장비 시장은 갑자기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중국 측 의료장비 제조업체들이 공격에 나섰다. 중국 기업 간부들은 각종 신문에서 외제 중고 의료장비들을 “외국의 쓰레기”라고 매도하고, 불결한 외과용 수술칼과 결함 있는 의료기계들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지난 4월 열린 중국 FDA 회의에서 일부 현지 기업 간부는 중국 FDA가 외국 기업 간부들의 참석을 허용했다고 맹비난했다. 회의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중국과 외국 기업 간부들은 복도에서도 설전을 벌였다. 국내의 압력에 직면한 중국 FDA는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규제 철폐를 보류했다. 이는 현지 기업들을 진정시키려는 편리한 구실일 뿐이라고 업계의 한 내부 소식통은 말했다. 그는 현재 외국과 국내 제조업체 모두에 부품을 공급한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그 소식통은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의 제조업자들은 규제 철폐로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같은 반발로 규제 완화의 속도가 최소한 줄어든다고 기대한다. 내 생각에는 결국 시장은 개방된다. 그러나 외국 투자회사들의 관심사는 그 시점이 언제냐 하는 점이다.” 현재로선 외국인 투자를 문제삼는 중국 내 세력이 우세하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국내 산업이나 일반 국민에게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이룩됐다고 주장한다. 보다 “조화로운” 사회를 약속한 후 주석과 원 총리도 그들의 주장을 경청한다. 다수가 학자인 그들은 중국이 외국인들에게 각종 투자유인책을 제공했지만 얻은 점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서방 기업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외국인 특허기술 이전 요구도 중국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지난 25년간 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특허기술 이전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비판적 학자는 또 외국 기업들이 본국에서보다 더 낮은 도덕적 기준을 중국 시장에 적용해 부패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비판한다. 현재 중국에선 부정부패와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현지인들의 반발이 전국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도 이제는 시장개혁의 부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베이징 소재 인민대학의 마오서우룽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개방정책은 여전히 중국의 주된 노선이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개혁을 문제삼는데, 그가 가볍게 다루지 못할 주요 인사라면, 중앙정부도 개혁 정책을 잠시 보류할지 모른다.” 실제로 중국 재계 지도자들은 외국인 투자의 가치에 의구심을 보이는 새로운 분위기를 이용해왔다. 그들은 정부 관리들을 설득하고 언론을 이용해 민족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기업인들은 이런 식의 주장을 적극 활용한다. 억제되지 않은 외국인 투자가 중국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에서 벗어나 선도적인 혁신국가로 성장하는 일을 방해한다는 식이다. 일례로 칼라일 그룹이 중국 최대 국영 건설장비업체인 쉬궁(徐工)그룹을 인수하려 했을 때 어떤 사태가 발생했는지 보라. 칼라일의 인수 제의가 있은 뒤, 중국 기계공업협회는 정부 측과 긴밀히 협조해 관련 정책안을 작성했다. 외국인들이 중국의 핵심산업을 인수하려 할 때 당국의 승인을 반드시 얻도록 하는 내용의 정책이었다. 쉬궁 그룹 인수 입찰에서 칼라일의 최대 경쟁자였던 싼이(三一)중공업의 최고경영자 샹원보(向文波)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국가를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기지 말라고 정부에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칼라일 그룹은 11월 초 쉬궁 인수 경쟁에서 이겼다. 그러나 3억7500만 달러에 지분 85%를 인수하는 대신, 2억2500만 달러에 지분 50%의 합작투자 형태로 계약 내용이 축소됐다. 세계적 경영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가 상하이에 세운 트랜젝션 서비시스 그룹의 관계자인 그레이엄 매튜스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중국에 들어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중국 기업들을 고사시킨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변에 깔린 그런 우려는 이제 외국인들의 중국 기업 인수합병도 겨냥한다. 국가적 대기업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걱정하는 중국인이 많다.” 일부 관측통은 중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우려를 일축한다. 중국 정부는 단지 선진국들이 100여 년에 걸쳐 정착시켜온 법규들과 유사한 법을 제정하면서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어떤 나라에서도 혼란스럽게 마련이고, 때론 이익단체들에 휘둘리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그들은 그런 실례로 지난해 중국해양석유공사(CNOOC)가 미국 기업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거론한다. 그 거래가 실패로 끝난 주된 이유는 미국의 반(反)외국 정서 때문이었다. 이들 관측통은 또 중국 정부가 정책적인 우려 때문에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홍콩 소재 법률회사 폴 헤이스팅스의 관계자인 모리스 후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이 스스로 신뢰할 만한 충분한 경험을 쌓아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허용해선 안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러나 사실 지난 25년간 중국 정부처럼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해온 나라가 어디 있는가. 독단적인 방식만으론 결코 그런 위업을 이루지 못한다.” 물론 대다수 외국 기업도 앞으로 25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해 나갈 용의가 있다. With RACHEL MAKABI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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