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거래소 출범해도 IPO 기업은 상장일 다음날 거래…왜일까
IPO기업 상장 제한 규정… ATS 초기 활성화 발목
당국‧전문가 "제도 개선 시기상조"…향후 변경 가능성 주목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 70년 만에 등장한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는 기존 거래소의 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시장 경쟁을 촉진할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공개(IPO) 기업의 거래와 관련된 제도적 제약이 존재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넥스트레이드는 2013년 5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이에 오는 3월 4일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넥스트레이드는 투자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고, 기존 단일시장 체제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증권 거래 서비스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나아가 자본시장 인프라의 질적 발전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거래 예정 종목은 코스피200 및 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 시가총액 상위 종목, 거래대금 상위 종목 등 약 800여개로 예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더 낮은 수수료와 빠른 체결 속도, 길어진 거래 시간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최근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IPO 종목과 관련해서는 자유로운 거래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 규정상 IPO를 통해 상장된 기업의 주식은 상장 첫날 기준 한국거래소에서만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넥스트레이드와 같은 ATS에서는 상장 이튿날부터 거래가 허용된다.
넥스트레이드로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IPO 시장은 증권업계에서 이용자 풀을 넓히고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특히 넥스트레이드와 같은 신생 거래소 입장에서는 점유율 확보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가장 거래량이 집중되는 IPO기업 상장 첫날에 거래할 기회를 잃는 것은 경쟁에서 불리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 당일 유통 주식이 전체의 9%에 불과했음에도 총 거래 금액이 8조8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날 코스피 전체 거래량(20조원)의 약 40%를 차지한 수치로, 대형 IPO 상장 첫날 시장 내 거래 비중이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상장한 'IPO 대어' HD현대마린과 시프트업 역시 각각 코스피 일간 거래량 대비 20%, 9.5%를 기록하며 큰 비중의 거래를 이끌어냈다. 이를 감안하면 IPO기업에 대한 상장 첫날 ATS에서의 거래 제한은 넥스트레이드가 초기 거래 활성을 도모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과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 보호 목적 금융투자업 규정이 발목…“명분 없는 규정” 지적
IPO 기업이 ATS에서 상장 첫날 거래되지 못하는 이유는 현행 금융투자업 제4-48조의2(다자간매매체결회사의 업무기준 등) 규정에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상장 또는 자본감소 등에 따라 해당 매매체결대상상품을 상장한 거래소가 증권시장업무규정에 따라 단일가격에 의한 개별경쟁매매의 방법으로 그 매매체결대상상품의 최초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로서 그 날을 포함하여1일이 경과하지 않은 증권’에 대해 매매체결업무를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투자자 보호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첫 거래를 시작하는 상장기업 이외에도 체결 실적이 낮은 매매체결대상상품, 관리종목 또는 이에 준하는 종목, 의결권이 없는 상장주권 등에 대해서도 ATS에서 거래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각각의 거래 특성을 고려해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상장한 기업들에 대해 ATS에서 상장 첫날에만 거래를 제한하는 방식이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어급으로 불리는 코스피 종목들에 한해서는 규모와 기업 신뢰도, 유동성 면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만큼, 거래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기존 시장에서 가격발견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다소 설득력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넥스트레이드는 과거 한국ECN, 코리아크로스(Koreacross)와는 달리 주문주도형 시스템(Order-Driven System)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를 통해 시장에서 공정한 가격을 형성하고 유동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기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스템(MTS)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는 만큼, 접근성도 확보돼 있다.
해외 시장을 살펴보더라도 IPO 기업에 대한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IPO 상장 종목이 ATS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있다. 특히 호주의 Cboe Australia는 대체거래소임에도 일부 상품을 상장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일본은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일부 규제를 두고 있지만, 이는 해외 대체거래소 운영 방식에서 흔치 않은 사례로 볼 수 있다.
금융당국 '신중'…IPO 규제 완화 가능성 논의될까
금융당국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IPO 종목 거래는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신뢰에 직결되는 문제로, ATS의 기능 확대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넥스트레이드가 아직 운영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IPO 관련 규정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대체거래소 초기 거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이후 단계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넥스트레이드와 같은 플랫폼이 아직 투기적 수요를 조절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제기한다. 기존 상장 종목은 축적된 애널리스트 리포트와 풍부한 시장 정보에 기반해 신뢰도 높은 가격 형성이 가능하지만, 신규 종목은 이러한 데이터가 부족해 투자 판단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전문가들은 대체거래소와 정식 거래소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했다. 대체거래소는 상장 기능을 갖추지 않았으며, 거래소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IPO 종목의 첫날 거래를 허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거래소의 상장 기능은 예비심사뿐 아니라 시장 조성 등 다양한 역할을 포함하며, IPO 상장 첫날 과정도 이러한 상장 기능의 연장선에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ATS 점유율 제한은 전체 시장의 5%로 설정됐으나, 2016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15%까지 확대된 바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ATS 운영방안’에서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규칙 개정을 통해 ATS 거래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오는 3월 넥스트레이드가 예정대로 출범하면, IPO 거래 제한 완화가 시장 논의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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