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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기자의 사람이야기] 몰입과 수행에서 얻는 예측력

[김정욱 기자의 사람이야기] 몰입과 수행에서 얻는 예측력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요즘 ‘정치부 기자’ 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면 십중팔구 되돌아오는 질문이다. 기자니까 뭔가 특별한 정보력과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나의 경우 늘 궁색한 대답뿐이다. 아예 모르겠다고 고백하거나 이런 저런 경우를 들먹이며 양다리 걸치기식 답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김헌태(40)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같은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국내 정치 분야에서 첫손에 꼽히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전략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16일 고건 전 총리가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을 때 그의 휴대전화는 말 그대로 불이 났다. ‘고건 표’가 누구에게로 이동할지, 어느 후보가 유리해진 것인지 궁금해 하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나 역시 김 소장에겐 특별한 정보력과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김 소장은 1995년 한 여론조사 업체에 취직해 전화기를 설치하는 일부터 배웠다. 지금도 그가 전화 배선에 익숙한 이유다. 설문지 문항을 직접 만들고 면접원들이 전해준 결과를 전산처리하는 업무는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밑바닥 시절부터 그는 마음속 깊이 정치 조사 한 우물을 팠다.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되고, 기업 마케팅 조사에도 재미를 붙였지만 결국 1998년 본격적으로 정치 여론조사에 뛰어들었다. 한 해 전 여야 간 정권교체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정치 조사의 가능성을 엿본 외국계 여론조사 업체 정치사회조사팀이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만 생각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후 그는 총선과 대선 등 여러 선거에서 정확한 결과 예측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고, 2003년에는 퇴직금 등을 모아 지금의 연구소를 직접 차려 오랜 꿈을 실현했다. 김 소장은 “모든 것이 관심의 힘, 몰입의 힘”이라고 말했다. 중요 이슈가 생기면 4, 5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공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외골수적인 집중이 오늘의 결과물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수년 전 김 소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투박한(?) 외모와 털털한 행동이 의외로 느껴졌다. 전화 통화할 때마다 느꼈던 예리한 분석력, 사감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에게서 풍기는 우직함과 투박함마저 그가 가진 ‘내공’ 중 하나로 보인다. 김 소장은 지난 15년 동안, 한 해에 한 차례씩, 혼자서 산과 절을 찾는 ‘수행’을 계속해 왔다. 심신의 열정이 소진됐다고 느껴지면, 주변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훌쩍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선을 앞둔 올해엔 벌써 경북 청송의 주왕산, 그리고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혼자니까 며칠 동안 자연스레 묵언정진을 하게 됩니다. 신문도 읽지 않고, TV도 보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하냐고요? 사실 아무 생각도 안합니다. 불교 화두 몇 개를 잡고 있기도 하고요….”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요즘 한참 인기있는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 와인에의 원초적 갈망을 확인하기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떠나는 모습을 떠올렸다. “대중여론이 당장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것 같지만 그 방향성(추세)은 크고 무겁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는 한 예로 2년 전 조사에서도 개헌 찬성이 60% 대, 그러나 시점은 지금이 아니다가 60%대였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이후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쉽사리 변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뿐”이라고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고 살짝 물었더니 김 소장은 “지금 예측하는 것은 바람이거나 예언일 뿐이다. 분석적 영역이 아니고 문학에 가깝다”며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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