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파업 때마다 개입
청와대가 파업 때마다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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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파업 노태우의 회사 폐쇄 철회 명령 그래도 파업은 계속됐고 노조의 파업이 논리와 명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었지만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중역들도 지쳐 포기 상태까지 갔다. 그쯤 되자 중역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어설프게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H공장장(인터뷰 시점)이 후회스럽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6·29 직후부터 사회가 벌써 변하고 있으니까 너도나도 정치가가 다 된 것처럼 공장 안에서도 개헌해 보자는 소리가 나오고 그랬다고요. 그렇다고 그런 친구들한테 당신이 정치가냐고 퉁을 줄 순 없잖아요. 벌써 뭐 사회적 분위기가 으샤으샤하면 생기는 게 있다는 쪽으로 머리가 돌아갔지 생산성 얘기는 먹히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되니까 나중에는 중역들이 어떻게든지 노조 간부들을 구워삶아 술을 사 먹여서라도 노조를 조용하게 만들어야 되겠구나 하는 쪽으로 자꾸 머리를 써요. 지금도 보세요, 대개 보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좋게 넘어가고, 괜히 앞에 나서서 설득하겠다고 했다가 망신이나 당하면 어쩌나 해서 잘못하는 걸 봐도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나가잖습니까? 그러니까 술로 달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솔직히 그때 중역들한테 술 대접 안 받은 노조 간부는 등신이고, 회사 외상장부 못 만든 술집은 술집도 아니라고 그랬어요.” 생산 현장을 관리하던 중역들 진단이니까 가장 현실적인 원인 분석이고 뼈아픈 후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원칙과 상식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측을 향한 구호까지 정 회장을 더욱 자극했다. 노조의 구호는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먹고사는 것이 기업주’라는 것이었다. 그 구호가 공장을 흔들고 있었다.
“6개월 이상 문 닫을 각오 해야 ” 정 회장은 더 이상 인내할 명분마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전장에서도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는 것인데 자신이 커 온 회사의 회장을 향해 노동자의 피와 땀을 먹고 산다는 외침 앞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결심했다. “공장 폐쇄다!” 창업 20여 년 만에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시하는 회사로 성장했지만 더 이상 노조 요구에 굴복하면 현대차는 더 비참한 형태로 좌초하게 될 것이 뻔하고, 그럴 바엔 화려할 때 문을 닫고 차라리 새로운 근로자들을 채용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하는 것이 낫다고 중역들에게 설명했다. 마침내 정 회장은 왕 회장(정주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공장 폐쇄에 따른 자신의 뜻을 강력히 전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공장을 폐쇄시키겠습니다.” 왕 회장은 잠시 표정이 없어졌다. “결심한 게야?”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분규 초기에 철저하게 막지 못하면 면역성만 키워준다고 했습니다. 미쓰비시도 분규가 발생했을 때 6개월 동안 문을 닫았고, 미쓰이 광산은 11개월 동안 폐쇄시키면서 7000명을 해고했습니다. 미국도 공장 폐쇄로 단호하게 대응한 기업이 많습니다. 우리도 대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폐쇄하면 분규를 잠재울 수 있어?” “적어도 6개월 이상 닫아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잘못됐는지 깨닫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없으면 신규채용을 해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건 6개월 이상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얘긴데, 자신 있어?” “결심을 했습니다.” “회사로서는 해줄 만큼 해준 거 아니야? 비싼 수업료(시행착오로 들어간 돈이 많다는 뜻)를 엄청 내고 오늘날까지 왔는데, 아직 빚도 많잖아. 그자들이 왜 그리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이야? 그래, 닫는 게 옳다면 닫아! 해보는 거지 뭐!” 왕 회장도 결단이 빠른 사람이다. 그리고 왕 회장이 결심을 해준 이상 현대차 공장은 폐쇄가 결정된 것이다. 참으로 무거운 분위기였다. 정 회장은 몇 마디를 덧붙였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공장을 폐쇄하면 부품업계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나중에 (왕 회장한테도)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올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대로 나가면 결국은 하청사들도 분규가 일어날 겁니다. 우리가 폐쇄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하청사들도 도와주는 일입니다. 한동안 형님을 무척 괴롭게 할 텐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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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가 ‘왕 회장’에게 직접 전화 평소에는 ‘명예회장님’으로 호칭한다. 그런데 이날은 ‘형님’이라고 그랬다. 외로웠던 것 같았다. “근데 말이야, 상영이라면 몰라도 네 성격으로 고약한 친구들을 이겨낼 수 있겠어? 데모 일어났다니까 벌써 건설 쪽 사람들은 승부가 끝났다고 그러던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동차 회장은 순해 빠져서 노조를 당해내지 못할 거라는 얘기야.” “저를 몰라서 하는 소리들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소신껏 해봐!” 정 회장이 돌아가자 왕 회장은 당시 공장장이었던 장낙용 부사장을 불러올렸다. “공장 폐쇄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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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파업 청와대 측, 민노총 핵심 구제 요구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난 98년 7월의 노사분규는 분명 경제적·사회적 사건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DJ 정권을 심판대에 올려놓게 만들었던 국가적인 흉사(凶事)였다. 현대차 파업 중 최대였다는 무려 36일간의 계속된 파업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업 이미지 손실은 차치하고, 9427억5000만원의 매출 손실과 10만4700대의 생산 차질이 생겼다는 통계적 숫자 따위는 현대자동차의 아픔일 뿐, DJ 정권에는 별로 놀라울 것도 흥미스러울 것도 없는, 어쩌면 귀찮은 보도용 자료 몇 줄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사실 1998년에 발생한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일반의 상식적 판단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논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게임이었다. 왜냐하면 원래 이 파업은 단 한 사람도 정리해고를 할 수 없다는 노조의 강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때의 격렬했던 분규 사태가 다름 아닌 현대차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후 발생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대차로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겠다고 만장일치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밟아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나섰던 것인데, 다른 조직도 아니고 민주노총 하부 조직인 현대차 노조가 일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파업을 시작했으니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게임이었다. 실제 ‘정리해고에 관한 노동법’은 당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해 2월 22일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현대차 경영진도 새로운 노동법이 통과됐으니 경영정상화 차원에서 정리해고 대상을 노사협의 테이블에 올렸던 것이지만 노조는 무조건 안 된다며 파업의 칼을 꺼내들고 휘둘렀다. 8월 10일. 시간은 누구의 편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게 흘렀고 갈수록 사태는 악화됐다. 가장 강성에 속한다는 현대차 노조는 그 명성답게 대단한 결속력을 보이며 줄곧 극렬한 시위를 멈추지 않았고, 이미 파업 현장은 질서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사측은 절박하게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메아리조차 없었다. “정부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생산 현장이 불법의 제물이 되고 있는데도 공권력이 외면하고 있다면 기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야!” 답답한 정 회장은 박병재 부회장을 시켜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하게 했다. 그런데 박 부회장이 가지고 온 보고 내용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정 회장의 기억은 이러했다. “박 부회장이 사회복지인지 뭔지 수석이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왔는데 법과 질서는 서구 민주국가에나 있는 것이고, 공권력 투입을 반대한다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지? 경악스럽더라고. 그럼 우리가 법과 질서도 없고 공산국가에 살고 있다는 거야? 도대체 그런 소리가 어떻게 청와대 수석 입에서 나오지? 이 말은 들은 그대로라고, 실제라고! 몸이 다 떨리더라고. 그래서 DJ 본심이 뭔지 확실하게 파악을 해봐야지 큰일났구나 싶더라고. 당장 다시 확인을 해보라고 했지. 그랬더니 청와대에 35세인가 36세인가 하는 장모씨가 있는데, 그 친구가 DJ한테 직보를 하는 인물이라고 그래요. 그 친구를 만나서 정리해고 때문에 불법 파업이 장기화되고, 국제적으로 국가 신뢰도 문제가 심각하게 상처를 입게 됐는데 이 나라 공권력이 왜 이 모양이냐고,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를 주욱 하면서 대통령 뜻을 좀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그 친구한테서도 대충 비슷한 대답이 오더라는 거야.” 정 회장은 거칠어진 숨소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이어갔다. “이쯤 되니까 앞이 깜깜한 거야. 이 땅에서 기업을 계속해야 되나 싶고 말이지. 좌우간 공권력이 안 들어오겠다는 걸 어떡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잖아요. 법이 있는데도 공권력이 안 들어오겠다고 하니 새 노동법을 믿은 우리가 바보짓 했던 것이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리가 백기를 들고 정리해고는 없다, 정리해고 안 한다고 선언을 할 수밖에 없다, 선언을 해버리라고 했어!” 정 회장은 울산공장으로 연결돼 있는 사내(社內) 직통 전화로 파업 현장에 내려가 있던 김수중 부사장을 찾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전화기의 스피커폰을 통해 회장 집무실을 진동시켰다. 정: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김: 노조에서 새로운 안을 내놓고 있어서…임금 삭감안을 내놨습니다. 임금을 다소 삭감하고 그 대신 회사가 제시한 해고안을 철회하라는 내용입니다. 정: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부사장이 그자들을 몰라서 그런 소리 하고 있어요? 그건 명분 축적용에 불과한 거 아니야! 임금 줄이고 해고하지 말자고 했는데도 회사가 거부했다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소문 만들려고 수작하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오! 김: 여기 분위기도 그렇게 감지되고 저희들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태에서 덮을 수도 없는 거고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바꿔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명예회장(정 회장)님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정: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더니) 부사장, 목도 잠겼는데 몸을 좀 챙겨요. 정 회장은 전화를 끊으면서 연방 거친 숨을 토해냈다. 눈 밑이 붉어져 있었다. 위기라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느긋한 성격이 되지 못하는 정 회장은 바로 전화기를 다시 집어들고 김판곤 전무를 바꾸라고 했다. 정: 그쪽(김 전무는 기관을 맡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김: 계속해서 다 만나보고 있습니다. 경찰에 갔다가 검찰에도 갔었는데 아직은 공권력을 투입할 의사가 없다고 그럽니다. 정: 그런 거지 같은 소리가 어딨어! 아직이라는 게 뭐야? 정 회장은 지친 듯 소파에 파묻혀 앉았다. 줄곧 침묵했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 침묵은 분노이기도 했다. 자리를 옮겨 정 회장은 소름이 돋는 얘기를 계속했다. 참으로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해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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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밖에 기댈 곳이 없다 ” “청와대에 중역을 보냈을 때 수석이라는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해고 대상자 중에 민주노총 핵심 121명은 정리해고에서 구제해 달라고 했어.” 듣고 있던 기자조차 귀를 의심했고 반어법으로 다시 물어봐야 했다. “내가 깜짝 놀랐는데, 수석이라는 자가 그런 요구를 자기 입으로 한다는 것도 경천동지할 일이고, 구제를 해달라는 건 무슨 소리지? 해고해야 할 대상들 중에 핵심 121명을 구제해 달라는 건 도리어 회사가 온실처럼 보호해 주면서 돌보고 키우라는 요구 아니야? 더구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지?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는 건가? 목을 내놓지 않으면 그런 소리 못해. 우리 중역이 직접 그 친구 만나고 오더니 까무러칠 노릇이라면서 얘기를 하더라니까.”
민주노총 핵심이 그렇게나 많이 현대에 와 있다는 겁니까? 그게 누구라는 겁니까? “그 세력의 핵심이 그렇게나 많이 우리(현대차)한테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누가 민주노총의 핵심인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럼 좋다, 그 명단을 달라고 했지. 없대. 줄 수 없다는 얘기지? 증거를 안 남기겠다는 거겠지? 그럼 어쩌라는 거야. 보면 아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는데, 우린 진짜 모르고 있거든? 봐서 어떻게 뭘 알아. 우리가 간첩 잡는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야. 소름이 싹 돋더라고. 도대체 청와대가 어디를 끌어안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야.”
그렇게까지 보호하겠다고 할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청와대가 겉으로 하는 얘기는 이거야. 저들(청와대)이 7·21 보궐선거에서 졌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데, 저들이 분석한 내용을 보니까 지게 된 이유가, 재계도 우리(DJ)편이 아니고, 중산층도 우리를 떠났다, 그래서 졌다, 그러니 노동자밖에 확실히 잡을 게 없다, 이게 결론이야. 그러다 보니까 노동자를 대표하는 핵심들이 잡혀가면 안 되겠고 공권력 투입도 안 하겠다, 그런 식으로 나오고 있는 거야.” 회사는 정당한 법집행을 강력히 요구했다. 수차에 걸쳐 악을 쓰듯 요청했다.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조업을 하겠다는 근로자에게 닥치는 대로 무차별 폭행을 하면서 그것도 부족해 사무실을 지키는 중역까지 피투성이가 되도록 잔인하게 난타하는 그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수없이 호소하는 법 집행 요구를 경찰도 검찰도 외면했다. 피투성이가 된 중역이 병원에 실려가면서 공권력 투입을 호소했지만 공권력은 요지부동이었다. 악몽 같은 파업 사태는 8월 23일, 무려 36일 만에 끝났다. 진정한 근로의식을 회복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던 고용 조정도 결국은 성과 없이 끝난 것이며 사실상 정리해고를 위한 새 노동법도 대외 홍보용으로는 존재할지 몰라도 생산 현장의 무대에서는 막이 내린 셈이었다. 당초 6700여 명의 정리해고를 계획했던 현대차 고용 조정은 270여 명을 내보내는 것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그나마 해고자 중에 생산 인력은 2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식당 종업원과 부대시설 종사자가 포함된 숫자였다. 당시 KBS는 이렇게 보도했다. ‘…200여 명 때문에 3000여 하청사들이 무너져가고, 36만여 명의 근로자들이 쓰러지고 있다…정부의 대처는 원칙도 없었고 타이밍도 놓쳤다…. ’결국 백기도 들지 못하고 정리해고도 못하면서 현대차 노사분규는 불신과 저항의 깊은 골만 서로에게 남긴 채 패자만 있는 전투를 했던 셈이다.
2003년 파업 노조 공화국의 완성 듣기에도 민망하지만 국내에서도 최근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이유가 첨부되면서 많은 루머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것은 머지않아 현대차가 망할까봐 걱정이라는 소리들이다. “큰일났지요. 현대차가 망하기 3년 전이다, 5년 전이다 하는 소리를 요즘 어디 가도 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공장에 들어가면 빨간 조끼 입은 간부들은 여전히 설치고, 매년 분규는 일어나고, 이래가지고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큰 문제 아닙니까?” 한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3사 중에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를 육박한다는 최대의 현대차가 왜, 무엇 때문에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것처럼 불행스러운 루머들이 꼬리를 물고, 더욱이 울산에서부터 흘러다니고 있을까? 그 깊은 우려의 분위기는 이른바 2003년 있었던 ‘8·6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소위 노조공화국이 된 파업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겨운 장기 파업 끝에 현대차의 ‘노사합의’ 발표가 나오자 경제 5단체들과 일반 국민은 현대자동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과 평가를 내렸다. 그들은 주5일제 시행, 노조의 경영참여권 확보,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노조 동의 없이 할 수 없도록 하고, 정규직 58세까지 정년 보장, 신차 개발할 때도 노조 동의, 합작할 때도 노조 동의, 공장 해외 이전할 때도 노조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등의 소위 ‘단협’ 내용을 보고 경악하면서 대한민국의 ‘노조 공화국’이 결국 현대차에서 건설됐다는 말까지 했다. 이때 구체적으로 나타난 여론을 보면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기업주들은 극단적인 표현도 했다. 그들은 현대차 단협 내용이 독가스처럼 번져 자신들이 운영하는 기업에도 스며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차라리 현대차가 없어지든지 아니면 한국을 떠났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현대차 시한부 운명론이 떠돌고 있는 것이 악의적인 루머라고만 할 수 없는 것도 냉정히 들여다보면 까닭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회사가 4%의 이익을 남기면 아주 잘하는 장사고, 2%만 남겨도 성공이다’는 것은 정설처럼 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는 몇%의 이익을 남기기에 연간 130여 일 휴일에 평균 5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주고 각종 수당과 이상한 명목의 특별 위로금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파업 당시 회사 내부에서 보도용으로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3년 노조의 파업과 잔업, 특근 거부로 7만56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해 회사로서는 1조원이 넘는 생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불과 한 달 남짓에 1조원의 피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손실을 무슨 방법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인가? 흔히 생산성을 향상시켜 만회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노사가 공통적으로 내미는 논리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떤 이론을 대입시켜도 부합할 수 없는 공허한 소리다. 현대차 논리대로라면 파업하지 않은 다른 회사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줄 몰라서 더 많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생산성 향상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대차는 노사합의로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인력 감축도 안 되고, 생산 시설을 바꾸어 시간당 생산량을 왕창 늘리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작업 조건과 결부돼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되기 때문에 실현성이 없다. 그런데 무슨 수로 생산성을 높여 손실을 만회시킨다는 것인지 계산법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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