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중국서 ‘최고가품’으로 승부
[파워중견기업] 중국서 ‘최고가품’으로 승부
9년 만에 만든 커피잔 “저희 제품이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은 그동안 쌓아온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행남자기의 나이는 65세입니다. 헛되이 나이만 먹은 건 결코 아닙니다. 그동안 수많은 ‘최초’를 만들며 한국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온 기술력이 있습니다. 또 자기 하면 우리나라 아닙니까?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게 세계적 회사로 거듭나겠습니다.” 1942년 설립된 이후 행남자기의 가장 큰 장점은 앞선 기술이었다. 초대 회장인 고 김창훈 회장은 과거 한국에서 기술을 배워갔던 일본 도자기들이 지금 한국보다 기술력이 앞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당시 시중에서 사용되는 ‘좀 괜찮다’하는 자기는 전부 일제였기 때문이다.
|
|
‘만들든가 아니면 망하든가’ 그는 당장 호텔 지배인을 불러 자기를 생산한 업체에 대해 물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온 쿠퍼 사장을 행남자기 사람들이 크게 환영했음은 물론이다. 마침 최신식 설비를 들여오기 위해 기초공사가 진행 중인 행남자기의 공사 현장을 보고서 그는 공장이 완공돼 생산된다면 전량 수입하기로 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공장이 준공되자마자 행남자기는 국내 최초로 ‘롤러 머신’이라고 하는 최신 자동성형기를 들여와 대량생산의 기틀을 다졌다. 수출 계약으로 이미 판로를 확보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제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신제품을 개발하는 길은 곧 난관에 부닥쳤다. 고급품에 속하는 스톤웨어 생산에 계속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은 당시의 기술적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스톤웨어는 깨알 같은 점들이 박혀 있는 자연스러운 외부 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산화철이 함유된 유약을 발라 구워내야 했는데, 이 산화철들이 고르게 퍼지지 않고 한쪽으로 몰려 불량품이 쏟아졌습니다. 여기에다가 유약이 한쪽으로 몰리는 ‘부유 현상’까지 겹쳐 결국 생산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지요.” 이미 신용장까지 받아 놓은 상태에서 행남자기는 위기에 봉착했다. 답답했던지 스톤웨어를 수입하기로 했던 미국 회사에서 두 명의 기술자를 파견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행남자기의 요청으로 일본에서 온 기술자들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제 믿을 곳이라고는 우리 자신밖에 없더군요. 망하든지 만들어 내든지요. 모든 기술자가 밤을 새워가며 일에 매달렸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다가 집에 돌아가 땀에 절은 러닝셔츠를 벗어 쥐어짜면 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해결해냈습니다. 나오는 물건들을 보며 전 직원이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1974년 9월 30일 첫 출하를 시작으로 스톤웨어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채 1년도 되지 않는 9개월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자신감이 생긴 행남자기는 1985년 4월에는 베네수엘라에 도자기 플랜트를 수출했다. 1989년에는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설립해 해외 생산기지로 삼았다. 해외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자기가 ‘가장 친환경적’ 1990년대 말부터 행남자기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저가의 중국 상품이다. 빠르게 기술력을 키운 중국 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행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저가 상품의 핵심은 품질이 아니라 가격이다. 어느 정도만 품질이 받쳐주면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저가품 시장에서 행남의 점유율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중국 내 판매라인 구축을 위해 기존의 백화점 판매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판매망에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중국 업체들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저가 시장은 잃었지만 ‘중국 고가품 시장’이란 새 시장이 생겼기에 진출한 것이다. 중국에는 본차이나 위주의 고가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최근 출시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스 컬렉션’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월부터는 중국 내 대형 백화점에 단독매장을 개설,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현재 내수시장은 핵가족화와 저출산, 외식산업의 발달 등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가정 내 도자기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혼수품 시장은 과거의 홈세트 및 반상기의 수요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대신 소품, 단품 위주의 구입이 늘어가고 있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홈세트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수량보다는 실속있는 구성으로 전환할 생각이며,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뚝배기가 포함되는 혼수시장의 변화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인기있는 무늬의 제품들은 단품 구성을 용이하게 하고, 기호에 맞는 맞춤 구성이 가능하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최근 환경문제가 심화되는 것을 지적하며 자기야말로 음식을 담는 가장 친환경적인 도구라고 설명한다. 뜨거운 음식을 담았을 때 플라스틱 식기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모든 음식점이 자기 그릇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자기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저희 회사 노조는 1962년 설립됐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의 분규도 없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일하는 가족적인 회사가 됐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흙과 불의 예술입니다.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이 부족하면 나올 수 없지요. 모두 마음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전통을 계속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