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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 풍경 바꾸는 ‘빅 웨이브’

일본의 문화 풍경 바꾸는 ‘빅 웨이브’


특수유리 수천 장 이용해 지은 도쿄 국립 미술관, 자체 소장품 없이 기획전만 개최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六本木)는 최신 유행의 패션과 음식, 오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나무가 늘어선 이 지역에서 좀 더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길 기회도 점차 늘어난다. 지난달 이 지역에 문을 연 도쿄 국립 미술관[일명‘빅 웨이브(Big Wave·큰 파도)’]은 일본의 최신 미술관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설계한 구로카와 기쇼(黑川紀章)의 이 기막힌 건물은 수천 장의 유리를 이용해 흐르는 물 같은 투명한 느낌을 준다. 높이 22m의 중앙홀과 1만4000㎡의 전시 공간(일본 최대)이 특징이며, 열을 차단하는 특수유리의 사용과 빗물의 재활용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이제 일본은 최첨단 미술관을 갖게 됐다”고 하야시다 히데키(林田英樹) 관장은 말했다. “새로운 예술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미술관 측은 건물의 흐르는 듯 열린 구조에 걸맞게 독특한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영구 소장품을 지니지 않고 수시로 대규모 기획전을 여는 방식이다. 하야시다 관장은 가능한 한 세계적 미술가들과 장래성 있는 젊은 일본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두 개의 대규모 전시회를 동시에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관기념전인 ‘물질 세계 속의 삶 - 20세기와 그 이후 미술에 나타난 사물 전(Living in the Material World - Things in the Art of the 20th Century and Beyond)’은 폴 세잔과 마르셀 뒤샹부터 재스퍼 존스와 코넬리아 파커까지 20세기 전반에 걸친 작품 500여 점을 전시한다. 또 파리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 200점을 선보이는 전시회도 얼마 전 막을 열었다. 도쿄 국립 미술관은 개관 이후 매일 수천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독특한 건물뿐 아니라 루이뷔통과 아르마니 등 명품을 쇼핑하는 길에 미술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 미술관은 때마침 롯폰기에 문화적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차에 개관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주로 바와 클럽, 부티크들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03년 사무실 건물들과 모리 현대미술관을 포함한 롯폰기 힐스 복합단지가 들어선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이 지역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크게 변할 줄은 몰랐다”고 모리 미술관의 난조 후미오(南條史生) 관장은 말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빅 웨이브의 길 건너편에는 다음달 구마 겐고가 설계한 산토리 미술관(일본 전통 미술품 전시)과,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가 설계한 디자인 연구소 21/21 디자인 사이트가 문을 열 예정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30년 전 세워진 국립 미술관 건립 계획은 원래 연례 전시회를 열 더 넓은 공간을 원하는 수십 개의 지역 미술협회 요청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립’ 미술관으로는 그런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새 미술관은 대중에게 더 큰 혜택을 주려면 소규모 지역 전시회뿐 아니라 대규모 전시회도 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미술관이 마치 전시회의 백화점처럼 보일 듯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말했다. 또 이 미술관이 건축 비용으로 이미 2억9000만 달러를 소비했기 때문에 혁신적인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계획할 자원이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이 미술관이 그 새로운 시설만큼 훌륭한 전시회를 주최할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라고 도쿄 메트로폴리탄대의 미술학 교수 나가타 겐이치는 말했다. 출발이 좋다. 비평가들이 건물의 디자인에 찬사를 보냈고,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에서만큼 전시 시설의 편리함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차기 전시회로는 모네전과 떠오르는 일본 디자이너들의 전시회가 계획돼 있다. 이대로 나간다면 빅 웨이브는 앞으로 일본 문화 풍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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