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에 제동 걸린 현대자동차
질주에 제동 걸린 현대자동차
노사분쟁, 고비용, 저생산성 등 미국 업체의 단점 그대로 답습 지난해 수익 35%나 줄어들어 한국의 전주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다. 그러나 두 도시는 노조가 막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자동차 대기업 현대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전주 공장의 야간 근무조를 늘리려고 1년 가까이 애써 왔다. 그러나 노조는 매번 거절했다. 10개월치나 주문이 밀린 데 발끈한 현대 경영진은 최근 노조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해외로 내보내겠다고 경고했다. 노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야간근무가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했다”고 김석 현대차 노조 부본부장은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근무여건은 이미 열악하다.” 사실 현대차 근로자들이 받는 연봉(평균 5500만원)은 한국 블루칼라 노동자 중 가장 높은 편이다. 디트로이트 자동차업계 근로자의 평균 연봉에 아주 조금 못 미칠 뿐이다. 미국 자동차 대기업 GM과 포드는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문제점에 허덕이며 도산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6위 규모의 자동차 업체인 현대도 똑같은 문제 다수를 드러냈다. 지난해 현대의 수익은 2000년 이후 처음 35% 감소했다. 원인의 일부는 원화 가치 상승(현대의 수출품 가격이 비싸진다), 국내 수요 감소, 회장을 둘러싼 부패 추문 등 회사나 국가에 특정한 문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디트로이트식 고비용, 저생산성, 잦은 노동분쟁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현대는 10여 년 전부터 도요타 같은 일본의 선도업체를 본받겠다고 나섰지만 핵심적인 비용과 노동지표 측면에서 일본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업 다수에도 크게 뒤떨어졌다. 현대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큰 비중(한국 전체 수출과 고용의 약 5%)을 감안할 때 현대의 문제는 국가 전체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현대의 노조와 경영진이 진지하게 거듭나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서울대 경영학과의 윤창현 교수는 말했다. “디트로이트 3대 자동차 회사의 쇠퇴와 너무 닮았다.” 현대의 추락은 예상 밖이었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잠시 주춤했던 현대는 공세적인 해외 확장과 놀라운 품질관리로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 갔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연간 수익이 1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 수익을 생산라인 기술과 공학기술 향상에 재투자하는 대신 근로자 임금의 대폭적 인상에 썼다. 결과적으로 일본 경쟁업체뿐 아니라 미국 기업들에도 생산성이 크게 뒤떨어졌다. 현대에서는 자동차 한 대 생산에 드는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30시간이다. 반면 도요타는 약 22시간, 포드는 약 26시간이다. “현대는 생산성에 비해 노동비용이 너무 높다”고 삼성증권의 김학주 자동차업계 분석가는 말했다. “도요타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 한편 포드와 GM에서는 대규모 감원 등 원가절감 후의 상황이 나아졌다. 이런 회사들의 경영이 호전되는 큰 이유는 임금삭감이나 실업의 현실에 직면한 근로자들이 임금, 의료 보장, 연금 문제에서 대폭 양보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권을 쥔 현대의 ‘귀족 노조’는 1987년 창설 이후 한 해만 빼고 매년 파업을 했다. 근무조 신설부터 인력순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난 1월 노조의 과도한 요구와 부패 추문에 휘말린 경영진에 분노한 국내 소비자들이 현대자동차 불매운동을 벌였다. 국가적 경제목표 달성에 아직도 개인의 희생이 중시되는 한국에서는 전례없는 일이었다. 노조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총수입 대비 임금 비중은 90년대 말 이후 17%에서 9%로 하락했다. 그러나 그 한 가지 원인은 회사의 성장이었다. 그보다 비율이 더 낮은 외국 경쟁업체가 많다. 현재 현대가 100만 대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2010년까지 314만 대로 늘릴 계획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실, 또 지난해 7만5000명이 실직한 디트로이트의 쓰라린 교훈에 현대차 노조도 망설일 듯하다. 지난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미국 내에서 무려 1만30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경영진은 미국 전체 사업부의 매각을 검토한다. 현대가 노조 문제에 대처하면서 전주 공장에도 곧 해고통지서가 배달될지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