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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들어가는 러시아 군대

썩어들어가는 러시아 군대


군부 부패로 군사력 증강은 빛좋은 개살구 국방장관 출신으로 무뚜뚝한 성격의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제1 부총리는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끌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의회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이바노프는 189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 군사력 재건 계획을 발표했다. “혁명적인”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항공모함, 조기경보 시스템, 그리고 베일에 싸인 “제5 세대” 전투기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며칠 뒤 러시아 전략 미사일 부대의 니콜라이 솔로프초프 사령관은 새로 개발되는 미사일 중 일부가 폴란드와 체코공화국을 “새로운 목표물”로 삼을지 모른다고 으름장을 놨다. 폴란드와 체코가 미국의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자국 내 설치에 동의하면 보복하겠다는 협박이다. 최근 지정학적으로 냉전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과거의 초강대국 위상을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간절한 야망 때문이다. 그렇게 되려면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 혹은 적어도 그 비슷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하기야 지난 10년간 미국은 러시아의 세력권을 조금씩 잠식해 왔다. 옛 소련 위성국들을 받아들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확장하는가 하면, 이제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시스템을 세계 도처에 설치한다. 미국은 ABM의 목적이 이란이나 북한 같은 불량 국가들의 공격 격퇴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믿지 않는다. 러시아는 ABM이 자국의 전략적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첫 번째 조치라고 의심한다. 심지어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ABM을 “선제 공격용”이라고까지 비난했다. 러시아 국방부 출신의 레오니드 이바쇼프 예비역 장성은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적국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호전적인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냉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냉전 시절 미국 정보당국은 소련의 위협을 과대 평가했다. 오늘날 미국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 뮌헨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이 “제어되지 않는” 군국주의 노선을 걷는다고 맹비난했지만,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게이츠는 러시아의 대규모 무기 수출(이란과 시리아에 판매하는 무기 수출액이 1년에67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과 러시아산 에너지의 정치 무기화를 더 우려하는 듯했다. 게이츠는 그런 우려 외에는 푸틴과 그의 동료 국수주의자들의 속셈을 간파한 듯하다. 러시아의 목소리가 커졌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휘두를 몽둥이는 매우 작다는 인식이다. 수치상으로 보자. 물론 1890억 달러는 큰 돈이다. 늘어나는 석유달러 덕분에 러시아의 국방예산은 2001년 82억 달러에서 2007년 313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렇다 해도 그 금액은 크렘린이 소련 시절 지출했던 국방비에 비하면 3분의 1도 안 된다. 보다 중요한 점은 러시아군이 (옛 소련군에 비해) 약 20년이나 노후화됐으며, 노인네처럼 훨씬 더 허약해졌다는 사실이다. 한때 위풍당당했던 붉은 군대는 가엾게도 비참한 처지다. 문제는 하드웨어 부문이 아니다. 하드웨어 문제는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 사실 러시아군은 고성능 대전차 미사일, 수호이 30MKI 전폭기, 차세대 단·중거리 미사일 등 첨단 무기 부문에서 과거의 날카로움을 회복했다.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은 소프트웨어 부문이다. 의무적인 군 복무제도 때문에 대부분 강제로 징집된 신병들은 수준이 낮고 학대받는 데다 장교들의 부패 관행은 뿌리깊다. 지난 2월 블라디미르 미하일로프 러시아 공군사령관은 군대의 실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연설로 크렘린을 경악케 했다. 그에 따르면 2006년 공군에 징집된 신병 1만1000명 중 30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 또 10%는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문제를 지녔고, 15%는 질병에 걸렸거나 영양실조였다. 미하일로프 휘하의 병사 중 25%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3%는 어머니를 모르며, 또 다른 3%는 고아 출신이다. 예비역 장성 이바쇼프는 미하일로프가 언급한 문제점들에 공감을 표하면서 “징집병의 다수는 읽고 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많은 신병이 정교한 탱크는커녕 자동차 운전조차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무지한 병사들에게 겨우 6개월 동안의 신병교육을 시킨 뒤 100만 달러짜리 T90 탱크를 몰게 하다니,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이바노프 부총리는 러시아 의회 연설에서 “지금 러시아군의 수치상 전력은 최적 상태다. 현재의 113만 명보다 줄어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정도 병력이면 규모상으론 클지 모르나 수치상의 얘기일 뿐이며 질적으로는 참담한 수준이다. 또 다른 통계를 보자. 러시아 청년의 약 89%는 징병검사를 담당한 의사나 모병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징집을 회피한다. 그 결과 실제로 징집되는 사람은 사회적 빈곤층이나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청년들뿐이다. 러시아 지상군 부사령관 출신의 에두아르트 보로브요프 예비역 장군은 “우리는 사회의 쓰레기들을 징집해 놓고 군에서 만사가 잘 돼 간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오랫동안 완전한 직업군대로 모병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창해 왔다. 그러나 국방 분석가 알렉산드르 골츠는 군 고위 장교들이 겉으로는 복무 연한을 2년에서 1년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크게 홍보하면서도 징집제도 폐지 계획을 “조용히 방해해 왔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군부가 징병제도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징집병들은 수익성 좋은 노예노동과 뇌물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인근의 기동부대 중대장이었던 빅토르 보브로프 대위는 지난 1월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 이렇게 썼다. “러시아군은 악취나는 늪이다. 위부터 아래까지 철저히 썩었다.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장교들이 하는 일이라곤 징집병과 그들의 부모로부터 돈을 착취하는 일뿐이다. 장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우려먹느냐다.” 보브로프는 유서를 쓴 직후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그는 자신이 공금횡령 혐의를 받았지만, 상관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은폐하려 날조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1월에만 모두 67명의 러시아 군인(대부분은 핍박받은 징집병)이 자살했다. 지난 2월 징집병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병사들의 어머니 위원회’는 드미트리 이등병의 사연을 공개했다. 2005년 징집된 드미트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군 북서부사령부 산하 정예 통신부대에 배속됐다. 근무하기에 편한 부서로 보였다. 그러나 2개월간의 마무리 기초훈련이 끝나기 전, 당시 18세의 드미트리는 자신에게 희한한 직책이 배정됐음을 알게 됐다. ‘데디’(할아버지)로 불리는 고참 징집병들이 그에게 남자 매춘부로 일하도록 강요했다. 뉴스위크에 제공한 비디오 증언에서 드미트리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밤 1000루블(약 35달러)을 벌어와야 했다. 그 돈을 벌지 못하면 구타 당했다.” 결국 드미트리는 부대를 탈영했고, 그것 때문에 형사고발됐다. ‘병사들의 어머니 위원회’ 소속으로 1989년 이래 징집병들의 군대 생활을 관찰해 온 발렌티나 멜니코바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군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파멸시킬 만한 핵미사일들을 보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패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병사들의 어머니 위원회’가 러시아 군부나 크렘린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함은 당연하다. 바실리 판첸코프 내무부 대변인은 징집병들이 남창(男娼)으로 이용된다는 얘기는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저의에서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병사들의 어머니 위원회’는 거추장스러운 시민단체들을 제거하려는 크렘린의 최근 공작에서 표적이 됐다. 시민단체들은 당국에 다시 등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고(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들의 활동은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한편 크렘린은 군대 안에서의 착취와 협박 문제에 소련식의 선전술로 대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선전술의 가장 최근 사례는 요란하게 치러진 ‘조국 수호자의 날’ 연례 기념행사 장면의 TV 방영이었다. 화면에는 군 합창단, 춤추는 코사크족 출신 병사들, 가슴 가득 훈장을 단 채 눈물을 글썽이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각종 화려한 깃발과 공개적인 애국심의 고취는 군의 이미지를 빛내는 데 기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러시아군의 전략적 능력을 약화시키는 보다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러시아 기술자들은 탱크와 전투기를 만드는 데 뛰어나다. 그러나 러시아군에서 전략적 위협이 될 만한 무기는 급속히 노후화하는 핵탄두 장착 ICBM뿐이다. 지난해 푸틴은 러시아가 새로운 세대의 ICBM을 개발했다고 크게 선전했다. 그 ICBM은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독립적으로 비행하는 탄두를 갖췄다고 했다. 크렘린 강경파는 그 ICBM이야말로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망 계획을 무력화하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망은 날아오는 적국 미사일의 비행궤도를 계산해 그것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는 군사위성들을 중심으로 구축돼 있다. 그러나 군사분석가 파벨 펠겐하우어는 스스로 목표를 찾아 비행한다는 러시아의 차세대 핵탄두가 “실은 1980년대의 설계 방식을 재사용한 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국방 기획가들을 정말로 걱정하게 만드는 점은 러시아가 발사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요격 불가능한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했는지 여부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정한 차세대 무기에 관한 얘기는 그저 소문일 뿐이다. 결국 그것이 목적인 듯하다. 푸틴은 군사력 과시만으로도 즐거울지 모른다. 그의 최우선적 과제는 2008년 자신의 후계자에게 권력을 순조롭게 이양해주는 일이다. 그의 후계자는 최근 부총리로 승진한 이바노프일 가능성도 있다. 막강한 군사력을 다시 갖추겠다는 최근의 수사는 그런 안정된 권력 승계 작업의 일환이다. 문제는 크렘린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수사를 진실이라고 믿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With ANNA NEMTSOVA in Moscow and JOHN BARRY in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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