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8人의 일본 맛집 순례] 수행자의 고요함으로 봄을 먹다
[CEO 8人의 일본 맛집 순례] 수행자의 고요함으로 봄을 먹다
불교 승려들을 위한 사찰 음식이 주 메뉴다. 육식이 배제된 채식 위주의 식자재로 구성된 고품격 쇼진(精進)요리. 일본 도쿄 내에서도 손꼽히는 쇼진 요리점으로 세계 50대 레스토랑 선정 1위를 차지한 스페인의 페란 셰프도 얼마 전 다녀간 명소다. 식기의 선택과 전체 코스 세팅에 대한 지시는 당연하고 그날 손님 맞이부터 식사의 모든 코디 전체를 디렉팅하는 오카미상. 그날 역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절을 하며 일행을 반겼다. 단아한 기모노 차림의 중년의 오카미상은 조심스러우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첫인상이 다이고의 격을 한층 올렸다. 센스 있는 그릇과 전통미를 겸한 계절에 걸맞은 식재료와 어우러지는 음식 맛은 오카미상의 안목에 달려있다. 식사를 위해 젓가락을 꺼내는데 종이에 적힌 글이 눈에 띈다. ‘五觀の偈’. 수도승이 식사를 할 때마다 읊조리는 것으로 수도 수행자로서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생각해 볼 만한 글이다.
첫째, 이 식사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음을 되새겨 보자. 둘째, 나는 이 식사를 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셋째, 분노와 어리석음을 막고 다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나 식탐으로 마음이 가득 차지 않도록 하자. 넷째,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은 약보다 좋아 심신이 쇠약해지는 것을 막아주며 건강을 위함이다. 다섯째, 자신의 수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식사를 먹어야 한다. 귀한 상차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자신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였다. 세계 나라마다 식습관, 문화의 차이는 분명 있다. 식사법이 따로 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예법도 있다. 서양의 식사 예법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면 일식은 불교나 좌선의 정신에 영향을 받아 자신 내면의 ‘마음의 식사법’이 중요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대보그룹의 최등규 회장은 “글의 깊은 뜻은 식사뿐 아니라 매사에 적용할 만한 마음가짐”이라며 “회사 임직원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수첩을 꺼내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귀한 재료들은 다이고의 소유지나 산에서 직접 캐온 것들로 특히 메뉴에 표기하지 않고 우리 일행에게 깜짝 선물로 내놓은 죽순! 봄눈을 뚫고 나온 여리고 부드러운 죽순의 맛은 대지의 강한 기운이 외유내강으로 입안 가득 전해졌다. 매서운 추위를 가르고 나올 때 생명체들에겐 모든 에너지가 모아진다. 그렇게 힘을 잔뜩 받은 제철 식자재들은 우리의 몸 안에서 힘을 발휘한다. 다가올 계절을 미리 표현한 복숭아꽃 장식의 음식은 접시 안이 마치 축소시킨 정원처럼 눈이 즐겁고 입이 행복하다. 복숭아꽃 밑에 두부가 있고 그 안에 건포도가 숨겨져 있고 종지에 담긴 곤약을 이용한 쑥과 파. 그 위에 일본 전통 미소(된장)를 살짝 뿌려준 뒤 누에콩을 올렸다. 된장 소스에 유자향이 피어난다. 재미있고 독특한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살구도 보이고 시로 미소(하얀 된장) 소스로 맛의 완성도를 올렸다. 주식회사 매직컴의 마용도 회장은 “야채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하고 훌륭한 코스 요리가 완성될 수 있음에 새삼 놀랐다”며 “채식 요리가 몸에 잘 받는지, 식후에 속도 편안해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재방문하고 싶다”고 극찬했다. 이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 네오다임의 이상옥 대표는 “연로한 2대 사장이 허리를 굽혀 신발장의 우리 신발을 일일이 꺼내주던 모습이 다이고의 모든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란 생각에 진정한 장인정신을 느끼는 밤이었다”고 덧붙였다. 각자 자신이 사용한 감나무 젓가락은 다이고의 기념품으로 선물 받고 서울까지 들고 왔다. 다른 나무와 달리 감나무만은 벼락을 맞지 않는다 한다. 우리는 그날 저녁 봄을 먹고 있었다.
東京都 港 愛宕 2-3-1, 03 3431 0811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