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식품 이력 알려주는 전자 태그

식품 이력 알려주는 전자 태그

가양동에 사는 직장인 김우진(35)씨. 그녀는 까다롭다.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고집한다. 2~3년 전부터 과자를 사도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비스킷을 사고 친환경 농법을 쓴 쌀을 샀다. 최근엔 사탕수수 본래의 구수한 맛을 살리고 당도를 낮춘 설탕을 사고, 염도가 낮은 소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같은 ‘건강파’ 고객이 늘자 요즘엔 온라인에서도 친환경 채소를 팔기 시작했다. 유기농 시장은 2001년 3000억원에서 2006년에는 6700억원으로 매년 17~20% 성장하고 있다. 그녀가 먹거리를 깐깐하게 고르게 된 것은 “믿고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89년 우지 라면 사건을 시작으로 불량 만두소(2004년), 기생충알 김치(2005년), 비타민C 음료 및 식품첨가물(2006년) 등 잊을만하면 식품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 ‘못 먹을 것들’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유기농 식품을 산다.

소비자가 일일이 안전성 확인 식품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한숨 쉬는 것은 시민뿐만이 아니다. 식품업체들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자사와 특별히 관련이 없어도 유사 품목을 공급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출이 뚝 떨어지고 인터넷에선 근거 없는 비방이나 욕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만두업체 사장을 자살로까지 몰고 갔던 만두소 파동은 결국 만두소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이 일을 계기로 식품업계가 힘을 모았다. CJ, 농심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20여 개 식품회사(KPC 컨소시엄)가 참여, ‘식품산업 정보화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그들이 찾은 답은 RFID(무선식별 시스템). 식품 이력 추적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RFID가 상용화되면 식품 안전사고 발생 때 빠른 대응을 할 수 있고, 소비자는 식품 정보 파악이 쉬워지며, 업계는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KPC 컨소시엄과 한국식품공업협회는 2006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7억8800만원을 들여 식품 완제품 박스에 태그를 부착해 생산 및 물류, 유통 등 전 과정을 추적, 관리할 수 있는 RFID 기반 식품안전 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시범사업을 벌였다. 메가마트 부산 동래점에 농심 신라면, CJ 햇반 등 RFID 태그를 단 4개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민성식 한국식품공업협회 과장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 체결로 앞으로 크래프트, 네슬레 등 세계적 기업들이 들어오는데 맞서 싸우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소비자는 RFID 태그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식품을 선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FID 도입으로 소비자와 식품업체만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대형 마트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점포 곳곳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돼 유통업체 및 제조업체에 재고 수준을 알려줘 재고 보충 과정이 더욱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2005년 10월 500여 개 매장과 140여 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RFID 시스템을 처음 적용한 월마트는 불과 두어 달 만에 그 효과를 보여줬다. 미국 아칸소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주문에서 진열까지의 제품 흐름이 3배나 빨라졌고 재고 품절도 16% 감소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RFID를 설치하면 재고를 파악해 선반 위에 상품을 올려놓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절약된다. 지금은 하나하나 사람이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개별상품에 붙이기엔 비싸 고객 취향과 선호도에 맞는 상품 구색과 배치에 활용할 수도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매장에서 당장 치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민 과장은 “유통업체가 ‘바잉-파워’가 강해 RFID 태그를 부착하는 비용은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RFID 태그 가격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공급업체가 지불해야 할 몫이다. 현재 개당 120원 정도. 비싸서 박스 단위로 붙이고 있지만 개별 상품에 부착하기 위해서는 10원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래도 식품업체들은 대형 마트를 비롯한 모든 매장에서 사용가능하도록 인프라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태그 가격도 내려가야 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져야 실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유통물류진흥원에서는 “업체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 앞으로 빨라도 3~5년은 걸릴 것”이라 말했고 국내 매출액·점포수 1위 소매업체인 이마트 관계자 역시 “RFID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구멍가게 더욱 어려워지나 그렇다면 대형 마트가 아닌 소매점들엔 이익일까, 손해일까. 안 그래도 주변 재래시장을 초토화하고 영세상인들의 숨통을 조인다고 지탄받는 대형 마트다. 최근 문을 연 이마트 광명점 앞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마트 물러가라’고 외쳤다. 광명점은 3500평인 가양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00평 미니 이마트다. 이를 감안하면 재래상인들에게 ‘대형 마트 공포’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RFID 도입은 소매점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딜로이트 컨설팅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보고서에서 “RFID는 소매점을 유리하게 하는 기술”이라 말했다. 독일의 유명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작은 것의 미덕을 강조했다. 성장 지상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 단위의 소규모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중간기술’. 중간기술은 노동집약적인 전통적 기술과 자본집약적인 기술, 그 중간을 말한다. 보고서에서는 RFID 기술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RFID는 고객의 니즈를 바로 파악하게 해줘, ‘작은’ 가게가 재빨리 맞춤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대형 마트가 서두르지 않고서야 소매점이 RFID를 활용하기는 어렵다. 대형 마트가 압력을 넣어야 공급업체가 RFID 태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라도 달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소매점이 부담으로 느낀다면 장점을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큰 매장에서 시원하게 키오스크로 정보를 확인하는데 소매점에선 그런 자리도 없지 않은가. 다른 방법이 있긴 하다. 민 과장은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를 볼 수 있다면 키오스크 등과 같은 설비가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장점을 따져보면 대형 마트가 RFID 도입에 시큰둥한 게 의외일 정도다. 유통업체 측은 RFID 도입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를 ‘한국 고객의 쇼핑 스타일’로 생각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직 국내 소비자에겐 상품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 RFID가 유용하려면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야 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당일 판매 상품을 제외한 신선식품에 한해 입고일을 기준으로 정해진 기한에만 판매하는 ‘진열 기한 표시제’ 등을 실시한 게 올해 초다. 이런 시도도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건강과 식품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느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소비자가 ‘가격’을 제일 중시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소매점은 차별화로 승부 롯데마트의 한 관계자는 “한국 고객들은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원한다. 이건 가격과 또 다른 문제다. 왜 월마트가 한국에서만 망했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300만원 트럭 행상으로 시작해 지금은 매출액이 300억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성장한 ‘총각네 야채가게’ 관계자는 “역시 서비스다. 우리가 가격으로 대형 마트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고객이 원하는 신선함과 맛을 찾아 드렸다. 아무리 과일을 당도로 평가해도 신맛으로 과일 맛을 따지는 고객이 있는 법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 같은 소매점들은 RFID 도입을 해도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력 정보만 제공해서야 대형 마트에 맞서는 수단이 못 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스토리를 담아 원산지, 요리법 정보 등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식품 산업은 유통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산지의 싱싱함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이 지금의 유통체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유기농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과 RFID 기술 도입이 꼭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월마트는 지금 RFID 도입만 서두르고 있지 않다. 지난 5년 새 유기농 식품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역시 월마트다.


RFID란 무엇인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식별 시스템)란 각종 물품에 소형 칩을 부착해 사물의 정보와 주변 환경 정보를 무선 주파수로 전송·처리하는 비접촉 인식 시스템이다. 초소형 칩에 식별 정보를 입력하고,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이 칩을 지닌 물체나 동물, 사람 등을 판독·추적·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유비쿼터스 기반 기술의 하나로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원거리에서도 인식이 가능하고, 여러 개의 정보를 동시에 판독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바코드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다. 현재 유통 분야뿐 아니라 물류·교통·보안·가전 분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재산 절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조영남 유서 깜작 공개

2한동훈 “민주, 李방탄 예산 감액…호남도 버렸다”

3고점 또 돌파한 리플 코인…한달 만에 264% 상승

4서학 개미에게 희소식…하루 23시간 거래 가능한 미 증권거래소 내년 개장

5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

6미·중 갈등 고조되나…대만에 F-16 부품 판매 승인한 미국의 속내는

7"나도 피해자” 호소…유흥업소 실장, 이선균 협박으로 檢 징역 7년 구형

8배우 김사희 품절녀 된다...두살 연상 사업가와 결혼

9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바이오 진출 이어진다…신약개발 자회사 ‘에이엠시사이언스’ 설립

실시간 뉴스

1“재산 절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조영남 유서 깜작 공개

2한동훈 “민주, 李방탄 예산 감액…호남도 버렸다”

3고점 또 돌파한 리플 코인…한달 만에 264% 상승

4서학 개미에게 희소식…하루 23시간 거래 가능한 미 증권거래소 내년 개장

5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