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영으로 5년 연속 흑자 이룬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
현장경영으로 5년 연속 흑자 이룬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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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주유소, 현대오일뱅크 서영태 사장에겐 역시 파란색 주유복이 잘 어울렸다. 경기도 분당 직영 주유소에서 고객 차량에 기름을 넣는 서 사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지만 5년 전 증권사 CEO에서 현대오일뱅크 최고재무관리자(CFO ·부사장)로 옮길 때를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1999년 아랍에미리트(UAE) IPIC사가 투자해 현대와 공동 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했지만 2000 ·2001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5,000억원대의 손실을 내자 2001년 말 특급 소방수로 서영대 CFO가 투입됐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 무슨 새로운 이닝이냐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럴수록 더욱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증권사를 떠날 때 썼던 사직서를 복사해 책상 위에 놓고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서 CFO는 전국을 돌며 회사가 위기 상황임을 설명했다. 구조조정과 대변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식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뤄지자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2,200명 직원 중 600명을 감축했다. 공장가동률을 낮추고 적자 수출을 중단했다. 불필요한 자산은 팔았다.
“위기도, 비전도 공유해야 효과를 발휘해요. 그것도 일방적인 지시와 전달 · 보고가 아닌, 쌍방향 토론과 회의를 통해 가슴으로 이해해야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2002년 사장이 된 그는 ‘OPEN 2005’란 3개년 비전을 제시했다. 주인의식(Ownership)과 열정(Passion)을 갖고 일을 즐기며(Enjoy), 새로움(New)을 추구하라는 주문이었다. 매해 700건씩 3년 동안 2,100건의 혁신과제를 발굴해 실행했다. 문제점과 고칠 점은 모조리 찾아내 뜯어고쳤다.
‘우리는 석유 정제 및 마케팅 회사다.’ 오일뱅크 본사와 지역본부 · 주유소에 걸린 비전 패널의 첫 문구다. 단순한 표어가 아니고 직원들이 다섯 달에 걸친 토론과 의견을 모은 끝에 만든 것이다. ‘만들어 놓으면 팔리겠지’ 하는 생각에서 ‘고객 사랑’이란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차 고객 자영 주유소(회사 직영이 아닌 개인 소유)를 파트너로, 2차 고객 소비자에게는 신속·친절·청결 등 3대 서비스를 제공했다. 회사는 당장 그해부터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장점유율과 매출에 연연하지 않고 작지만 탄탄한 기업을 목표로 뛰었습니다. 그 결과 생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반을 다졌지요. 이제 직원들이 신나게 일하는 회사,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을 목표로 도약할 때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한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29일 ‘비전 2012’를 선포했다. 그 실행 계획은 ‘런투유(Run to U)’. 5년 뒤 2012년까지 네 가지-공장 설비, 영업 네트워크, 핵심 역량, 업무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그 중 핵심은 2011년까지 2조5,000억원을 투입해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값싼 고유황 중질유(벙커C유)를 재처리해 값비싼 휘발유와 등유 · 경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고도화 설비에서 국내 최고가 되는 것이다. 중질유 분해시설은 업계가 ‘지상유전’으로 부를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
“OPEN 2005가 회사 살리기였다면 비전 2012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입니다. OPEN 2005가 외부 컨설팅 결과인데 비해 비전 2012는 직원들이 직접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만든 거예요. 그러니 추진하는 데 탄력이 붙고 속도 또한 빠를 것입니다.”
다른 정유사라고 손 놓고 있을 리가 없다. 국제 원유가격의 고공행진 속 국내 석유류 소비 증가세가 그전 같지 않은 데다 정제 마진이 거의 제로(0)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서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매출은 2005년보다 늘었고 시장점유율도 높아졌는데 이익은 되레 줄었다. 이 때문에 정유 4사는 수출 등 글로벌 전략과 고급 휘발유 시장 개척을 통한 활로 찾기에 분주하다.
“CEO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성공하리란 믿음과 열정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 판단을 바탕으로 한 꿈과 비전을 제시한 뒤 앞장서 실행해야죠. 우리 파란 주유소를 말 그대로 블루오션으로 만들어야지요.”
현대오일뱅크는 도전을 즐겁게 감행한다. 2004년 서울 신사동에 고급 휘발유 전용 주유소 카젠(KAZEN)을 열었다. 기름 냄새와 지저분함, 뭔가 위험할 것 같은 주유소의 통념을 깼다. 호텔 수준의 서비스에 최고 품질과 시설을 갖춘 명품 주유소로 탈바꿈했다.
“기업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진화를 통해 성장합니다. 기업이 창조적 진화를 멈추면 소멸되고 말아요. CEO가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조직 내 의사소통이 막혀 있고, 변화를 거부하면 그 기업은 실패합니다.”
현장에 길이 있다
서 사장은 현장주의자다. 연초면 차트를 들고 25개 지역본부를 돌며 3,000리 행군을 벌인다. 사장이 현장을 한 번 둘러보면 본부장은 두 번, 그 아래 부문장은 네 번 가는 법이라는 ‘현장경영 두 배론’을 강조하면서. 현장경영 방식도 매우 구체적이다.
①한번 가 본 현장은 반드시 다시 방문해 변화를 느껴라. ②방문하기 버겁거나 싫은 곳일수록 더 두드려라. 직원들이 감명받을 때까지. ③현장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마라. ④현장에서 만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보고받고 서류를 뒤적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현장에 가야 생생한 정보를 얻고 이를 무기로 쓰지요. 현장경영은 조직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합니다.”
그는 2002년 10월 경기 ·충남 소매본부 자영 주유소 사장단 간담회에 참석했다. 한 주유소 사장이 2년 뒤 개업 10주년 행사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잊지 않고 2004년 6월 그 행사에 참석했다. 이듬해 이 주유소가 최신 세차기를 설치하자 다시 찾아 축하했다.
“비즈니스 세계에 고객과의 약속만큼 소중한 게 또 있나요. 자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문제가 풀리고 경영 노하우도 나옵니다. 고객이 가장 큰 스승이에요.”
2003년 대구지역 판매실적이 떨어지자 대구로 달려갔다. 지역본부의 보고를 들은 뒤 한 주유소로 가 주유원복으로 갈아입고 현장 확인에 나섰다. 고객 차량에 기름을 넣고 음료수를 갖다주며 물었다. “다른 곳이 더 잘해 주나요?”, “이 주유소, 뭐가 문제예요?”, “뭘 바꾸면 좋겠어요?” 자꾸 묻자 고객이 말했다. “아저씨가 꼭 사장처럼 묻네요.”
‘현대오일뱅크=서비스 뱅크’라고 강조하는 서 사장은 주유원의 유니폼과 모자 · 이름표 · 결제 받침대를 통일하고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했다. 이것이 통했다. 오일뱅크는 지난해 국가고객만족도(NCSI) 주유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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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주유소에는 사랑이 있다
파란 폴 주유소에 가면 몸놀림은 조금 어눌해도 정말 열심히 차를 닦는 세차 도우미를 볼 수 있다. 정신지체 장애인인데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오일뱅크 소속 정규직이다. 서 사장의 경영철학 중 하나인 ‘사회 기여’를 실행하는 것으로 전국 7개 직영 주유소에서 40여 명이 일한다.
“사실 주유원들은 조금 일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들이 성실하게 오래 근무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작했습니다.”
주유소장들이 안전사고 위험이 크고 고객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먼저 시켜보고 판단하라”며 설득 반, 밀어붙이기 반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의 83%가 다시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가수 강원래는 서비스를 받고 느낀 감동을 쓴 편지를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보내기도 했다.
“주유소장을 비롯한 장애인 직원으로만 구성된 주유소를 전국 주요 도시에 하나씩 20개를 만들 계획입니다. 여기에선 고객에게 ℓ당 50원 비싸게 받고, 회사가 50원을 내 100원을 장애인고용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생각이에요.”
서 사장은 ‘파란 주유소에서 온 러브레터’란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는 이곳 ‘우체부 아저씨 같은 CEO’란 글에서 “우체부는 매일 정확하게 따스한 사랑과 빨간색의 정갈한 이미지로 다가가 소식을 전달한다”며 “프로 CEO는 정확성 · 이미지 · 정보력 ·사랑 ·창조와 혁신이란 측면에서 우체부 아저씨처럼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두바이에서 참 리더십 배운다
요즘 기업인과 정치인 사이에 두바이에 다녀온 사람과 아직 못 간 부류로 나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두바이의 창조 경영이 화두다. 서 사장은 1년에 적어도 두세 번 두바이에 간다. 오일뱅크의 제1 대주주가 UAE 회사란 인연으로 그는 한국UAE 경제협력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두바이에 가면 공항과 큰 다리 등 곳곳에 ‘We have no limit(우리에게 한계란 없다)’라고 쓴 현수막이 보여요. 간결한 표현인데 던져주는 교훈이 많습니다. 저는 거기서 리더의 역할을 되새겨요. 중동 지역이지만 석유 매장량이 적은 두바이가 무엇으로 먹고 살지를 고민한 끝에 관광과 무역, 금융을 선택한 것입니다.”
두바이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고 거침없이 이어졌다. 두바이의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Sheikh Moha- mmed)와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의 두바이가 하루아침에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큰 지도자가 오래 전부터 준비한 비전을 실현한 결과이고 그래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더욱 돋보인다. 두바이 개발의 원동력인 창조 정신과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나? 두바이 원주민은 적고 교육도 충분히 받지 못했다.
결국 두바이의 창조 경영은 영국 등 서방 브레인에서 나온다. 지도자가 외국인 참모를 잘 쓴 결과다. 그리고 이들의 아이디어를 지도자가 실천하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7성급 호텔을 짓고 사막에 실내 스키장을 세운다. 그들은 무엇이든 세계 최초 · 최초 · 최대를 만든다. 그러니 세계 언론이 알아서 기사를 쓰고 두바이를 홍보하는 것 아닌가. 두바이에 갈 때마다 새로운 점을 느끼고 배운다.
“대한민국에도 국가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정치 · 경제 ·사회 · 문화 등 각 분야가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지요.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 역동적인 한국)’란 표현을 가끔 보는데 인식을 공유하는 과정이 없었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차별화는 생존 조건이다
서 사장은 젊은이들에게 ‘고통총량의 법칙’을 아느냐고 묻는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느끼는 고통의 양은 같다는 말이다. 일찍 고생하면 뒤에 고생이 덜하고, 젊어서 허송하면 늙어 고생이니 ‘젊어 고생은 사서 하라’고 주문한다.
그 자신도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겪었다. 6 ·25전쟁 와중에 몰락한 집안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나와 상경, 독학으로 대학에 다녔다. 그의 학창시절은 늘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대학을 나와 서울은행에 들어갔고 유학시험에 합격했다. 은행의 지원을 받아 유학을 가려 했는데, 총각인 그에게 결혼하고 배우자는 두고 떠나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용기와 두 주먹만 갖고 떠났어요. 엄청난 리스크였지만 그게 기회가 됐지요. 결과적으로 가장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회사 지원으로 온 친구들은 공부를 마친 뒤 돌아갔는데 묶인 게 없는 저는 현지 은행에 들어갔지요.”
일찍이 글로벌 선진 경영을 체험할 수 있었던 첫 단추는 그렇게 꿰어졌다. 인생의 대전환점이었다. 해외 MBA가 귀하던 1980년, 귀국하면 대접받을 텐데 그는 외국 기업을 선택했다. 첫 직장인 캐나다 로열뱅크, 한국인 직원은 그 혼자였다. 그로부터 체이스 맨해튼 · 씨그램 ·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외국 은행과 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했다.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면서 차별화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요건이란 점을 깨달았어요. 매사에 적극 참여하고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를 받거나 손해를 보거든요.”
국내 어떤 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대부분 쭈뼛쭈뼛 이름과 직책만 말하고 넘어갔다. 서 사장 순서가 됐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뮤지컬 <캐츠> 중 ‘메모리’의 한 소절을 불러제꼈다. 1년 반 전부터 성악 동호회에 나가는 그의 테너 실력은 수준급으로 5월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선다.
그는 2005년 체중을 13kg 감량했다. 새벽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서다. 이런 그를 보고 의지가 강하다고 하지만 독하다는 평도 들린다. 이 대목에서 그는 CEO 요건 중에 ‘끼’와 ‘깡’도 있다며 소리내 웃는다.
서 사장은 부엉이 수집이 취미다. 80년대부터 모은 게 300점이 넘는다.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번 사냥감을 정하면 놓치지 않는 99.99%의 사냥률을 자랑하는 동물이다. 4UP을 향해 서 사장과 현대오일뱅크는 오늘도 달린다.
오일뱅크에는 북(Book) 뱅크도 있다
독서토론 모임의 원조는 2003년 5월 경영혁신팀원 8명이 모여 만든 ‘무녀리’. 짐승의 한 태(胎) 속 여러 새끼 중 가장 먼저 세상을 구경하는 무녀리는 고생도 많이 하고 모자란 점도 많다. 하지만 그 놈이 어미 배에서 나오지 않으면 다른 녀석들도 못 나온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바로 책이 그런 무녀리 같은 존재라 해서 이름 붙였다. 격주로 책을 선정해 회원들이 읽고 토론하는 이 모임의 회원은 현재 30명. 1년이면 25권을 읽는다. 독후감과 토론 내용은 회사 지식경영 사이트 ‘지(知)카페’에 올려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무녀리의 안착 이후 제2?의 독서 모임이 생겼다. 임원들은 기름을 자동차에 가득 채우듯 독서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자는 뜻인 ‘가득채’를, 영업본부 직원들은 ‘책&체크(Check)’ 모임을 만들었다. 서영태 사장은 무녀리와 가득채 회원이다.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 점심시간이면 다른 약속은 뒤로 하고 무녀리 모임에 참석한다. 도시락이나 피자로 점심을 해결하며 열띤 토론을 벌인다. “제품이 빨리 변하는 것처럼 지식에도 수명과 주기가 있다. 언제든지 새로운 지식으로 갈아 끼워 줘야 한다.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경우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을 골라 권한다.” 무녀리는 독서 모임 그 이상이다. 지난해 <마케팅의 10가지 치명적 실수> (필립 코틀러겮셉씔??를 놓고 토론할 때 마케팅 담당 부서도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마케팅에는 경제성 못지 않게 신뢰가 중요하다’란 결론을 냈고, 이는 현대오일뱅크 마케팅의 큰 원칙이 됐다. 딱딱한 경제경영서만 읽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에는 <고고학 이야기> (이선복 · 뿌리와 이파리)를 읽고 이야기하면서 프랑스 영화 <불을 찾아서> 를 함께 봤다. 서 사장은 올 3월 무녀리 모임에 와인을 선물하고 와인의 선택과 마시는 방법에 대한 특강도 했다. 이 자리에서 문화 체험을 겸한 독서 토론을 제안했다. 무녀리 회원들은 분기에 한 번씩 갖는 야외 · 공연장 독서 토론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불을> 고고학> 마케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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