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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넘치는‘가짜 귀족학교’

자유 넘치는‘가짜 귀족학교’

경기도 분당에 있는 이우학교로 가던 길에 택시 아저씨 왈, “도대체 학교가 어딨단 거예요? 거 참 돌아가기도 힘들게 생겼네.” 이우학교가 귀족학교란 말을 듣고 찾아가는 길인데, 가는 길부터 전혀 귀족스럽지 않았다. 길은 공사 중이어서 울퉁불퉁 파여 있는데 포장공사 때문이란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 전엔 흙길이어서 비가 오면 옷이 더러워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귀족학교이기는커녕 과연 이곳이 도시형 대안학교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교 주변은 도시보다는 자연에 가까웠다. 투덜거리는 택시 아저씨를 뒤로하고 5분여 오르막길을 올라 학교에 들어갔는데, 실망스럽게 아이들도 그리 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 주변 평범한 모습의 아이들이었다. 집이 부유한가 물으니 흔히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 많았다. 물론 이 학교 수업료가 1년에 480만 원 정도로 일반 중·고교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한 학생은 “어이없다. 수업료가 비싸다고 귀족인가. 우리는 대신 사교육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체로 귀족이라고 하기엔 소박한 가정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학교를 세운 100명의 설립인이 귀족인 것일까? ‘귀족학교’를 새삼스레 꺼내는 우리가 당면한 교육의 문제, 특히 올 대선에서도 주목받을 3불(不)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본고사를 금지하는 게 현재 우리 정부가 고수하는 3불정책이다. 3불정책이 무너지면 이른바 돈 있고 명성 있는 ‘귀족’이 교육을 통해 자연스레 부와 지위를 세습할 것이라는 게 3불정책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외고나 과고가 사교육 과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도마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공교육 혁신의 모델이 되겠다는 대안학교가 귀족학교라면 적지 않은 사람이 실망하지 않을까? 다행히 이우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3불정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효율적인 학생 개인의 역량 개발’을 3유(有)정책을 통해 조심스레 시도하고 있었다. 이우교육공동체는 “한국 교육 문제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 100명이 모여 만들었다. 공동체의 불씨를 지핀 정광필 교장은 “선비처럼 꿈만 꿔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교육에 대한 이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문제는 실천력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지식, 마음가짐 등을 갖추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면 필요한 것은 ‘돈’이다. 정 교장은 “학교를 세우는 데 120억원 정도가 들었다. 일부러 사교육의 메카인 분당을 선택했다. 도시의 일반고에 대안을 제시하려는 학교가 시골에 있어서야 되겠는가. 아이는 부모와 함께 키우는 것이니 기숙학교여서도 안 됐다. 그렇다 보니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100인이 출연했으니 평균 1억~2억원은 낸 셈이다.

100명이 120억원 모아 시작 100인 위원회 중 한 명인 오종수 한의사는 “각자 낼 수 있는 만큼 냈다. 당시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한의학을 공부하던 내가 얼마나 낼 수 있었겠는가. 나도 나지만 심지어 전세금을 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100명의 면면을 보면 몇몇 재력가를 빼고는 교사, 샐러리맨, 전문직 등 중산층이 대부분이다. 소수 재력가의 재산에 의해 학교가 설립될 경우, 학교 운영에서 소수에 의한 전횡과 독단의 가능성이 있어 100명이 함께 학교를 세운 것이다. “학교 설립 당시 진 수십억원의 빚을 아직 100명의 창립자가 각자 나눠 지고 있다”고 학교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은 순전히 설립할 때의 빚이다. 특성화고로 분리되어 교육청에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매년 1억~3억원 정도 법인 전입금이 필요하다. 이는 100명의 창립자에게 또 짐을 지울 수 없어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매년 운영 적자를 메울 수 있도록 교육청의 지원이 절실하다. 교육청이 이를 설립 당시 빚을 갚으려고 지원금을 요청한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들을 빚까지 짊어지며 학교를 세우도록 했을까.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서”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오종수씨는 “특목고 아이들이 시험이 끝나면 병원에 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좀 더 건강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경재 한국성과향상센터 대표는 “위에서도 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래로부터의 노력 없인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정광춘 잉크테크 대표는 “중소기업을 운영해보면 인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게 된다. 어째서 대학을 나온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나오는 것인가.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힘을 길러줄 중·고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우학교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정 교장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우학교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학교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학부모도 그렇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주어진 이러한 ‘자율’이 과연 효율적인가. 정 교장은 “감히 그렇다”며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는다. 고3 때 4월께부터 수능준비에 매진해도 대학에 잘 갔다. 설사 못 가면 어떠냐. 이미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아이들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6년 고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587만원으로 집계됐다. 1인당 공교육비는 수업료와 등록금 의 교육비와 기성회비, 학교발전기금, 인건비 등의 총합을 재적 학생 수로 나눈 것인데, 대부분 정부가 지원한다. 진로를 탐색하고 꿈을 향해 매진한다는 ‘결과’를 얻는 데 이우학교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자율·참여·대화의 3有정책 양예슬(19)양은 “하도 자유시간이 많아 다른 일반고에 다니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불안하기까지 할 정도다. 우리는 이우학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꿈도 내가 찾고 개척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며 당차게 말했다. 이우 학생들은 실제 체육대회부터 농촌봉사까지 스스로 스케줄을 짠다. 학교에 대한 불만을 묻자 “지금 하는 학교 앞길 공사를 학교에서 학생에게 묻지 않고 추진했는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녁 8시30분 학부모 회의가 끝난 후 학부모들이 몰려나왔다. 그중 아버지도 많았다. 이우학교의 학부모들은 교육에 참견이 아닌 ‘참여’를 한다. 학부모 참여는 부모 사랑은 대체불가능하고 교사는 또 연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우학교에서 중요시하고 있다. 5대 1의 입학경쟁률에 학부모 면접도 학생 선발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학부모 참여를 미리 약속받고 가는 셈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한다든지, 독서 모임의 도우미로 나선다든지, 정자를 짓는 등 참여 방법도 다양하다. 이우 학부모의 약속 중 재미있는 항목이 있다. ‘지혜·돈·힘·재능 등 각자 가진 것을 나누고 기여한다’는 것이다. 정 교장의 “초기 대안교육의 대상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이해가 갔다. 학생도 학부모도 목소리가 높은 데다 설립자는 100명, 교사도 야간근무를 밥 먹듯 할 정도로 적극적인데, 이 학교에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정 교장은 “충분한 대화밖에 답이 없다”고 한다. 정 교장은 “다른 대안학교 졸업식에 가보면 교사가 멱살 잡히는 일도 허다하다. 기껏 보내놨더니 기대한 만큼 성과가 꼭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작년 졸업식은 정말 눈물바다였다. 그때 ‘이 학교에 잘 보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율·참여·대화의 3원칙을 지키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이사회 이사 선출 방법 등이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이우학교에서는 3유정책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다만, 현 정부의 3불정책과 비교해 ‘기부금입학제’는 아니더라도 바른 공교육 실현을 위한 기부자들이 있고, ‘본고사’는 아니더라도 학생을 뽑는 이우학교만의 절차가 있으며, ‘고교등급제’란 말처럼 공교육 정상화의 열쇠를 고교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중·고교를 아울러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가장 확실한 투자가 교육이라는데 과연 우리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의문이라면 이우학교의 예를 참고해 볼 만하다.


경쟁률 5대1 넘는 이우학교
이우학교는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국내 최초 도시형 대안학교로 2003년 9월 개교했다. 중·고교 통합 6년제로 3년 연속 담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인별 맞춤 시간표를 도입했으며 윤리와 사상, 삶과 철학 등 100여 개로 과목이 세분화됐다. 최근에는 교과내용뿐 아니라 서울대, 경희대 한의대 등 명문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진학 성과도 좋아 새로운 교육기관의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는 69명 중 47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20명은 재수 중이다. 일반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등록금 때문에 귀족학교가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교육효과가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몰려 매년 평균 5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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