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은 힐러리에게 독일까 약일까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독일까 약일까
뛰어난 전략으로 도움 줄 수 있지만 성추문으로 얼룩진 과거가 부담으로 작용할수도 “저런 음식이 참 좋아. 먹으면 안 되는데도 좋단 말야.” 3월 4일 일요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한때 자유세계 지도자였던 그는 전세기를 타고 뉴욕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클린턴은 스낵이라면 사족을 못 썼지만 2004년 심장수술을 받은 뒤부터 멀리해왔다. 하지만 프리토스와 그라놀라 바 몇 봉지가 눈에 보이자 고민했다. 비행기 탑승자 중 그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뉴욕주 주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인 맬컴 스미스도 예외가 아니다. 스미스는 클린턴과 동승한 사실만이 기쁠 뿐이었다. 나중에 그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감정이 북받치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스낵을 나눠 먹었다.” 클린턴과 스미스는 ‘피의 일요일’ 기념식 참석차 앨라배마주 셀마로 가던 중이었다. 1965년 3월 4일 민권운동 행진을 하던 600명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밑에서 주 경찰관 등의 공격을 받았다. 클린턴에게 이번 행사는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행사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끔찍이 배려한다고 해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클린턴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클린턴은 그날 오후 시가지를 행진한 뒤 ‘투표권 명예의 전당(The Voting Rights Hall of Fame)’에 헌액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클린턴이 아닌 힐러리가 검증받는 날이었다. 기념식 참석차 미리 현지에 와 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의 최대 라이벌인 버락 오바마와 유권자들의 주목을 누가 더 많이 끄느냐는 경쟁을 벌였다. 언론은 묵직한 저음에 마치 설교자 같은 말투로 킹 목사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오바마뿐만 아니라 자신의 남편에 맞서서 힐러리가 어떻게 선거운동을 꾸려갈지 궁금해했다. 클린턴은 지난해 초 킹 목사 부인의 장례식에서 뜻하지 않게 힐러리보다 더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힐러리가 남편보다 먼저 셀마에 도착해 연설을 했다. 그렇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예전과 다름없이 ‘정치’ 활동을 벌였다. 며칠 전 스미스 의원은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힐러리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흑인 표를 얻으려 길고도 힘든 싸움에 대비했다. 따라서 자신의 지역구인 뉴욕주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정치인 중 한 명인 스미스 같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은 전혀 원치 않았다. 스미스가 셀마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날 클린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측근은 스미스에게 클린턴의 비행기에 동승해 셀마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2시간 동안의 비행 중 스미스는 클린턴으로부터 남부 특유의 정겨운 대우를 받았다. 클린턴은 그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카리스마와 개성이 넘친다고 하더라”고 치켜세웠다. 그러자 스미스는 자신이 8월생인 데다 별자리가 사자여서 그렇게들 말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클린턴은 자신도 별자리가 사자라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에 스미스는 깜짝 놀랐다. “속으로 ‘내게도 다소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힐러리의 별자리는 전갈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두 달 뒤 스미스는 오바마 대신 그녀를 지지했다. 스미스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전직 대통령과의 동승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 못한다고 했다. “그분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록되리라 본다. 만일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꺼번에 두 명의 대통령을 얻는 셈이다.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과연 미국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힐러리 진영에서 볼 때 ‘클린턴 요인’은 복잡하다. 일부 사람은 클린턴을 비교적 평화롭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번영의 시기에 대통령을 지낸 빈틈없는 정치인이자 명석한 사상가이며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한 정치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를 “뺀질이 윌리”라 여긴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 위험에 탐닉하는 성향으로 중심을 잃고 집권 2기의 상당 기간 나라가 표류하도록 만든 자기절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힐러리는 독자적으로 대통령에 출마한다. 투표용지에도 그녀의 이름만 나온다. 만일 당선된다면 남편이 아니라 그녀가 최고 결정권자가 된다. 그러나 힐러리가 주인이 된 백악관에서 전직 대통령인 남편은 무슨 역할을 할까? 그리고 클린턴의 단점이 또다시 그의 장점을 압도하지 않을까? 전직 대통령이 지금까지 아내의 선거운동에서 맡은 역할을 뉴스위크가 취재해본 결과는 이렇다. 우선 클린턴 부부는 전직 대통령이 아내의 출마에 초래할 위험과 희망을 잘 이해한다. 또 힐러리 진영은 어떤 다른 대통령 후보도 지금까지 갖지 못한 자산(다시 말해 두 번씩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배우자)을 잘 관리하려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클린턴이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출마한 지도 10년 이상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시간이 걸려도 부드럽게 설득하는 정치의 산증인이다. 대통령 재직시 그는 미국 내 최대 흑인 교파 중 하나이자 세계 기독교계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한 오순절파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 교회의 최고 유력자인 길버트 얼 패터슨 주교가 지난 3월 사망했다. 그러자 클린턴은 두 시간도 안 돼 전화로 조의를 표한 뒤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했다. 힐러리도 찰스 블레이크 신임 주교에게 전화를 걸어 신임 주교 부임을 축하하며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 교회의 지지는 클린턴 부부가 예비선거에서 흑인 표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해 보인다. 오바마도 패터슨 주교가 사망한 직후 그의 미망인과 블레이크 신임 주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장례식장에 아내 미셸을 대신 보냈다. 블레이크 주교는 클린턴 부부 중 어느 쪽으로부터도 “정치적인 말은 한마디도” 못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치적 싸움은 조문 기간 내내 벌어졌고, 전직 대통령은 누가 봐도 아내의 공공연한 무기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아내의 선거운동에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전략적인 조언도 아내와 선거진영의 몇몇 절친한 측근에게만 해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재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에이즈·기후변화·아동비만 등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클린턴은 지금이 힐러리가 나설 때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이 같은 저자세는 클린턴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 흥미진진한 ‘일일 연속극’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일부 민주당원에게 위안이 된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그가 또다시 바람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점을 거론하면서 염려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2월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데이비드 게펜은 뉴욕 타임스의 모린 도드 기자에게 클린턴의 “무모한” 행동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클린턴의 친구 중 한 명은 얼마 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여성들에 관한 그런 소문을 믿지 않는다”며 “그가 그러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뉴스위크의 한 기자가 당신은 15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지만 그런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15년 전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기엔 너무 철이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엔 실제로 철이 들지 않았으니까.” 힐러리는 성인이 된 이후 클린턴의 배우자 신분에서 오는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맞추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클린턴은 항상 정치적 스승이었다. 두 사람의 첫 데이트에서 젊은 힐러리 로덤은 미래 남편이 될 사람이 노사분규로 폐쇄된 한 미술관에 함께 들어가도록 해준 언변에 경탄했다. 클린턴은 1974년 아칸소주 검찰총장 선거유세를 통해 힐러리를 아칸소주 정계에 입문시켰다. 그녀는 늘 남편의 정치적 성공 방정식을 따랐다. 민주당의 논리를 지키면서도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직 후보로서의 힐러리의 삶은 남편으로부터의 독립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그녀는 1999년 7월 어느 화창한 날 이미 정계은퇴 의사를 밝힌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의 농장에서 상원 출사표를 던졌다. 여전히 대통령이자 민주당 지도자인 남편은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인디언 보호구역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남편은 백악관에서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아내가 상원의원이 되자 클린턴은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국내 정치는 결코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2002년과 2004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정권을 잡기엔 너무 유약하다는 논리로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는 순간을 분노 속에 지켜봤다. 반격하는 방법을 기억하는 당을 그는 간절히 원했다. 클린턴에겐 힐러리가 바로 그런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는 아내가 상원 재선 운동을 준비하는 동안 모르는 척했다. 더 큰 싸움을 앞둔 연습경기로 여기는 듯했다. 힐러리의 대선 선거운동에 관해 물으면 “아내의 출마 여부를 모른다”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는 2005년 CNN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안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눈앞에 선거를 두고 다음 선거를 논하지 마라. 그러다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 출마조차 못한다.” 그러나 사석에선 그토록 조심하진 않았다. 2006년 여름 한 전 보좌관과 대화하며 힐러리 상원의원의 민주당 예비선거 결과를 전망했다(뉴스위크가 이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클린턴의 측근과 지지자 다수가 그랬듯 그 보좌관도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클린턴은 “다크 호스가 나타날 거야”라고 예언했다. ‘새 얼굴’이 등장해 염증을 느낀 민주당원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언론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에 빗대 이 미지(未知)의 도전자가 하워드 딘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된다고 예측했다. 반짝 출현했다가 사람들이 열광하고 결국 실망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당이 믿음직한 힐러리에게로 다시 돌아선다는 예측이었다. “결국 꾸준함이 이기는 법”이라고 클린턴은 말했다. 그 새 얼굴이 바로 버락 오바마임이 드러났다. 오바마는 지난해 가을 순회 출판기념회에서 2008년 대선 출마 구상을 흘리기 시작했다. 힐러리 진영의 일부는 그의 잠재적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겨우 2년차 상원의원인 데다 책 좀 팔아먹으려는 심산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남들보다 먼저 오바마를 실제적 위협으로 여겼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민주당원 여러 명은 전했다. 이제 클린턴이 개입할 시점이었다. 힐러리의 입후보 선언 며칠 후 뉴욕 수퍼마켓 재벌이자 민주당 자금조달 책임자인 존 캣시마티디스는 힐러리 선거진영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번 토요일에 시간이 비는데 선거자금 모금행사를 주선하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캣시마티디스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놀랐다. 클린턴을 주빈으로 하는 각종 모임을 “약 30차례”나 열었지만 그때는 보통 2주 전에 미리 통보받아 사람들을 끌어모을 시간이 넉넉했다. 이번에 그에게 주어진 말미는 단 나흘이었다. 바짝 긴장한 캣시마티디스는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다이얼을 돌렸다(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 판이었다). 마침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자택에 50~60명의 손님을 끌어모았고, 한 사람당 최대 2300달러를 힐러리 상원의원의 예비선거 운동에 기부했다. 검정 정장과 밝은 청색 타이 차림으로 분위기를 띄우던 클린턴이 마침내 짤막한 연설을 했다. 이라크, 경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힐러리 상원의원의 장점을 언급했다. “클린턴은 대리 선거운동원이 됐다”고 캣시마티디스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기만 해도 좋아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힐러리 선거진영이 오바마의 위협에 맞서 황급히 클린턴 전 대통령을 영입한 듯한 인상이었다. “초조하지 않았다면 클린턴을 그렇게 깊숙이 끌어들이지 않았으리라 본다”고 힐러리의 한 고문은 말했다. 그는 힐러리의 약점에 관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뒤 “클린턴을 많이 내세울수록 그들의 걱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힐러리 선거진영은 클린턴 영입에 오바마가 변수로 작용했다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누가 상대가 되든 간에 클린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힐러리 상원의원의 하워드 울프슨 대변인은 밝혔다. 클린턴 부부는 장기간에 걸친 선거운동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오래전부터 터득했다고 선거운동 보좌관들은 덧붙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내심 오바마의 위협에 놀랐다고 몇몇 민주당원은 전했다. 한 지지자는 “클린턴은 바보가 아니다”며 전국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얻은 높은 비호감도를 지적했다(지난 4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 상원의원의 호감도는 54%, 비호감도는 42%, 클린턴 전 대통령의 호감도는 60%, 비호감도는 38%였다. 참고로 지난 2월의 갤럽 여론조사에서 부시 대통령의 호감도는 44%, 비호감도는 55%였다). 선거자금 모금석상에서 클린턴은 오바마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대신 힐러리의 폭넓은 경험(그리고 후보 물망에 오른 다른 민주당 의원들의 경험도 가끔씩)을 치켜세우고, 오바마와의 명백한 차이점은 들먹이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좀 더 노골적으로 간접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 3월 맨해튼에서 열린 모금행사(뉴욕 포스트가 처음 보도)에선 뉴욕 타임스가 오바마의 이라크전에 관한 입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라디오 방송국 WABC에서 진행자로 일하는 커티스 슬리와가 이 행사에 초대됐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뉴욕 타임스가 힐러리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그날의 요점이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의 이라크 관련 입장을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클린턴 부부는 손을 더럽히는 일은 주로 대통령 시절의 광범위한 보좌관 진영에 맡긴다. ‘피의 일요일’ 기념식 전날 밤 존 루이스 하원의원은 “클린턴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 무리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한 호텔 로비에서 손님들을 붙잡고 설득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원 내 흑인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 회원인 루이스는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들이 클린턴 선거진영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듯하다”고 뉴스위크에 전했다. 뉴스위크는 클린턴 진영의 이탈자 여러 명과 접촉했다. 그들에 따르면 클린턴 부부가 자신들의 행동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직접 무슨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클린턴 진영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한 민주당 상원의원은 “클린턴 진영에서 뛰쳐나왔다면 버락 편임이 분명하다는 암시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클린턴 진영은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자극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 2002년 힐러리가 이라크전에 찬성표를 던진 결정을 물으면 된다. 지난해 텍사스주에서 진보파 옹호단체인 ‘민주주의동맹’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이라크 전쟁의 함정을 2002년엔 알지 못했다는 말을 믿어도 좋으냐는 질문에 클린턴은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르윈스키 스캔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클린턴이 논쟁 중 삿대질을 하면 논리에서 밀린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지난 4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라디오방송 기자가 이라크전에 대해 질문했을 때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기자가 주제를 바꾸려 하자 클린턴은 단호하게 내뱉었다. “질문을 했으니 끝까지 대답을 들으시오.” 두 번 다 나중에 질문자에게 다가가 좋게 끝을 맺었다. 조만간 클린턴은 자신의 과거 행동을 변론하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클린턴 집권 시절이 떳떳하지 못하고 부정직한 10년이었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원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이 국내 문제에 정신이 팔려 알카에다를 간과했다는 생각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미트 롬니는 선거유세 도중 칼럼니스트인 찰스 크라우태머의 말을 빌려 클린턴 시절을 “역사의 휴가”라고 불렀다. 공화당 전략가들은 클린턴의 과거 행적을 지적하며 테러 문제를 힐러리의 약점으로 몰아붙일 만한다고 생각한다. “클린턴이 테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거의 모든 사람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한 공화당 후보의 측근은 말했다. 그는 잠재적인 선거운동 전략과 관련된 내용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클린턴 선거진영은 부시와 클린턴의 외교정책 업적을 다루는 토론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부시 진영에 불리한 싸움”이라고 힐러리의 울프슨 대변인은 밝혔다. 실제로 부시 치하에서 격동의 시절을 보낸 뒤이기 때문에 클린턴의 과거를 들춰낼수록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힐러리 보좌관들은 확신한다. 그러나 미래는 어떨까. ‘대통령 부군 빌 클린턴’은 무엇을 할까. 힐러리가 바랐던 거의 모든 일을 할 듯하다. 로절린 카터가 그랬듯 각료회의와 국가안보 브리핑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헌법상 정해진 역할이 없으니 직책 없는 실력자가 되기 쉽다. 6년여간 딕 체니 부통령이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전례를 감안하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가족·권력·정치가 뒤섞이면 아주 복잡해진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부시 일가만 봐도 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주연 자리를 아들에게 양보하는 일이 겉보기보다 더 어려웠으리라고 친구들은 전한다. “추측하건대 클린턴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정말로 뒷전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부시 일가의 한 친구는 말했다(민감한 문제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부시 일가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아버지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완전히 물러나기가 어려웠다. 클린턴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아버지 부시는 생각한다. 힐러리가 당선되면 빌에겐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미래가 올 테니까.” 클린턴은 뒷전으로 물러나도 걱정 없다고 공언한다. 5월 18일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행사에서 “모든 일을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거의 마음을 정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골프나 치러 다녀야겠다.” 힐러리는 남편이 자신의 정부에서 ‘세계 대사’ 역할을 하리라고 밝혔다. 힐러리의 보좌관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묻자 클린턴이 재단 업무를 계속하며 에이즈·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다루고, 부시 이후의 세계에서 미국 우방들과의 관계 회복을 촉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워싱턴의 한 만찬장에서 클린턴의 한 주요 후원자가 ‘세계 대사’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해석했다. “그렇게 되면 워싱턴을 떠나게 된다”는 말이었다. 대통령 힐러리가 배우자의 구속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서로 너무 떨어져 있어도 정치적 위험이 커진다. 클린턴 부부의 관계에 다시 관심이 쏠릴지 모른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힐러리 상원의원을 말하면서 갈수록 체념한다는 인상을 준다. 공화당 측이 이미 클린턴 부부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잔뜩 모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야당 조사 조직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전직 공화당 중견 운동원 두 명은 공화당이 힐러리나 클린턴의 뒷조사에 자금을 댄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고 뉴스위크에 전했다(힐러리 상원의원이 아직 민주당 후보 지명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어쨌든 이런 문제를 둘러싼 심판이 이미 열려(클린턴의 르윈스키 추문을 둘러싼 상원 청문회)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가 그의 사생활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결이 당시 이미 내려졌다. 하지만 과거 힐러리의 말마따나 “우익이 꾸미는 커다란 음모”의 흔적은 더러 있다. 댄 버튼 하원의원이 이끄는 하원정부개혁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데이비드 보시는 힐러리를 다룬 탐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그 위원회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여러 건을 조사했다. “클린턴 부부가 지내온 삶의 모든 측면에 걸쳐 자료를 찾는 중”이라고 보시는 말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클린턴 부부는 민사소송 세 건을 윌리엄스&코널리에 맡겼다. 아주 오래전부터 애용해오던 법률회사다(클린턴의 개인 법률고문 데이비드 켄달은 윌리엄스&코널리가 맡은 소송에 대해 절대 논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힐러리의 선거본부는 오는 6월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다. 다음달 두 권의 전기 발간이 계기다. 한 권은 칼 번스타인 기자, 또 한 권은 탐사보도 기자 제프 거스와 돈 반 내타가 썼다. 힐러리 선거진영은 그 책의 출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는다고 공언한다.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울프슨은 클린턴 부부 중 누구를 겨냥한 비난과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자신과 남편이 백악관을 떠난 이후 보다 성숙해졌으며, 자신이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미래의 인물이란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런 점(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점)에서 그녀의 남편은 자산이자 부담이다. 셀마에서 긴 하루를 보낸 후 전용기에 오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정크푸드로 관심을 돌렸다. 그러곤 스낵 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도리토스 과자 맛을 좀 봐야겠어. 이 친구들이 대체 뭘 먹는지 말야.”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새로운 손님이 동승했다. 역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더글러스 파머 뉴저지주 트렌튼 시장이다. 비행기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화제는 그날 힐러리가 한 연설로 넘어갔다. 클린턴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려는 듯 10분 동안 주의 깊게 경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1시까지 아내와 함께 연설문을 손질했어. 아내에게 느끼고 노래하라고 충고했지.” 그 후 며칠 동안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설이 남부 억양을 흉내 냈다고 비아냥댔다. 노래는 타고나지 않으면 완벽하게 흉내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훌륭한 스승을 뒀어도 말이다. With DAREN BRISCOE, KAREN BRESLAU, SARAH CHILDRESS, MARK HOSENBALL, ELEANOR CLIFT, HOLLY BAILEY, JONATHAN ALTER and ANDREW ROMANO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공동 사냥한 게임 아이템 ‘먹튀’ 소용없다…”게임사가 압수해도 정당” 판결 나와
287억 바나나 '꿀꺽'한 코인 사업가..."훨씬 맛있네"
3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소송 이어져…캐나다 언론사 오픈AI 상대로 소송
4'땡큐, 스트레이 키즈' 56% 급등 JYP...1년 전 '박진영' 발언 재소환
5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
6기름값 언제 떨어지나…다음 주 휘발유 상승폭 더 커질 듯
7‘트럼프 보편관세’ 시행되면 현대차·기아 총영업이익 19% 감소
8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
9‘NEW 이마트’ 대박 났지만...빠른 확장 쉽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