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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인맥으로 ‘현대’의 벽 뚫나

막강 인맥으로 ‘현대’의 벽 뚫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대북사업은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이하 아천)을 통해 본격화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H빌딩에 이 회사를 설립하고 대북사업을 구체적으로 준비해 왔다. 아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농산물, 수산물, 약재, 산채류, 식료가공품 등 각종 상품을 동해와 서해 지역의 남북연결도로를 통해 교역하고 이를 위해 개성과 고성 지역에 양측이 공동으로 농수산물 유통센터를 건설해 운영하기로 북한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6월 21일 북에서 양식한 철갑상어가 동해 쪽 육로를 통해 시범적으로 남측에 반입됐고, 7월 19일 본격적으로 북한 각지에서 생산된 고사리를 비롯한 농토산물이 개성을 통해 육로로 반입됐다. 아천은 이번 교역을 시작으로 그동안 배로, 혹은 중국을 통해 교역하는 데 따른 불편과 타국을 우회해 남북교역이 이뤄지는 불편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천의 육로 수송은 개성이나 금강산 너머 북측 전 지역의 농수산물 및 가공품을 상업적 유통 목적으로 남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므로 남북 교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특별한 의미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대아산 측은 남북 간 육로 교역이 최초라는 아천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개성공단 외곽의 사천강 모래가 CS글로벌이라는 회사를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하루 두 차례 육로로 남측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무슨 첫 육로 사업이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9월 남북 첫 합영회사를 만든 태림산업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태림산업 관계자는 “이미 태림이 평안남도 남포에서 캐낸 돌을 육로를 통해 들여오고 있는데 어떻게 아천이 최초의 육로 교역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천 측은 “일부에서 소규모로 육로 교역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육로 교역은 아천이 처음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윤규가 구상 중인 남북교역 사업
▶ 개성 · 고성에 대규모 유통 및 집하장 건설해 육로교역 시스템화 ▶ 해외건설 시장에 북한 인력 파견 및 건설 공사 진출 ▶ 북한 동해안 지역에서 모래 채취해 남측에 공급 ▶ 국내 건설사업 기반 구축 및 해외 진출


“북측 인력 수출로 식량난 해결” 김윤규 회장은 “이번 육로 교역을 시작으로 개성과 고성의 육로를 통한 물자교역이 정기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조만간 개성과 고성 지역에 대규모 농수산물 유통센터를 건설해 남북교역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수산물 유통은 아천이 구상 중인 대북사업 중 아주 작은 부분이다. 아천은 이 사업 외에도 다양한 국내외 사업 및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곧 모든 사업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중 주목되는 것은 중동지역 등 제3국 건설시장에 북한 기능 인력을 파견하는 사업이다. 김 회장은 “한 사람이 500달러씩 번다고 가정할 때 1만 명만 가도 한 달에 500만 달러를 버는 것”이라며 “현재 해외건설 시장은 기능 인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으며 이런 때 북의 경쟁력 있는 인력을 훈련시켜 내보내면 외화도 획득하고 북한의 식량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아천의 사업은 개인적 영달보다는 국가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구상으로 아천은 올 10월부터 북한 인력 수백 명을 중동에 파견하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수만 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북한과 모든 합의가 끝났다는 게 아천 측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남북 합영건설회사 설립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경쟁력 있는 북측 기능 인력과 남측의 해외건설공사 기술 및 경험을 합하는 합영건설회사를 설립해 대규모 건설공사를 직접 수주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아천은 이를 위해 현재 중견 건설회사를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중동의 허브라는 두바이에 7월 중 건설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북한 인력뿐 아니라 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인력을 활용하고, 건설·유통 무역과 자문 등 다양한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7월 19일 북측에서 생산된 농토산물이 육로를 통해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하고 있다.

아천이 건설업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아천 직원들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아천 직원 35명 중 80%에 해당하는 직원이 현대건설 출신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현대건설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현대아산 상무를 지냈던 육재희 대표와 김창기 본부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대건설 출신이다. 현대건설 전무 출신의 강용덕 부사장은 아천에서 해외건설과 영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대건설 플랜트사업본부 상무를 지냈던 유기조 본부장은 아천에서 해외건설 및 인력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아천이 중동에 건설회사를 세우는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막강한 현대건설 출신 지원군단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금 마련 위해 M&A도 추진 아천은 부산·울산·포항·진주·마산·창원·제주 등에 북한의 동해 모래를 채취해 공급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업체를 선정하고 북측 동해안 지역의 모래 샘플 채취 작업에 돌입했다. 이 밖에도 아천은 개성 중심부에 분양 받은 상업용지 400평에 업무용 빌딩을 건설해 사무실을 열 구상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그래픽, 엔지니어링 사업도 이 사무실에서 북측과 함께 하는 것으로 합의 단계에 와 있다는 설명이다. 남북경협사업에 관심 있는 많은 기업의 대북사업을 그 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한 중견 건설회사 인수를 통한 국내 건설사업 기반조성 및 북측과의 공동사업 추진, 유통회사 및 건자재 생산업체 공동 경영 등 다양한 사업기반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이렇듯 다양한 대북사업을 의욕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은 탄탄한 북측 인맥 덕분이다.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 생전에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는 것 때문에 북측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19일 개성에서 만난 북측 아태위원회 사람들이 김윤규 회장이 잘할 사람으로 믿겠다고 했다”며 “정주영 회장과 같이 사업했던 사람이란 인식 때문에 북측에서 아직까지 나에게 신뢰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려면 사업 자금이 충분해야 한다. 김 회장은 7월 19일 기자에게 “필요하면 상장기업 인수 등으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사업의 폭을 넓혀 국내 건설과 자재, 제작 구매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분야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종목의 기업을 인수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일행 중 한 명은 기자에게 “오늘 저녁 하얏트호텔에서 열릴 만찬장에 이름이 거론된 후원사 중 아천이 인수하는 기업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귀띔을 했다. 실제 하얏트호텔 만찬장 앞에는 위디츠를 비롯해 ㈜샤인시스템, 동양토탈㈜, INDI system, 주식회사 이천종합식품 등 4개 후원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대아산 측은 김 회장의 최근 대북사업 관련 행보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현대아산 관계자의 말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 계셨던 99년 이미 현대는 제3국 공사 현장에 인력을 보내겠다는 합의를 했다. 당시 김윤규 회장은 아산의 사장으로 있었다. 아산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북측과 합의하고 추진한 것을 회사를 나가 개인 사업에 이용한다는 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통일부 역시 아천의 대북사업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구체화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해외에 건설사를 설립하는 것은 그 나라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남북 합영회사 설립 등은 반드시 우리 법의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세부 절차가 필요하다. 대북사업이라는 것이 북측과 합의만 한다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윤규표 대북사업’이 결실을 보기 위해선 북측과의 합의 못지않게 국내에서의 설득 작업도 큰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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