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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벌면 세금 더 내라

돈 많이 벌면 세금 더 내라


미국 사모펀드에도 일반 기업과 똑같은 법인세율 적용하자는 입법 움직임 확산 월스트리트의 서열에서 사모펀드 회사 설립자들은 진짜 귀족이나 다름없다. 영국에서 주문한 맞춤 정장, 전원지역의 호화 저택, 동양 융단 등 상류계급 취향의 온갖 장식물을 갖췄다(심지어 그들의 비서들조차 영국식 억양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해 거대기업들을 인수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단기 수익에 탐욕스러운 주식 거래자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헤지펀드 운용자들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사모펀드 설립자들은 단순히 돈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물론 성공한 사람들은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산업계 전체를 주무르는 권세도 좇는다. 일반 기업의 CEO들은 주주들의 단기 이익 실현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 이와 달리 사모펀드 설립자들은 곤경에 처한 기업들을 낚아채듯 인수한 뒤 경영을 일신해 효율성과 이익을 창출한다. 사모펀드 운용자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산업계의 정치가’로 자리매김한다. 한 세기 전의 J P 모건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당시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았던 월스트리트는 여러 측면에서 워싱턴 정계보다 더 막강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는 이런 거창하고 고결한 공인(公人) 의식 뒤켠에는 속셈이 숨겨져 있다. 미국의 갑부들은 대다수 일반 근로자보다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 게다가 사모펀드 설립자들에게는 세법상의 결함 때문에 가장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지난 6월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재산가인 워런 버핏은 은행가와 부동산 개발업자들로 가득한 청중 앞에서 미국의 세법이 사실상 잘못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토록 현명하다는 국회의원들이 만들어 놓은 세법을 보라. 이 자리에 모인 우리 400명은 접수계원이나 청소부들보다도 낮은 소득세율로 세금을 낸다.” 버핏(그는 뉴스위크의 모회사인 워싱턴포스트의 이사이기도 하다)은 동료 부호들 중 각자의 비서보다 더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고 증명하는 사람에게는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까지 말했다. 버핏의 신랄한 지적은 현재 미국 의회에서 진통을 겪는 세법 개정 논란을 더욱 가열시킬지도 모른다. 의원들은 연방 세법의 허점들을 보완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 개정의 주된 표적은 사모펀드 설립자들이다. 현행법상 이들에게 적용되는 자본이득 세율은 15%로 일반 소득세율 35%보다 낮다. 월스트리트 측은 부호들의 특전을 겨냥한 이 같은 공세가 자유기업 제도 자체에 가해지는 공격이라며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 또 엄청난 부자와 평범한 부자 사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이런 시기에 세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로비전은 의미 있는 조세 형평성 논쟁을 촉발하는 동시에 흥미로운 ‘문화 충돌’까지 야기할 전망이다. 미국의 대다수 상원의원은 대체로 권세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의 지배자’ 같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헨리 크래비스 같은 인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크래비스는 자신이 설립한 사모펀드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자산 규모 수백억 달러)의 기업 공개(IPO)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사모펀드들의 영향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 왔다. 아직도 낯선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사모펀드는 최근 크라이슬러를 사들였다. 요즘 사모펀드 업계의 간판(혹은 표적)으로 인식되는 인물은 스티브 슈워즈먼(60)이다. 포브스는 최근호에서 그를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제왕”이라고 표현했다. 슈워즈먼은 대체로 미소 띤 표정을 짓지만 참을성 있는 사람은 아니란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의 만평에서는 그가 한 웨이터의 신발 끄는 소리에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이 묘사됐다. 슈워즈먼은 사모펀드 그룹인 블랙스톤의 회장으로 약 880억 달러의 자금을 주무른다. 그는 자신의 부(富)를 과시하기 좋아하며 최근에는 블랙스톤의 기업공개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월스트리트의 일부 인사는 슈워즈먼의 그런 행태 때문에 사모펀드 설립자들의 낮은 소득 세율이 불필요하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며 못마땅해한다. 일례로 슈워즈먼의 아내 크리스틴은 남편의 60세 생일 파티를 열어주려고 세븐스 레지먼트 아모리(맨해튼 파크 애버뉴 소재)의 거대한 홀을 빌렸다. 그리고 그 홀을 같은 지역에 있는 침실 35개짜리(화장실은 13개) 자택 아파트와 똑같이 꾸미도록 했다. 심지어 아파트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괘종시계와 옛날 대가들의 회화 작품도 똑같이 복제했다. 파티장에서는 로드 스튜어트가 축하 공연을 했다. 또 패티 라벨이 ‘해피 버스데이’를 불렀고, 아비시니아 침례교회 성가대가 함께 축가를 불렀다. 슈워즈먼의 아파트는 한때 존 D 록펠러 2세의 집이었다. 슈워즈먼은 월스트리트의 전통에 따라 적어도 한 번은 ‘현인(Wise Man)’이 되는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현인’이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이나 그 이후 워싱턴 정가에 진출해 공직을 수행한 재벌 총수들을 일컫는다. 3년 전 슈워즈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애버럴 해리먼을 일종의 역할모델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리먼은 금융 재벌 출신으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하고,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고문으로 활동한 전설적 인물이었다. 슈워즈먼은 1969년 예일대 재학 시절 당돌하게도 해리먼에게 접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두 사람 모두 예일대의 은밀한 학생단체인 ‘스컬 앤드 본스’ 회원이었다. 슈워즈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1년 후배이기도 하다). 슈워즈먼은 원로 정치가인 해리먼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흰색 정장 차림의 웨이터가 시중드는 모습을 봤다. 벽난로 선반에 놓여 있는 로버트 F 케네디의 흉상과 벽면에 걸린 모네의 그림들도 슈워즈먼을 감동시켰다.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밝혔듯이 그는 해리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평생에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재 슈워즈먼은 각종 예술활동을 후원하면서 수많은 문화·자선 단체의 이사진에도 참여한다. 워싱턴 케네디 센터의 소장직도 겸임한다. 그러나 과거의 ‘현인’들과 달리, 또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같은 요즘의 현인들과 달리, 슈워즈먼은 정부 공직을 맡아본 적이 없다. 뉴욕 요트 클럽에서 패트릭 케네디 하원의원(민주)의 생일파티를 공동 주최한 적은 있었다. 그렇다고 슈워즈먼을 워싱턴 정계의 내부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척 그래슬리 같은 국회의원들 때문에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워싱턴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슬리는 지난 25년간 연방 상원의원(아이오와주·공화당)으로 활동하면서 납세자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면밀히 추적해 왔다. 농촌 출신의 보수파인 그는 낭비적인 국방 지출 등 연방정부의 방만한 예산 운용 사례를 철저히 색출하려 노력한다. 입바른 소리 잘 하고 어느 정도 고집이 있는 데다, 본인 스스로 지독한 구두쇠다. 예를 들어 에어컨 온도는 늘 섭씨 27도로 맞춰놓는다. 상원 의사당에 도착해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고 나면 승용차 시동을 끈 채 자신의 주차 공간까지 미끄러져 굴러간다. 기름을 아끼기 위해서다. 지난 6월 슈워즈먼이 블랙스톤을 상장할 무렵(덕분에 그의 보유 주식 가치는 약 80억 달러가 됐다), 그래슬리는 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블랙스톤처럼 기업공개를 실시한 특정 사모펀드들에 적용하는 세율을 현행 15%에서 35%로 올려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그래슬리는 사적인 감정은 없으며 단지 과세 형평성 차원의 입법 제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그것은 사실이다. 그 법안이 통과돼 블랙스톤에 적용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리는 데다, 슈워즈먼 자신은 높아진 세율을 대부분 피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랙스톤 법안’으로 알려진 이 법안 때문에 월스트리트에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1800년대 말 대중영합주의적 정치인들이 등장한 이래 국회의원들은 부유층의 재산을 위협하는 법안을 주기적으로 제출해 왔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대체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자신들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지 모른다는 미국민의 희망이 작용했다. 또 투자와 축재를 위축시키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설득력 있는 경제 이론들도 한몫한다. 그러나 이따금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다. 20세기 초에는 진보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연방 소득세법이 제정됐다. 이는 부분적으론 19세기 말의 금력지배시대(Gilded Age)에 엄청난 갑부들이 양산된 현상의 반작용이었다. 현재 국회의사당과 대선 주자 진영에서는 정치권이 초부호(superrich)들의 세금을 늘리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하원에서는 미시간주 출신의 샌더 레빈 민주당 의원이 이른바 ‘성과 보수(carried interest)’의 세율을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통상적으로 사모펀드 회사들은 많은 투자금을 모집해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상장을 폐지한 다음, 그 회사를 매각해 수익금의 20%를 챙긴다. 업계에서는 그 20%의 투자이익을 성과 보수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15%의 자본이득 세율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에게 부과하는 약 35%의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다. 개혁가들은 사모펀드 회사들이 자체 자본보다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모아 투자한 뒤 그 대가를 받는 만큼, 자본이득 세율 대신 소득세율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모펀드 회사들에 고용된 로비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식의 세율 인상은 곧바로 일반 근로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왜냐하면 예컨대 거대한 공무원 연금기금은 투자금을 사모펀드에 위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워즈먼 같은 억만장자들의 세금을 늘리는 조치는 결국 은퇴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로비스트들은 주장한다. 물론 사모펀드 회사들이 늘어난 세금의 일부를 위탁 수수료 인상으로 투자자들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뉴스위크가 접촉한 연금기금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투자수익이 그럴 정도로 크게 줄어들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모펀드 측 로비스트들은 좀 더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부(富)의 창출을 자극하는 슈워즈먼 같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올려받으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부동산·석유·가스 등의 분야에서도) 성과 보수 제도의 허점을 일률적으로 제거하는 조치는 “미국 전역에서 경제성장의 엔진을 제공하는 수천 개의 사모펀드 조합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다. 이는 혁신가들을 처벌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웨인 버먼은 지적했다. 버먼은 워싱턴에서 인맥이 두터운 로비스트로 블랙스톤과 또 다른 주요 사모펀드 회사인 칼라일 그룹을 위해 일한다. 단순히 성과 보수의 허점만을 도려내는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울 듯하다. 부시 대통령도 그런 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시사했다. 게다가 엄청난 보수를 받는 로비스트들은 그 법안이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무산시킬 공산이 크다. 공화당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자신들의 선거 자금을 월스트리트 재력가들에게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세법을 개정한답시고 만지작거려봤자, 영리한 법률가들은 새로운 허점을 다시 찾아낸다. 진정한 개혁을 이루는 최선책은 빈곤층과 중산층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비용을 상류층의 세금 인상으로 조달하는 포괄 입법일지도 모른다. 그런 법안은 궁극적으로 백악관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세수(稅收) 증대 수단으로 성과 보수 세율의 허점을 시정하는 데는 모두 반대한다. 반면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존 에드워즈,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은 모두 그런 입법에 찬성하고 나섰다. 측근 집단에 사모펀드 업계의 몇몇 거물도 포함돼 있는 힐러리는 세제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가장 많은 재산을 지닌 사람들이 국가에 기여하도록 하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슈워즈먼은 이 기사와 관련된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정치가’들이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슈워즈먼도 분명히 동의하리라 본다. 다만 자신들이 누려온 세제상의 특전은 건드리지 말라는 입장이다. With SAM STEIN in Washington and ELEAZAR DAVID MELENDEZ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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