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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면서도 지루한 전쟁

섬뜩하면서도 지루한 전쟁


아프간 참전 영국 병사들, 런던에서 전장 경험 재현 전시회 열어러셀 아처 중위는 병사 6명에게 모래 자루를 내려놓고 일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사방에 흙먼지가 날린다. 영국 육군 16공수여단 소속 공병인 이들은 엄폐호와 박격포 참호, 이동 육군병원을 건설하고 기존 건물 꼭대기에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카키색 전투복을 입은 병사들이 납작한 자루들을 차에서 내리고, 삽으로 모래를 퍼 나르고, 건축물에 보호용 금속 덮개를 붙이느라 분주하다. 아프가니스탄 헬맨드[아프간 참전 병사들은 ‘헬 랜드(지옥의 땅)’라고 부른다] 지방의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벌판에 자리 잡은 군 기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아처와 병사들이 있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남부가 아니다. 외양과 분위기는 영락없는 군 기지지만 이 ‘기지’는 런던 유행의 중심가 첼시에 있는 영국 국립 육군박물관 안에 세워졌다. 영국인들에게 헬맨드 캠프 배스천의 군사작전과 병사들의 생활상을 알리려고 재현됐다. ‘헬맨드: 병사들의 이야기 전’의 건축 책임자인 아처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병사들의 노고가 이라크 파견 병사들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병사들의 좌절감도 이 전시회 기획의 한 요인이 됐다. “언론은 온통 이라크전에만 주목한다”고 션 매커완 공병은 말했다. 헬맨드에서 군수용품 트럭을 운전했던 그는 이 전시회의 건축 부문에 참여했다.

“우리가 아프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지난 7월 건축을 시작해 8월 3일 막을 올린 이 전시회는 헬맨드에 주둔하는 영국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18개월 동안 꾸준히 현지 상황을 반영해 수정될 예정이다.

사실 이 전시회는 주로 현재 복무 중인 병사들의 협조로 꾸며졌다. 그들은 사진과 개인 소지품, 비디오 클립 등을 기증하고 육성 증언을 제공했다. “전시 품목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고 이 전시회의 구성 과정을 감독한 알렉스 파크스 소령은 말했다. “아프간 참전 병사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주는 전시회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충격적인 비디오 영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뉴욕 시민들이 혼비백산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다. 미군과 영국군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유를 상기시키는 장면이다. 영국군의 길고 험난했던 아프간 주둔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 위로 장교들과 정치인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언급한 말들이 영사기로 비쳐진다.

병사 8~10명이 기거하도록 설치된 텐트 안은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좁다. 텐트 안에서는 비닐 냄새가 진동하고 담뱃갑과 화장품류, 고향에 보내는 편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모두가 전쟁터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이번 전시회에서 병사들의 숙소 건축에 참여한 아리안 레이스트릭 소위는 내년 3월 헬맨드에 배치되면 전시회의 수정 작업을 책임지게 된다. 그녀는 이 전시회가 병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작전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면 가족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말 대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쟁터를 실제 경험한 일이 없기 때문에 병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전쟁 지역에서는 치열한 소규모 접전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그래도 전쟁터의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를 보여준다. 땅에서 주운 반짝이는 돌들을 이용해 만든 수제 주사위놀이 세트, 병사들이 양궁 시합을 하거나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등 개인소지품들은 근무 시간 외의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일상적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름 끼치는 전투 기록도 있다.

한 비디오 클립은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과 뒤이어 한 건물이 폭파될 때 병사들이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끔찍한 일”이라고 한 관람객은 말했다. “저 건물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겠어요?” ‘헬맨드: 병사들의 이야기 전’은 아직도 진행 중인 한 전쟁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솔직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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